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4년간 부모로서 재판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마음 졸이고 어두운 밤을 많이 보냈습니다. 하지만 청년들도, 저도 그 시간 속에서 단단해졌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이 걸음이 다음에 올 사람에게 반드시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7일 수원지방법원 앞, 피고인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의 아버지 강광원 씨다. 그는 "우리의 시간은 4년이지만 수십 년 전부터 투쟁을 이어온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재판에 나선 청년들이 앞으로도 평생 이 길을 걸어갈 것을 떠올리니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4년이 흘렀고
판결은 뒤집혔다
2021년 2월, 강은빈 대표와 기후활동가 이은호 씨는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의 본사 앞 'DOOSAN'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닦아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도 베트남 석탄발전소 건설에 참여하는 기업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두 사람은 집회시위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 유죄로 보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으나, 지난해 5월 대법원은 판결을 뒤집었다. 수성 스프레이가 쉽게 지워졌고 분사 직후 닦아냈다는 점에서 조형물의 효용을 해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을 전부 파기하고 사건을 2심 재판부로 돌려보냈다.
며칠 전 최종 선고에서 수원지법은 '피고인이 집회를 사전에 신고하지 못할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집회시위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재물손괴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을 따라 무죄를 인정했다.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두 사람에게 각각 벌금 150만원, 1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으로 감형했다.
국내 첫 '기후불복종' 재판
녹색 스프레이가 남긴 것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목적으로 한 시민불복종, 이른바 기후불복종이 재판까지 이어진 첫 사례다. 판결 직후 강은빈 대표는 "기업의 이익에 위협을 가하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기후불복종 행동 쪽으로 손을 들어준 법원 판결의 흐름 자체에 의의가 있다"며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행동의 원동력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은호 활동가는 "기업의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인정해온 기존 관행에 제동을 건 판례"라며 "기후소송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 변화가 조금씩 보이는 듯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베트남이 죽음을 수출입하는 생태학살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연대와 교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광원 씨만큼 두 사람과 줄곧 법정을 다닌 사람도 있다. 3년간 이들을 변호해온 사단법인 선의 김보미 변호사다. 매번 판결이 나올 때마다 결과가 좋으면 안도감에, 아쉬우면 속상함에 눈물이 났다는 김 변호사는 "벌금형 집행유예는 매우 드문 사례"라며 "저는 눈물이 많아서 많이 울었는데 두 의뢰인이 항상 밝고 당당하게 웃어준 덕분에 긴 소송도 지치지 않고 잘 마쳤다"고 말했다. 실제 벌금형 선고 중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2018년 1.37%, 2019년 2.76%, 2020년 2.9%에 불과하다.
한편, 두산중공업은 형사재판과 별도로 두 활동가에게 184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청구했다가 증거 부족으로 패소했다. 이후 두산중공업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두산중공업이 2021년부터 참여해온 베트남 붕앙2 석탄발전소 사업은 올해 완공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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