[펭귄의 서재] 내가 버린 재활용 쓰레기의 종착지

  • 손아영 기자
  • 2022.05.04 10:02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우리가 분리배출한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뉴스펭귄 손아영] 우리는 오늘도 부지런히 분리배출을 한다. 페트병의 라벨을 떼어내고, 종이팩에 남은 음료를 깨끗이 세척하며 부디 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란다. 실제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선정한 ‘재활용 강국’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40%에 그치고 있으며, 이미 처리 용량을 넘어선 플라스틱 쓰레기는 가난한 국가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렇듯 넘쳐나는 전세계 플라스틱 쓰레기는 베트남의 ‘쓰레기마을’로 불리는 민 카이 마을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정성껏 버린 쓰레기의 여정을 함께 살펴보자.

 

 

쓰레기마을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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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도서출판 풀빛 제공)/뉴스펭귄
(사진 도서출판 풀빛 제공)/뉴스펭귄

베트남 북쪽 지역에는 플라스틱 재활용에 특화된 ‘쓰레기 마을’이 있다. 컨테이너에 담긴 1000t의 쓰레기가 매일 해체되고 재활용공장에서 가공된다. 거리 곳곳에 뒹굴고 있는 플라스틱에는 ‘코오롱 플라스틱’, ‘삼성’, ‘롯데 인피노’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 한 글로벌 기업이 즐비해 있다.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이 기업들은 생산시설을 대부분 해외로 이전해, 이 소재들을 무수히 많은 자회사 중 한 곳에서 빠져나가게 만든다. 그렇게 전달된 쓰레기를 분리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악취와 오물에 대해 불평하지만, 공장주들은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덩어리와 재료들을 가치 있는 원료라 주장한다. 하지만 이 재료들은 이미 한번 오염된 쓰레기로, 가공의 책임은 가장 가난한 이들의 손에 쥐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이미 떨어지고 버려진 재료들의 삶을 닮아간다.


플라스틱에 갇힌 삶


(사진 가치여행 참가팀 터치포굿 제공)/뉴스펭귄
(사진 가치여행 참가팀 터치포굿 제공)/뉴스펭귄

마을입구에 다다르면 거대한 플라스틱 더미 앞에 웅크린 채 서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노동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쓰레기를 색깔 별로 분류하고, 나머지는 깨끗한 봉투와 더러운 부분을 나누어 분리한다. 끊임없이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반복해야 하는 고된 작업에 쓰레기의 시큼한 악취까지 더해져 최악의 노동환경이 조성된다. 그런 지옥에서 10시간을 일하고 받는 하루 일당은 10만 동(한화 4000원) 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 이 마을에서는 플라스틱 재활용이 가족사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때문에 작업장으로 개조한 주택이나 창고가 붙어있는 집이 많다. 이곳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보호 장비 하나 없이 지저분한 재료를 만지고 다룬다. 설상가상으로 환기가 되지 않아 이미 공기가 탁한 작업장에서 마스크 한 장 걸치지 않은 채 기계가 내뿜는 가스 기포를 마시며 작업을 이어간다.


쓰레기를 낳는 쓰레기


(사진 도서출판 풀빛 제공)/뉴스펭귄
(사진 도서출판 풀빛 제공)/뉴스펭귄

앞서 보았던 과정을 걸쳐 가공된 플라스틱도 그 가치를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베트남 지역 소비자들은 플라스틱 물건을 살 때 재판매 과정의 청결함을 고려하는데, 쓰레기마을로 명성이 자자한 탓에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선진국들 또한 마찬가지다. 재활용 플라스틱처럼 품질이 낮고 안전하지 않은 제품에 매우 높은 수입기준을 적용한다. 결국 민 카이 마을의 재활용 재료는 극도로 제한된 시장을 갖게 되고, 다시 플라스틱 봉투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렇게 더러운 봉투가 깨끗한 봉투로 바뀌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처럼 플라스틱 쓰레기가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동안,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글로벌 대기업들이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재활용 플라스틱을 관리해 높은 품질을 유지하거나, 가난한 이들이 가공한 재료를 싼 값에 사들여 제품을 판매한다. 그 과정에서 ‘착한 재료를 사용한 친환경 기업’ 이미지는 덤으로 가져간다. 

 


‘재활용’이라는 환상


(사진 가치여행 참가팀 터치포굿 제공)/뉴스펭귄
(사진 가치여행 참가팀 터치포굿 제공)/뉴스펭귄

쓰레기에 점령당한 것은 민 카이 마을만이 아니다. 2008년 프랑스는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 인근의 재활용 천국 터키에 45만t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출했고, 필리핀의 민다나오섬에는 한국산 쓰레기 5100t이 쌓여 섬 안의 섬을 이루기도 했다. 이미 쓰레기 배출량은 개인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재활용의 과정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고통을 수반한다. 이제는 ‘재활용’이라는 빛살 좋은 합리화를 버리고 각국의 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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