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환경칼럼] 대통령 잘못 뽑은 죄

  • 김기정/발행인
  • 2022.03.14 05:00

나도 영화 얘기를 할까 한다.

태양계 궤도를 돌고 있던 혜성이 갑자기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여섯 달 뒤면 지구와 충돌하고, 지구는 완전히 파멸하는 가공할 상황이 시시각각 진행중.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 천문학과 대학원생과 지도교수는 이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뛴다. 어렵사리 대통령을 만나 설명을 하고, 인기 TV토크쇼에 나가 지구멸망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외치지만 그 누구의 주의도 끌지 못한다.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 이길 방법에만 몰두하고 일반 시민들은 연예인의 신변잡기에 관심을 쏟을 뿐 몇달 뒤 지구가 멸망하는 과학적 사실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혜성은 점점 지구를 향해 바짝 다가오고, 육안으로도 이를 확인할 수 있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감이 스멀스멀 확산하지만, 대통령은 외친다. “올려다 보지 마!(Don’t look up!).” 결국 과학자들의 예측대로 혜성은 지구에 충돌하고 지구는 그걸로 ‘끝’. 이런 류의 재난영화는 히어로가 이를 극적으로 막아내는 해피 엔딩이 전형적인 시나리오인데, 이 영화, ‘돈룩업’은 그런 기대를 여지 없이 깨뜨린다. "충돌한다면 충돌하는 거야, 딴 짓 하면 피할 길은 없어." 영화는 이렇게 경고한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룩업' 포스터(사진 돈룩업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룩업' 포스터(사진 돈룩업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대통령 뽑는 일의 무거움과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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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자 SNS를 통해 “유족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철저한 ‘관전자적인 평가’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고인 및 유족들에게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커튼 뒤에 있다가 박수 받을 장면에서나 등장하고, 방역실패로 국민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기껏 이웃나라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각광 받을 일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영화(돈룩업) 속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이 오버랩된다.

코로나 누적사망자 1만명 돌파와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의 글(사진 문대통령 페이스북)/뉴스펭귄
코로나 누적사망자 1만명 돌파와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의 글(사진 문대통령 페이스북)/뉴스펭귄

대통령은, 특히 우리나라처럼 권력이 집중돼 있는 제왕적 대통령은 책임을 지는 일에 능숙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은 결정하는데 있어서 최대한 신중해야 하며, 결정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장착돼 있어야 한다. 책임의 무게가 태산과 같기에, 처음 내린 결정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곧바로 방향을 선회하는 유연성 또한 그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지지층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결정을 내리고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드러나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일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특정 세력(그룹)의 리더일 뿐이다.

임기를 며칠 앞두고 갑자기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돌아선 것처럼 발언해 국민들을 몹시도 경악하게 만든 최근 문 대통령의 입을 생각하면, 대통령 뽑는 일의 무거움과 무서움을 새삼 느낀다. 이번 대선 결과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지난 5년간 완벽하게 둘로 갈라진 분열상만으로도 문 대통령은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죽하면 진보진영의 학자 등이 공동으로 집필한 ‘우리 안의 파시즘2.0’에서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대화하고 싶지도 않은 ‘우리’와 ‘그들’”이라고 했을까. 이 책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내 편만 옳은, 부족주의’로 퇴화했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대의민주주의체제에서 대통령 한번 잘못 뽑으면 나라는 이렇게 결딴나고야 마는 것인가? (나는 문 대통령이 원전 폭발 사고를 다룬 재난영화 ‘판도라’를 감명 깊게 보고선 ‘탈원전’에 꽂혔다고는 항간의 얘기를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돈룩업에 가장 가까운 윤석열 당선인의 기후공약

차기 대통령 윤석열 당선인은 어떨까? 이번에는 잘 뽑은 걸까?

일단 환경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지극히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윤 당선인은 경쟁 했던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룩업’ 대통령에 더 가깝다. 공약상으로 기후위기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쳐다보지 마”로 읽힌다. 내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또는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종합할 때 그렇다.

기후위기에 대한 국가차원의 인식 내지 의지의 척도로 볼 수 있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보자. 그는 지난해 12월 열린 서울기후·에너지컨퍼런스에서 “현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서도 산업계의 의견수렴과 사회적 합의는 생략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기후대통령’을 자처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NDC를 2010년 대비 최소 5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온실가스는 지구의 지속가능성, 멸종여부를 결정 지을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국제적 합의를 통해 도출한 구체적인 감축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 경제적 부담(위축)을 감수하고 있다. 만약 산업계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렴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 딱 그렇게 결론이 지어질 것이다. 국내 청년 기후운동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 지난해 12월, 대선후보 7인의 기후위기 공약을 평가하면서 윤 당시 후보에게 0.5점이라는 아주 박한 점수를 매긴 점을 새길 필요가 있다. (5점 만점에 0.5점은 0.3점을 받은 안철수 후보에 이어 꼴찌에서 두번째다.)

 

대통령 선거 운동기간 국민의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사진 국민의힘 인스타그램)/뉴스펭귄
대통령 선거 운동기간 국민의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사진 국민의힘 인스타그램)/뉴스펭귄

 

한국에서 기후위기가 잘 먹히지 않는 이유

융합연구자 정희진 박사(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민간위원)는 앞서 인용한 책, ‘우리 안의 파시즘 2.0’에 실린 ‘식민지 남성성과 추격발전주의’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아직은 아닌’이라는 사고방식, 즉 지금 여기의 현실을 부정하는 사고에서 비롯된 미래 지향의 추격발전주의는 성장 신화를 지속시키고 탈성장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환경운동이 어려운 이유다.” 정 박사는 이 글에서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발전주의는 지속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진보마저도 발전주의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일갈했다.

굳이 그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진보를 자처하는 문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5년 대한민국의 기후위기 대응능력이, 환경생태계가, 환경관련 정책 등이 나아졌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탈플라스틱 정책 등은 되려 뒷걸음질쳤다. 하물며, 경제계(산업자본)를 국정운영의 주요 동반자로 보는 보수 진영의 대통령으로서는 산업계의 ‘의견수렴’을 거쳐 기후위기 대응을 경제의 뒷편으로 더욱 밀쳐낼 공산이 작지 않다. “나중에”, “좀 더 검토해서”, “이것부터 처리하고” 따위의 언설로는 혜성과의 충돌을 피할 길이 없다. 지구로 날아오는 혜성이 이제 보름달보다 더 선명하게, 하루가 다르게 커지며 밤낮으로 우리의 머리 위에 타오르고 있다.

 

윤 당선인에게 이제 막 열린 기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윤 당선인이 아직 대통령으로서 출발선에 서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당선된 지 이제 겨우 나흘이 지났을 뿐이다. 취임까지 약 두 달이 남아 있고,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펼쳐진다. 윤 당선인에게 기회이고, 국민들에게도 그렇다. 앞으로 약 두 달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어떤 국정운영 전략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윤 당선인에게나 국민들에게나 기회는 호기가 될 것이다.

기후위기 이슈로 다시 돌아와 강조하자면, 차기 정부에서는 환경 관련 정책이 특정 계층 또는 집단의 ‘이기주의’에 휘둘리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산업계의 의견만 반영해서도, 부분적인 환경 이슈에 집착하는 주의·주장에 솔깃해서도 곤란하다. 이는 인수위 환경 정책 분야에 어떤 인사들이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수위 환경분과에 참여하는 주요 인사들의 면면이 향후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의 정부에서는 환경부의 위상이 낮았지만, 언필칭 기후위기의 시대인 만큼 분명 달라져야 한다.

만약 환경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환경부장관을 ‘논공행상’의 한 자리 쯤으로 여긴다면 차기 정부에서도 환경문제는 ‘노답’, 그야말로 답이 없게 된다. 문재인 정부 환경부장관들을 떠올리면 이를 단박에 알 수 있다. 국민들의 다수 의견인 양 포장한 특정 단체들의 주장-실은 그 단체들 중 일부의 이익(지대추구)행위-에 휘둘려 정작 기후위기 대응의 큰 정책들은 상대적으로 부실해졌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환경부장관이 정책실무자들의 의견은 묵살한채 특정 단체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쫑긋 세우면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써야 할 귀중한 시간에 낙동강 하류에 가서 물고기를 쳐다보게 된다. 그것이 환경의 전부인 줄 안다. 유럽연합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친환경성에 주목해 확산시킬 법적 방안 마련에 몰두하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바이오 플라스틱의 친환경성을 ‘박탈’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환경정책을 책임지는 부처의 능력이 부족하고 철학이 없으면 결국 대통령이 돈룩업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확하게는, 대통령을 돈룩업하게 만든다.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에서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궤도를 이탈한 혜성을 발견하고 경악하는 장면(사진 돈룩업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에서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궤도를 이탈한 혜성을 발견하고 경악하는 장면(사진 돈룩업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기후위기 해결에 '적당한 시기'란 없다

영화 돈룩업에서 문제의 혜성을 발견한 두 주인공은 절박하게 외친다. “이러다간 다 죽어, 다 죽는단 말이야.” 그렇지만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를 조롱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확대·재생산하기에 바쁘다. “올려다 볼 필요 없어. 혜성 충돌은 없어.” 기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아직은’ 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괜찮을 거야, 막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앞서 소개한 정희진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 더 이상 ‘적당한 시기’를 주장하기 어려워졌으며, “나중에 해결하자”고 말할 수도 없게 됐다.

기후위기는, 기후위기 가속화에 따른 대멸종의 위기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시기 보다 2도만 더 상승하면 해안가 도시 상당수가 물에 잠기고 멸종은 겁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된다. 정 박사는 “우리는 닿을 수 없는 미래를 꿈꾸지만 자연을 파괴하며 추구하는 문명 발전이라 망상일 뿐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지구멸망 시기를 앞으로 30년 내외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소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가 인용한 전문가들이 궤도를 이탈해 지구 쪽으로 돌진하는 혜성을 가르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경험적으로 충분히 알고 있다. 지난 대선 경쟁과정에서도 “누구를 찍으면 1년 뒤에 그 사람 찍은 손가락 자르고 싶어할 것”이라는 거친 발언이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대통령이 방향을 잘못 잡게 되면 국민들이 받을 고통과 피해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들은 찍었을 뿐인데, 대통령과 주변 몇몇의 잘못으로 인해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지경이 된다면 찍은 죗값치고 너무 혹독하다. 

기회가 백지상태로 열린 윤 당선인에게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또 잘못 뽑은' 대통령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뽑은' 대통령의 길이다. 국민대통합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일 또한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영화 돈룩업은 말한다. 지구와 혜성의 대충돌을 용케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오산이라고. 눈 감는다고 도망간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기후위기다.(202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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