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은 한국 온실가스 배출 구조의 모순과 그 책임을 추적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지만 기후 정책에서는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얻은 한국. 그 배경에는 누구의 책임이 자리하고 있는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정부 정책의 무책임과 제도의 허점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기후 리더십, 스스로 버린 한국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 7,900억 달러로 세계 12~13위, 1인당 소득은 3만 6,000달러를 넘어섰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철강 등 주요 산업은 세계를 선도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성적표 뒤편에는 기후 리더십의 공백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제 기후단체 연합과 독일 연구기관이 공동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5’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63개국 가운데 최하위인 63위로 꼴찌를 기록했다. 이는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 산유국과 같은 그룹에 속한 결과다. 국제사회가 한국을 두고 “경제는 선진국, 기후정책은 후진국”이라고 냉소하는 이유다.
원인은 명확하다. 재생에너지 대신 화석연료에 의존했고, 탄소중립 선언 이후에도 국제 규범 형성에서 고립을 자초했다. 장기적이고 일관된 청정전환 정책이 부재한 탓에, 한국은 스스로 ‘기후 악당’이라는 낙인을 찍게 된 것이다.
COP 무대에서 드러난 민낯
2024년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이 자리에서 한국은 국제 환경단체 연합 ‘기후행동네트워크(CAN)’로부터 ‘오늘의 화석상’을 받는 불명예를 안았다.
OECD 수출신용협약 개정 논의에서 한국이 터키와 함께 화석연료 금융 중단에 반대하며 협상을 무산시킨 것이 이유였다.
CAN은 논평에서 “BTS와 삼성으로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가, 에너지 금융에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첨단 기술과 문화의 선진국이면서도 기후외교에서는 후진국으로 남은 한국의 모순된 자화상이었다.
해외로 흘러간 공적자금
한국은 2020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나, 공적자금의 흐름은 정반대였다. 2020~2022년 한국의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 투자 규모는 연평균 10억 달러를 넘으며, 캐나다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아시아에서도 가장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 사례가 모잠비크 코랄 노스 LNG 프로젝트다. 한국가스공사와 삼성중공업이 18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프랑스 토탈에너지스와 영국-네덜란드 합작 쉘은 기후 부담 등을 이유로 철수했다.
이 프로젝트에서만 4억 톤이 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터키 전체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고 한국 연간 배출량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국제사회가 한국을 향해 “자본이 국경을 넘는 만큼 책임도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강력히 비판하는 이유다.
재생에너지, OECD 꼴찌
2024년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10.5%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35.8%)의 3분의 1 수준이며, 중국(34.3%)과 인도(21.8%)보다도 낮다.
오락가락한 정책 기조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웠지만, 윤석열 정부는 원전 재확장 정책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는 21.6%로 낮아졌고, 장기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의 필수 조건인 정책의 예측 가능성은 무너졌다. 민간투자자는 사업 타당성을 가늠할 수 없게 됐고, 해외 기업은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시장으로 평가했다.
행정 절차와 지리적 제약
해상풍력 하나를 설치하기 위해 9개 부처를 거쳐 25개 이상의 인허가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은 대규모 태양광·풍력 단지 입지도 부족하다. 여기에 주민 반대(NIMBY)도 심각하다.
송전망 병목 - 발전해도 팔지 못해
호남과 강원 지역은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몰려 있지만, 전기를 수도권 등 수요처로 보내는 송전망이 부족하다. 그 결과 약 6.6GW의 전력이 강제 출력제어를 당하며 ‘발전은 하지만 판매는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선진국과의 비교
독일은 고정가격매입제(FIT), 일본은 주민 협의 의무화, 영국은 차등형 경쟁입찰제(CfD)로 투자 안정성을 보장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30~40%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한국의 부진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 부족에서 기인한다.
삼척블루파워, ‘탄소 잠금’의 상징
강원도 삼척에 세워진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2.1GW 규모)는 한국 에너지 정책의 모순을 응축한 상징적 사례다. 완전 가동 시 연간 약 1,3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로, 정부가 농·축·수산 부문에서 12년간 줄이겠다고 밝힌 감축량의 두 배에 해당한다.
또 다른 문제는 송전망 확충이 지연되면서 실제 가동률은 10~20%대에 머물고 있다. 투자 회수는 불투명하고, 맹방해변과 명사십리 일대의 해안선 침식·경관 훼손 등 환경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다.
국제 환경단체는 삼척블루파워를 ‘21세기에 마지막으로 지어진 석탄발전소’라 지칭하며, 탄소 잠금(Carbon Lock-in)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배출의 주범, 10대 기업 : 한국 기후위기의 구조적 그림자
2022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6억 톤 중 40% 이상은 포스코, 현대제철, 발전 5사, 정유 4사, 삼성전자 등 10대 기업에서 나왔다. 특히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2022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철강 공장으로 기록됐다.
문제는 배출 규모뿐만이 아니다. 배출권거래제가 2015년 도입된 이후, 기업들은 감축 대신 제도적 허점을 활용해 4,750억 원의 이익을 챙겼다. 정부는 ‘국가 경쟁력’과 ‘산업 보호’를 이유로 사실상 방치했다.
값싼 배출권, 무너진 신뢰
2025년 9월 현재, 한국 배출권거래제(K-ETS)의 가격은 톤당 1만 1천 원 수준으로, EU ETS 가격(약 10만 원)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탄소 배출에 따른 실질적 부담이 거의 없고, 일부는 배출권을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제도의 본래 취지인 감축 유인은 사라지고, ‘배출권 장사’라는 비판만 남았다.
뒤늦게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 회복은 가능할까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은 여전히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출범은 요원하다. 전문가들은 시기를 놓쳤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2030 탄소중립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는 국제사회에서 달성 불가능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신뢰 회복의 조건
전문가들은 한국이 기후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유지되는 정책 일관성.
둘째, 공적 금융을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금융 재배치.
셋째, 인허가와 송전망 병목을 해소하는 송전망 개혁.
넷째, 주민 참여와 노동 전환을 지원하는 사회적 합의.
다섯째, 한·EU 그린파트너십 등 다자 협력을 적극 활용하는 국제 파트너십이다.
다가오는 경제적 압박
기후 대응 실패는 국가 이미지 문제를 넘어 경제적 압박으로 직결된다.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EU 탄소국경조정제(CBAM)는 한국 철강·알루미늄·시멘트 수출 기업에 연간 수천억 원의 추가 비용을 안길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권도 움직이고 있다. 블랙록, HSBC 등 주요 투자기관은 이미 석탄 프로젝트 투자에서 철수했다. ESG 리스크가 큰 기업은 국제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무역 경쟁력도 위협받는다. 글로벌 공급망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반도체·배터리 등 한국 주력 산업의 수출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될 수 있다.
“주저하면 기후악당, 결단하면 기후리더”
한국은 더 이상 변명할 시간이 없다. 값싼 배출권에 기대는 안일함은 곧 산업의 몰락과 외교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과학은 이미 경고했고, 시장은 움직이고 있다.
녹색 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지금 결단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기후악당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다. 마지막 골든타임은 미래 세대의 손끝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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