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2023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낮추는 근거로 제시한 산업연구원 보고서가 실제 탄소배출량 통계와 크게 어긋난 것으로 나타났다. 배출량이 줄고 있었음에도 산업 성장으로 인해 배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부정확한 전망을 바탕으로 감축 목표를 완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2030년까지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 14.5%에서 11.4%로 낮췄다. 당시 정부는 이 계획에 대해 "원료수급 곤란 및 기술전망을 고려"를 이유로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 14.5%에서 11.4%로 낮췄다.(사진 '탄소중립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 캡처)/뉴스펭귄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 14.5%에서 11.4%로 낮췄다.(사진 '탄소중립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 캡처)/뉴스펭귄

핵심 근거는 산업연구원이 산업통상자원부 의뢰로 수행한 '산업부문 2030 NDC 이행방안 연구'였다. 정부는 이 보고서에 따라 산업 부문 배출량이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감축 목표를 낮추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기후단체 플랜1.5가 국회 이용우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6대 다배출 업종의 '최근 3년간 배출권거래제 업종별 배출량(2022-2024)'을 비교 분석한 결과, 보고서 전망이 실제 배출 통계와 다르다는 분석이 나왔다. 산업연구원이 "2022~2024년 산업배출량이 약 4.5%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바와 달리, 실제 통계는 배출권거래제 기준 2.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시멘트(-10.5%), 반도체(-6.8%), 디스플레이(-3.8%) 등 예측과 실적 간 차이가 컸다. 산업연구원이 이들 업종에서 각각 2.7%, 5.3%, 23.4%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것과 대조되는 결과다.

업종별로는 시멘트(-10.5%), 반도체(-6.8%), 디스플레이(-3.8%) 등 예측과 실적 간 차이가 컸다. (사진 플랜1.5 보고서 캡처)/뉴스펭귄
업종별로는 시멘트(-10.5%), 반도체(-6.8%), 디스플레이(-3.8%) 등 예측과 실적 간 차이가 컸다. (사진 플랜1.5 보고서 캡처)/뉴스펭귄

플랜1.5는 산업연구원의 예측이 빗나간 배경으로 ▲기업·협회의 낙관적인 전망을 근거 없이 인용 ▲국제기구나 연구기관 전망은 반영하지 않았으며 ▲감축 기술 적용 가능성과 잠재량을 지나치게 낮게 가정한 점 등을 지적했다.

각 업종별 산업연구원의 전망과 국제기구 전망은 실제로 달랐다. 산업연구원은 철강업계에 대해 "2030년 이후 수요가 회복돼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관련 근거나 수요 추정 방식은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OECD는 철강 공급 과잉 문제를 지적하며 "전 세계 설비 가동률이 70%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은 바 있다.

시멘트 업종에서는 산업연구원이 2022년 대비 2030년까지 생산량이 4.7% 증가한다고 전망했으나, 한국시멘트협회 통계에 따르면 수출 비중은 2019년 25%에서 2023년 5%로 급감했다. 산업연구원이 제시한 "국내 수요가 감소세지만 수출로 대응하겠다"는 근거와 달리 실제 국내 시멘트는 다른 국가 대비 가격 경쟁력이 낮다는 지적이다.

정유 업종에서는 2030년 석유 수요에 대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19년 대비 25%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지만, 산업연구원은 그보다 낮은 2%로 예측했다. 가동률도 2030년까지 현재 수준(82~87%)을 유지할 것으로 가정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석유화학 업종에서도 산업연구원은 국내 산업 경쟁력 약화를 예견한 가운데, 생산량과 배출량 전망은 2030년까지 각각 24%, 16% 증가한다는 전망을 제시해 낙관적인 전망만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종은 SK하이닉스나 삼성디스플레이 등 기업이 현재 온실가스를 97% 이상 수준으로 감축하고 있으나, 산업연구원은 각각 93.5%, 93.0% 감축에 그친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업계 현실보다 목표가 낮다는 지적이다.

플랜1.5 권경락 정책활동가는 "산업연구원의 엉터리 전망은 대참사 수준"이라며 "배출권거래제 총량이 탄소중립기본계획과 연동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배출 기업들에 대한 배출 면죄부를 주고 산업 전환을 후퇴시키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사원 감사를 촉구하며 "정책 결정이 내려진 과정과 책임 소재를 밝혀야 한다. 2035년 감축목표 설정을 담당하고 있는 환경부 산하 기술작업반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용우 의원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으로 인해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므로 우리나라 산업계를 과보호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산업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 변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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