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한 기자] 두 달 전 얘기다. 한 독자에게 이메일을 받았다. ‘언론 매체가 기후위기나 멸종위기 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독자는 학생이었는데 학교 환경 시간에 탐구 활동을 하다 뉴스펭귄을 접했고 관련 기사도 읽어봤다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뉴스펭귄 기후저널리스트들이 부지런히 취재한 기사를 학생들도 읽는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좋은 기사를 지금보다 더 많이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힘도 났다.
당시 기자는 독자에게 ‘언론이 환경 문제를 다룰 때 개인의 실천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기업이나 정부 차원의 실천을 유도하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어 보냈다. 환경에 관심 많은 이른바 ‘착한’ 소비자의 실천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정부의 정책 또는 기업·기관의 움직임이 근본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스펭귄은 국내 유일의 멸종위기 전문 매체로서 멸종과 기후를 둘러싼 중요한 뉴스를 많이 다룬다. 이런 가운데 한편으로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
기자는 요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개인적인 만족감이 있다. 중요한 문제지만 기존 언론에서 많이 다루지 않는 문제를 매일 이야기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발걸음이 내 욕심과는 다르게 너무 더딘 것 같다는 불만도 생긴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큰 틀에서의 실천은 기대보다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어서다.
◇ 자전거 타고 '친환경' 취재했던 오래 전 경험
기후위기와 친환경은 사실 기자에게 오래 전부터 익숙했던 단어다. 15년 전인 2009년에 이미 그와 관련한 인상적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자는 한 매거진에서 취재기자로 일했는데 그해 가을, <자전거로 그린 선진국을 가다>라는 특집 기사를 기획하고 열흘 일정으로 독일과 스웨덴에 다녀왔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환경 관련 취재였다.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어 쓰고 마을 도로에 자동차 통행을 전면 금지한 독일 프라이부르그 보봉 생태마을에 다녀왔다. 스웨덴 예테보리도 취재했다. 북유럽 최대 공업도시 중 하나로 과거 환경 파괴를 겪었지만 탄소 배출을 적극 줄이고 재활용을 늘려 도시 이미지를 바꾼 곳이다.
당시 기자는 탄소 배출 줄이기에 동참하려고 현지에서 공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서울에는 아직 ‘따릉이’가 없던 시절, 그러니까 넷제로나 탄소제로라는 말 대신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단어를 쓰던 시절이었다.
태양광은 흔하고 전기자동차도 다니는 요즘, 탄소제로가 세계적인 유행어인 지금 시선으로 보면 놀랄 일이 아니지만, 그때 유럽에서 본 풍경은 놀라웠다. 마을 전체가 자동차 진입을 막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자급자족하는 ‘솔라시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잘 믿기지도 않을 정도였다.
10년 동안 그 마을에 살았다던 40대 주민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아이들 역시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선진국 사람들은 뭔가 다르구나’ 싶은 마음을 느낀 기억도 난다.
하지만 기자가 느낀 더 큰 충격은 생태마을이 아니라 현지 기업에서였다. 사실 환경에 관심 많은 활동가, 깊은 산에 흙집 짓고 살면서 생태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이미 만나봤기 때문이다. 도시 한 가운데 태양광 주택단지가 있다는 건 놀라웠지만 친환경 마인드를 가진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충격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기업을 방문한 뒤에는 매우 놀랐다.
당시 기자는 유럽의 대표 주방가전 기업과 생활가전 기업 한 곳씩을 방문했다. 한 기업은 산업폐기물 배출량을 줄이고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75%를 난방용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등 적극적인 ‘그린 비즈니스’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또 다른 기업은 친환경 소재와 재활용 소재를 활용해 만드는 녹색 제품(Green Product) 개발에 열중하고 있었다.
현지 기업 관계자들은 환경 측면에서 기업과 국가의 실천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고, 이는 기업의 윤리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당시 기자가 방문한 기업의 환경감독관(environment director)은 “기후위기 등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힘을 보탠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결국 기업과 국가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전제품 겉면에 전력 소모량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됐는지 소비자들이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관계자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매출이나 홍보전략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친환경과 기후 변화를 얘기하는 것이 신선했고, ‘환경감독관’이라는 임직원이 있는 것도 신선했다.
이튿날 또 다른 기업을 방문해 환경 사무관과 만났다. 당시 기자는 ‘환경 분야에 투입하는 예산과 투자비 규모가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환경 정책과 제품 개발을 별개의 건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산을 책정하는데 ‘환경 분야에 얼마’라는 식으로 딱 잘라 구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사무관은 해당 기업이 (당시 기준) 15년 전부터 그룹 본사에 환경 전문 담당 직원을 채용했다고 밝히면서 “환경을 고려하는 것은 기업의 윤리가 아니라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도 말했다.
◇ 15년 흘렀지만...우리는 그만큼 성장했을까?
그 취재가 2009년이었고 지금은 2024년이다. 서울에도 독일과 스웨덴처럼 공유자전거가 생겼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쌓이는 플라스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뜨거워지는 지구가 인류의 안전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다들 과거보다 더 잘 알게 됐다. 국내 대기업들도 ‘모든 비즈니스 영역에서 환경에 대한 책임을 우선순위로 두겠다’거나 ‘친환경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정말로 정부와 기업이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지, 정책 기조와 제품 생산·유통·사용 후 처리 등의 전 과정에서 환경적인 고려가 두말할 나위 없이 완벽한지 떠올려보면 아직은 고개를 젓게 된다.
당시 유럽 출장 주제는 ‘그린 비즈니스’였다. 그린과 비즈니스라는 두 단어의 조합이 당시에는 매우 낯설었지만 그 시절 유럽에서 기자는 그게 낯선 조합이 아니라고 느꼈다. (물론 그 시절 유럽 기업들도 단순히 홍보성 멘트로 대답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에서도 그린과 비즈니스가 정말 하나의 키워드로 합쳐지길 바란다.
그리고, 뉴스펭귄은 앞으로도 계속 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탄소배출 저감에 나서도록 힘쓸 계획이다. 그게 그날 기자와 독자 사이의 약속이었다. 기업과 정부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메시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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