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세대 존엄 지켜주세요' 다시 나선 청소년들

  • 이수연 기자
  • 2023.03.13 16:05

3년 흐른 청소년 기후소송 “이제는 판결의 시간”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잖아요. 닥쳐올 위기는 더 커지겠지만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요?"

올해 23살이 된 김서경 활동가에게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3년 전 국내 첫 기후소송을 청구했던 청소년 원고이기도 하다.

청소년 19명이 기후위기 관련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3년이 된 가운데, 청소년기후행동과 법률 대리인들은 13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 헌법소원 청구 3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촉구했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이제는 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다시 헌법재판소 앞에 선 청소년들

김 활동가는 기자회견서 "우리가 두려운 건 변하지 않는 사회"라며 "정부는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말만 하면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에게 시간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막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을 넘어가면 우리의 헌법소원도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모두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온다. 헌법재판소는 아직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말했다.

발언하는 윤현정 활동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왼쪽부터 윤현정, 오민서, 김서경 청소년 활동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윤현정 활동가는 "아직도 기후위기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논리정연하게 말할 능력은 없지만 이 소송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달려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우리에게는 안전한 삶을 누리도록 보장하는 선이 필요하고, 이 선을 넘지 않도록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는 "벌써 3년이 지났다. 지금도 안전선 밖으로 밀려 나가는 삶이 존재하고 어떤 삶은 밀려 나가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이제는 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정부의 결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막아낼 수 있는 첫 번째 수단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라고 말했다.

헌법소원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오민서 활동가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오 활동가는 "제가 사는 춘천은 최악의 가뭄으로 소양강댐이 바닥을 드러냈고, 역대급 폭우에 누군가는 사망했다. 이 시간을 지내는 동안 무력감과 슬픔이 반복해서 쌓였다. 기후위기의 영향은 재난의 모습으로 닥쳐와 가장 약한 사람의 삶부터 위태롭게 한다. 하지만 정치와 법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어떤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그는 "현재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는 절대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며 "저를 포함한 청소년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누구나 삶의 존엄을 지키도록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책임에 대한 헌법적 판단을 바르게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턱없이 부족한 한국의 기후대응'
지금 법으로는 2030년 전에 탄소예산 소진

2020년 3월 13일, 한국의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정책에 실망한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9명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기후위기 관련 법안이었던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미래세대의 생명권과 환경권 등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청소년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으로는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자고 약속한 파리협정을 지킬 수 없으며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2021년 9월 한층 '발전'한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됐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그러나 2022년 2월 청소년들은 다시 헌법재판소 앞에 섰다. 폐지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이어 국회가 새로 제정한 탄소중립기본법도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없는 '위헌'이라며 추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는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한다고 규정하지만, 이만큼의 감축으로는 탄소중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21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21년 발표한 6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 앞으로 탄소를 26.8억톤 이상 배출해선 안 된다. 이는 전 세계에 남은 탄소예산 4000억톤을 한국 인구 비율인 0.67%로 나눈 값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40%라면 한국은 2030년에 이미 56.21억톤 넘게 쓰면서 허용된 탄소 배출량을 소진한다.

청소년들 편에 선 법률가들
"미흡한 기후변화 대응은 미래세대 차별"

청소년 기후소송을 맡은 이병주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미래세대의 권리를 사전에 침해하는 셈"이라며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전혀 규정하지 않은 것도 미래세대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이기 때문에 탄소중립기본법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이병주 변호사를 비롯한 법률가 215명의 청소년 기후소송 지지 서명도 헌법재판소에 전달됐다. 법률가들은 지지 선언에서 "기후위기가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며 국가가 이러한 기본권 침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청소년들의 지적에 동의한다"며 "미흡한 기후위기 대응이 미래세대에 대한 차별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의 판결 이후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국가의 기후위기대응 부족을 위헌 또는 위법으로 인정하는 사법부 판단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며 "기후위기라는 전례 없는 위기로부터 국민들의 기본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판단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기후소송 지지 선언을 낭독하는 법률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청소년 기후소송 지지 선언을 낭독하는 법률가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2021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독일 청소년들이 제기한 기후소송에 대해 "2030년 이후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루는 것은 청소년 자유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될 수밖에 없다"며 독일 기후보호법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독일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1990년 대비 55%에서 65%로 높였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초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라며 처음으로 정부에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탄소중립기본법 제3조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하고, 이후의 감축목표도 설정해 미래세대 기본권 보호를 위한 감축 의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