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코앞인데, 사법부 판단은 제자리 걸음

  • 최나영 기자
  • 2022.06.03 16:21

환경단체 "입법‧행정부 활동 실패로 기후소송 늘어…
사법부 기후위기에 진지하게 접근해야"

(사진 청소년기후행동)/뉴스펭귄
(사진 청소년기후행동)/뉴스펭귄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법이 제대로 작동해야 간신히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인데요, 지금의 법은 기업의 경제활동이나 개인의 재산을 보장해주는 데 중점을 두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기후위기를 대응함에 있어서 한국의 법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얼마나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가 최근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강 대표의 말처럼 한국 법원은 지금까지 환경권 인정, 특히 재산권과의 관계에서 이를 인정하는데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호주 원주민들과 국내 기후활동가가 낸 'SK E&S 호주 바로사-칼디다 해상가스전 사업 투자계약 금지 가처분 신청'이 최근 기각된 사례만 봐도 그렇다.

기업의 개별 사업에 대한 법률사건에서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저항 시위에 대한 재판, 정부를 상대로 한 기후변화 관련 헌법소원 등 최근 환경 문제를 다루는 주요 법률 다툼에서도 한국 법원은 환경권 인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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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가속화하는 지금의 시기에 한국 법원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을 환경단체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3일 <뉴스펭귄>은 최근 제기되고 결정된 국내외 주요 환경 관련 법률사건의 사례와 판단 결과를 살펴보고, 한국 법원‧헌법재판소가 어떤 방향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을지 기후활동가‧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호주 가스전 투자 멈춰달라" 가처분신청 기각
두산중공업 석탄발전소 반대 시위 활동가엔 벌금형 선고

먼저 최근 눈에 띄는 환경 관련 법률사건 중 하나는 호주 바로사 가스전 사업 투자계약 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건이다. 호주 원주민 3명과 강 대표 등 총 4명은 지난 3월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한국수출입은행을 상대로 ‘SK E&S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국내 공적 금융기관이 투자 지원을 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기각했다.

법원은 헌법에 명시된 환경권에 관한 규정이 국민 개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사법상의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신청 당시 원고들은 “바로사 가스전 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우려했다. <'“SK 호주 가스전 투자 멈춰달라" 가처분신청 기각' 기사 참조>

(사진 청년기후긴급행동)/뉴스펭귄
(사진 청년기후긴급행동)/뉴스펭귄

법원은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기후활동가들에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강 대표를 포함한 청년 기후활동가 2명은 두산중공업의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참여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시 이들은 경기도 분당 두산중공업 본사 타워 앞 ‘DOOSAN’ 로고 조형물을 녹색 스프레이로 칠하고, 그 위에 올라가 석탄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펼쳤다.

이후 같은해 7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재물손괴와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두 활동가에게 총 500만원을 물라는 약식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두 활동가는 이에 불복하고 같은달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올해 1월 총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다음달 2차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같은해 8월 두 활동가에게 1천840만원의 손해배상도 청구해 소송이 진행 중이다.

 

국내 기후위기 관련 헌법소원은 2년 넘게 심리 중

청소년들이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변화 관련 헌법소원도 2년 넘게 심리가 진행 중이다.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의 청소년 19명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녹색성장법)과 시행령상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헌법이 위배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원고들은 녹색성장법이 온실가스 감축목표 결정의 법령 형식과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지 않고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점 등이 헌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올해 2월에도 헌재를 찾았다. 이들은 지난해 9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되며 녹색성장법이 폐지되자, 녹색성장법에 더해 탄소중립기본법도 청소년의 생명권을 위반한다며 위헌 신청서를 추가로 냈다. 이들은 탄소중립기본법도 기후위기를 막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진 청소년기후행동)/뉴스펭귄
(사진 청소년기후행동)/뉴스펭귄

지금까지 원고들은 2여년 동안 일곱 차례 이상 헌법소원 청구와 관련 보충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해당 사건은 심리 중이다. 그 사이 정부는 해당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한 차례 냈다.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헌법소원의 경우 사건의 중요도에 따라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적게 걸리기도 하는데 이 사건은 벌써 2년이 지났으니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고 본다”며 “무엇보다 기후위기를 긴급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가고 있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과 시민사회연대회의, 정의당‧녹색당도 지난해 10월 탄소중립기본법이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아직 심리 중이다. 

 

유럽선 정부에 기후위기 책임 묻는 판결 속속 나와

국내와 달리 유럽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12월 정부의 기후위기 책임을 인정하고 감축 목표를 설정하라고 판결했다. 네덜란드 환경단체 우르헨다와 시민들이 2013년 소송을 제기한 결과다.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행정법원도 프랑스 정부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원고 측이 청구한 1유로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는 그린피스 프랑스를 포함한 프랑스의 4개 비정구기구(NGO)로, 이들은 2019년 3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4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했다. 이 법이 규정한 온실가스 감축 관련 내용이 충분하지 않아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제한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진 urgenda)/뉴스펭귄
(사진 urgenda)/뉴스펭귄

유럽에서는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에 탄소배출 감축 책임을 묻는 법원 판단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5월 네덜란드 법원은 다국적 석유 기업인 쉘(로열더치쉘)에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환경단체 “개별 기업 노력 한계 있어…
기업 환경파괴 통제하는 법 제대로 작동해야"

기후활동가나 기후활동 관련 법률 전문가들은 한국 법원의 전향적인 판단을 요구했다. 강 대표는 “우리나라 같은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법 질서가 바로 잡히는 것이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기업‧기관이 개별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이들이 기후위기나 생태 파괴에 일조하는 것을 멈추도록 통제하는 방식으로 법이 작동을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환경 관련 법률사건이 많아지는 이유가 입법‧행정부 활동의 실패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와 정부가 각각 법안이나 정책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결과, 시민들이 사법부를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윤 변호사는 “유럽에서는 국회‧정부에만 맡겼을 때 해결이 충분히 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사법부에서 결단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의 사법부와 헌재도 기후위기에 대해 훨씬 진지하게 접근하고 판단을 내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도 정치와 정책 영역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사법부‧헌재의 판단이 있다면 기후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경 관련 소송시 원고 적격성 인정 장벽 높다는 지적도

구체적으로는 환경 관련 소송에서 원고가 될 수 있는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현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오르후스 협약에 가입된 국가들은 직접 환경 피해를 받는 당사자, 예컨대 오염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이 아니더라도 환경단체가 적법한 원고로서 환경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반면 (한국은) 환경단체가 원고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벽이 높다”고 지적했다.

오르후스 협약은 '환경단체가 원고가 된 소송 허용' 등의 내용이 담긴 국제협약이다. 유럽경제위원회(UNECE)에서 만들어졌으며 2001년부터 발효돼 현재 체약국은 47개국에 달한다. 하 변호사는 “(오르후스 협약에 가입한) 해외 나라의 경우 환경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하기가 더 쉬운 여건이 마련돼 있고 그것이 또 긍정적인 판결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청년기후긴급행동 SNS 갈무리)/뉴스펭귄
(사진 청년기후긴급행동 SNS 갈무리)/뉴스펭귄

환경 관련 법률 문제를 다툴 때 기업이 공개하는 정보의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 변호사는 “한국의 경우 유럽과 비교해 (환경 관련 법률 다툼이 있을 때) 민간기업이 공개해야 하는 자료 범위가 좁다”며 “결국 해당 이슈를 다투려는 사람이 별도로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고, 기업은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환경권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 수준, 온실가스 배출량을 고려했을 때 한국 법원이 환경권 인정에 적극적인 판단을 내릴 책임이 있다고 환경단체들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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