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모든 걸 다 주니까 떠난다는 그, 사람

  • 손아영 기자
  • 2022.03.03 10:11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악당이 된 녀석들


[뉴스펭귄 손아영] 다람쥐와 핑크뮬리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예쁘다는 이유로 사랑받다 금세 악당 취급을 당한" 생물이라는 것이죠. 유럽 사람들은 귀엽다는 이유로 다람쥐를 들여왔다 전염병을 옮긴다는 이유로 이들을 혐오했고, 제주도의 포토스팟으로 사랑받던 핑크뮬리 또한 바람에 종자를 날려 다른 식물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에 의해 악당이 된 동물들에게는 각자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다른 동물들은 어떨지 함께 살펴볼까요.

 


농작물 파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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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애니메이션 <보노보노> 속 캐릭터 '너부리'를 기억하시나요? 생김새와 이름 탓에 너구리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너부리는 '라쿤'이라는 동물에 속합니다. 너구리와 달리 꼬리에 줄무늬가 있고, 상대적으로 행동이 재빠른 편인데요. 그만큼 뛰어난 낚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라쿤'이란 이름은 '냄새를 찾는 손'이라는 인디언 말에서 비롯되었죠. 하지만 이처럼 재주 많고 귀여운 라쿤은 어째서인지 사람들에게 악당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모피공장을 탈출해 포도밭을 헤집어 놓았다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애완동물로 키워지다 야생에 버려지며 사람들의 농작물을 망쳐 놓았다는 이유로 악당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팬데믹 이전에는 동물카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라쿤을 무분별하게 들여오는 사례가 많았는데요. 결국 바이러스의 감염원으로 뽑히며 국내 최초의 '생태계 위해 우려 동물'로 지정되었답니다. 

 


플라스틱 배설꾼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람들은 대게 지렁이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곤 하는데요. 사실 '지렁이'란 이름의 어원은 '징그럽다'가 아닌 '지룡'입니다. 땅 속에 사는 용을 의미하죠. '용'인만큼 지구를 위하는 스케일도 남다릅니다. 지렁이는 땅속에서 흙과 함께 동식물의 배설물이나 썩은 잎을 먹는데, 이들의 배설물에는 식물이 섭취할 수 있는 영양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식물의 성장을 돕는다고 하여 '분변토'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 분변토가 기후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이 버린 미세 플라스틱이 흙 속으로 들어가 지렁이의 먹이가 되고, 분해된 먹이가 나노 플라스틱으로 배설되어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죠. 또한 낚시용 미끼, 재배용으로 수출된 흙을 통해 북극까지 날아간 지렁이가 북극권 식물을 너무나 잘 자라나게 만들어 대기 중에 질소, 탄소 성분이 다량 방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가열화로 북극이 따뜻해지며 지렁이가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죠. 

 


플랑크톤 폭식꾼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바닷 속 해파리는 동물일까요 아님 물고기일까요? 정답은 '플랑크톤'입니다. 해파리는 몸이 비어 있어 몸을 접었다 폈다 하며 조금씩 움직이는데, 보통은 움직일 힘이 없어 물살에 따라 이동하곤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거나 미세하게 움직이는 생물을 플랑크톤이라 부릅니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식사는 어떻게 하는 걸까요? 해파리는 촉수에 먹이가 붙으면 자동으로 독을 내뿜어 그들을 마비시킵니다. 그리고 먹이가 몸 속에서 소화되면 다시 입으로 내뱉습니다. 입과 항문이 같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 이들의 식사량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플랑크톤은 해파리의 주식인데, 지구가열화와 해양오염으로 더운 지역에만 있던 해파리들이 북상하며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플랑크톤을 먹어 치우게 되었기 때문이죠. 해파리를 별미로 먹는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플랑크톤을 먹는 해파리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진짜 악당은 따로 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인간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았을 때 앞서 나온 동물들은 모두 악당이 맞습니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기후위기를 악화시키죠. 하지만 잠시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배가 고파 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소화된 음식을 배설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살기 위해 도망쳤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것이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날 문득 찬사를 보내며 곁을 내어주더니, 이제는 쓸모없어졌다며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하기도 합니다. 모든 걸 다 주니까 떠나는, 역지사지의 장면 속 진짜 악당은 '인간'이 아닐까요?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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