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4초면 충분한 슬픈 얼굴

  • 이수연 기자
  • 2023.03.17 18:01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내가 누리는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됐고, 그 결과 내가 구호하고자 했던 아이들에게 태풍, 가뭄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크게 절망하고 우울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청소년 동료들과 함께 우울감을 넘어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동희'는 만 17세에 원고가 됐다. 상대는 국가, 사유는 기후위기다. 정부와 국회의 미지근한 기후위기 대응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동희'를 포함한 청소년 19명은 2020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기후소송을 청구했다. 얼마 전 나는 '동희'의 청소년 동료들을 만났다. 그날은 청소년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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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무해'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 그는 바뀔 수 있다는 희망으로 집까지 떠나 기후운동에 뛰어들었지만, 기후위기를 말로만 떠드는 정치인들을 보며 '저들이 나와 같은 세상을 사는 사람이 맞나' 싶어 지쳤다고 고백했다.

'무해'는 "변하지 않는 현실에 체념하며 기후운동을 잠시 멈췄지만 아직도 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슬퍼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하던 와중에 약 4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목이 메었는지, 읽어야 할 부분을 놓쳤는지 알 수 없지만 4초의 침묵은 분명 나를 부끄럽게 했다. 56.21톤(2030년 온실가스 배출 예상량)이나 NDC(온실가스 감축목표) 같은 글자보다 누군가의 슬픔을 4초 동안 읽는 것만으로도 기후위기가 내 주변 문제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청소년 활동가들이 가장 바뀌길 바라는 대상인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의 '어른들'이 그 표정을 봤으면 어땠을까.

꿈쩍 않는 거대한 구조에 개인이 다치는 일을 여러 번 목격하던 나는 청소년들이 겪는 기후우울이 늘 안타까웠다. 하지만 짧게나마 그 슬픈 얼굴을 보고서는 마음을 고쳤다. 기후우울로 슬퍼하는 미래세대가 아니라, 그 슬픔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른들'을 안타까워하기로.

미래세대에게 기후위기란 생존의 위협과 마찬가지다. 지금도 곳곳에서 체감하는 기후위기가 당장 10년 뒤엔 어떤 규모와 빈도로 다가올지 상상조차 두렵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후우울'하지 않으려면 세상이 달라지거나 스스로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데, 나는 감히 포기하라고 말할 수 없다. 여기서 내려놓으면 지금보다 더 암담한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어서다.

미래세대를 위해 정상회담을 연다거나 노동시간을 조정하는 일만큼 중대한 사안이 있다는 것을 슬픈 마음으로 깨닫는 어른들이 더 필요하다. 나 역시 부끄러움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모습으로 저항하기 위해 대단한 어른까진 아니더라도 그들의 동료가 되고 싶다.

동료 시민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몫은 그들의 용기를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다음은 우리나라 최초로 기후소송을 청구한 청소년 원고 19인의 이름이다.

'경운, 도현, 동희, 무해, 민서, 민주, 빈, 석영, 선영, 승현, 유라, 유진, 연재, 지성, 정하, 하람, 효서, 해영,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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