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오전 11시 경 열화상 드론으로 촬영한 밀양 얼음골 전경. 내부와 외부가 최대 22.5도 차이가 난다. (사진 국립수목원)/뉴스펭귄
7월 24일 오전 11시 경 열화상 드론으로 촬영한 밀양 얼음골 전경. 내부와 외부가 최대 22.5도 차이가 난다. (사진 국립수목원)/뉴스펭귄

여름에도 냉기가 흐르며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따듯한 날씨가 유지되는 독특한 장소가 있다. 전국을 통틀어 25곳 밖에 없는 '풍혈지'다. 

월귤, 흰인가목, 병꽃나무, 백운산원추리... 이 희귀·특산식물들의 공통점은 모두 풍혈지에 자생하는 종이라는 것이다. 풍혈지는 일반 산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기후민감종들에게 숨구멍이 되어주는 특별한 서식처다. 

풍혈은 말 그대로 바람구멍을 뜻하며 주로 산비탈에서 형성된다. 여름철에는 지하에서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오거나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나와 미세기후가 유지되는 독특한 지형이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국내 주요 풍혈지의 생물상을 연구한 결과 풍혈지가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 보전의 핵심 거점이라고 강조했다. 

조사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풍혈지 자생종은 총 1204종이다. 월귤, 흰인가목 등 희귀식물 82종, 병꽃나무, 백운산원추리 등 특산식물 61종, 돌단풍, 야광나무 등 북방계 식물 212종이 포함됐다.

밀양 얼음골 결빙지의 온도는 한낮에도 1도를 유지하고 있다.(사진 국립수목원)/뉴스펭귄
7월 24일 밀양 얼음골 결빙지의 온도는 오전 11시 경의 한낮에도 1도를 유지하고 있다.(사진 국립수목원)/뉴스펭귄

관광지로 유명했던 밀양 얼음골...알고 보니 생태계 보물창고

우리나라 대표 풍혈지는 밀양 얼음골이다. 무더운 여름에도 얼음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관광지로 조성되기도 했다. 여름철 한낮에도 얼음골 내외부 온도는 최대 30도까지 차이가 난다. 이곳에는 총 236종의 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꼬리말발도리의 경우, 우리나라 함경남도, 경상남·북도에 분포하는 희귀·특산식물로 산기슭 바위틈에서 2m 정도로 자란다. 국가적색목록 취약종(VU)으로 등재돼 보호가 필요한 식물이다. 

높은 산지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주저리고사리 역시 기후변화에 민감한 북방계식물로 풍혈지의 보전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샘털이 많은 양치식물로 기후위기가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에서 곧 사라질 빙하기 식물이다. 

꼬리말발도리. (사진 국립수목원)/뉴스펭귄
꼬리말발도리. (사진 국립수목원)/뉴스펭귄
주저리고사리. (사진 국립수목원)/뉴스펭귄
주저리고사리. (사진 국립수목원)/뉴스펭귄

문제는 최근 풍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탐방객 증가에 따른 생태적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탐방로 붕괴, 무분별한 출입과 식물 채취 등으로 식물군락이 감소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예컨대 의성과 진안의 일부 풍혈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풍혈의 바람구멍을 인위적으로 막아 인근 북방계 식물 자생지가 훼손된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 정선 등에서는 희귀 북방계식물에 대한 무분별한 채취로 자생 군락이 파괴된 사례도 보고됐다. 

국립수목원은 풍혈지의 ‘생물서식지’와 ‘경관자원’이라는 이중적 특성을 고려해 출입 제한 및 보호구역 설정, 정밀조사와 모니터링 강화 등 체계적 관리로 훼손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해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풍혈지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국립수목원 임영석 원장은 “풍혈지는 이상고온 등 기후변화에서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는 중요한 생태적 피난처이자 아직 보고되지 않은 생물종들이 서식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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