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한 기자] 12가지 언어를 가지고 멸종위기 동물을 그리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언어가 가진 민족성과 보존에 대한 개념을 환경보호와 연결하고 멸종위기종에 대한 관심도 높이자는 취지다.
최근 태국 방콕에서 제8회 IUCN ASIA RCF(지역 자연보호 포럼)가 열렸다.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에서 진행하는 이 포럼은 보존 진행 상황을 평가하고 환경과 생물다양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찾는 자리다.
포럼은 ‘아시아의 보존을 재구상하다’라는 슬로으로 열렸다. 자연의 긍정적인 미래를 위해 애쓰는 5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이 가운데 청년세션에서 만든 그림이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글자를 활용해 그린 동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숨탄것들’ 대표 진관우(24) 작가가 주도했다. 진 작가는 한글로 생물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기록하면 기억할 수 있다’는 슬로건으로 활동해온 그는 한글이 갖는 민족성과 보존에 대한 개념을 환경보호와 연결해 꾸준히 생물다양성 관련 활동을 이어왔다.
작가는 이런 취지를 다른 나라 언어로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전에 대한 인식 제고도 국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12가지 언어로 그리는 멸종위기 동물 그림’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RCF에서는 다양한 청년 참가자들이 함께 그림을 완성했다. 12가지 언어로 그려진 멸종위기 동물 그림을 모두 모으면 글자가 완성되는 콘셉트다. 한국어와 네팔어, 중국어, 일본어, 아삼어, 타갈로그어, 방글라데시어, 베트남어, 몰디브어, 힌디어, 태국어, 인도네이사어 등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 글자들을 가지고 레서판다와 자이언트판다, 고라니, 이리오모테삵, 인도코뿔소, 필리핀난쟁이물총새, 벵갈호랑이, 델라쿠르랑구르, 푸른바다거북, 인도느시, 아시아코끼리, 순다천산갑 등을 그렸다. 멸종위기동물들의 그림을 모두 모으면 가운데 RCF라는 글자가 완성된다.
한글로 고라니 그린 이유..."지키기 위한 방안 필요해서"
각 나라 언어를 가지고 그림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여러 국가 청년들이 함께 참여해 완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진관우 작가는 “각 나라의 언어로 그림을 지도하기 위해 열두 가지의 언어를 가지고 시안을 그리고 가이드를 만들어야 했다”면서 “처음 시도해보는 외국어 작업이라 감회가 새로웠지만 언어의 다양성에 놀라고, 그 심미적인 활용가능성에 더욱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각 언어마다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특색이 달라서 구상하는데에 조금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각 나라 대표 청년들이 함께 잘 참여해준 덕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글로는 고라니를 그렸다.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고속도로에 자주 튀어나오는 유해종 정도로 인식돼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보자는 취지다.
진 작가는 “고라니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경시되는 것 같아 한국부분에 넣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해종에 대한 인식이 너무 확장되다 보니 가장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을 지키기 위한 방안이 필요할 것 같아 이를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그림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고라니는 IUCN레드리스트 지정 취약(VU)에 해당하는 멸종위기종이며, 사자, 북극곰, 자이언트판다와 같은 등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해외에서 참가한 청년들도 의미 있는 소감을 전했다. 유네스코 MAB청년과학자 펠로우이자 인도 청년참가자인 브린다 카슈얍(24)은 “아삼어로 ‘এশিঙীয়া গঁড়’라는 글자를 사용해 인도코뿔소를 그리는 것은 나에게 독특하고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 유산과 보존에 대한 열정을 결합하여 예술과 자연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함께 연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뿔소, 즉 ‘gôr’은 아삼의 정체성에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 언어로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연결을 기리는 작은 방법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브린다는 “이번 그림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존과 문화 유산에 참여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도록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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