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날리기도'...시흥 쇠부엉이 위협하는 사진가들

  • 이수연 기자
  • 2024.03.22 17:00
시흥 호조벌 갈대밭에서 쉬는 쇠부엉이를 일부러 날리는 사진가. (사진 오환봉 시흥환경연대 대표)/뉴스펭귄
시흥 호조벌 갈대밭에서 쉬는 쇠부엉이를 일부러 날리는 사진가. (사진 오환봉 시흥환경연대 대표)/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3년째 경기 시흥에서 겨울을 나는 쇠부엉이를 찍기 위해 과하게 가까이 다가가거나 날리는 일부 사진가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이곳은 경기 시흥의 평야 '호조벌'. 오후 3시 무렵이면 차들이 줄줄이 들어온다. 쇠부엉이를 찍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사진가들이다. 이들은 카메라를 챙겨 쇠부엉이가 쉬고 있는 갈대밭으로 들어간다. 처음엔 멀리서 촬영하다가 쇠부엉이가 움직이지 않자 조금씩 앞으로 다가간다. 그렇게 약 2m 앞까지 접근한다.

<뉴스펭귄> 독자 김송원 씨는 매일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김 씨는 "일부 사진가들이 논 안까지 들어가서 찍고 심지어 돌을 던져서 새를 날리기도 한다"며 "쇠부엉이가 탈진해서 제때 못 돌아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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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오환봉 시흥환경연대 대표도 영상을 보내왔다. 영상에서 한 사진가는 쇠부엉이가 날아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소리를 내고 팔을 휘젓는다. 쇠부엉이는 놀라서 낮게 날았다가 금세 땅으로 내려온다. 

오환봉 대표는 "사람들이 쭉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나이 많은 한 사진가에게 새를 날려보라고 시켰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낮에 쉬어야 하는 쇠부엉이를 사진가들이 계속 날리고 찍으니 새가 지쳐서 못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시흥시에 조치를 취해달라고 수차례 연락했다.

쇠부엉이 바로 앞에서 촬영하는 사진가들. (사진 독자 김송원 씨 제공)/뉴스펭귄
쇠부엉이 바로 앞에서 촬영하는 사진가들. (사진 독자 김송원 씨 제공)/뉴스펭귄

 

지나친 촬영 행위
처벌 가능할까?

문화재보호법 제35조에 따르면 천연기념물 보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촬영 행위는 미리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뉴스펭귄>과 통화에서 "밝은 불빛을 활용하거나 드론으로 가까이 찍는 행위, 둥지 주변을 훼손하는 행위는 지자체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해석의 여지는 있겠지만 쇠부엉이 서식지에 직접 들어가거나 날리는 행위도 보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다.

결국 처벌하기 위해선 시흥시가 증거를 확보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관리를 담당하는 시흥시 문화예술과는 이 사안을 잘 몰랐다는 반응이다. 시흥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확인부터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뉴스펭귄>에 말했다.

 

쇠부엉이는 누구인가
왜 시흥에 왔는가

다른 부엉이보다 몸통과 귀깃이 작아 순우리말 '쇠' 이름에 붙은 쇠부엉이는 천연기념물 제324호로 보호받는 종이다. 몸 전체는 갈대밭과 비슷한 황갈색이고, 홍채는 노란색이다. 야행성 조류이지만 부엉이 중에서 유일하게 낮에도 활동한다. 습지 근처에 둥지를 틀고 번식하지만, 쉬거나 먹이를 구할 때는 갈대밭에 머문다.

매년 10~11월이면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다가 3월에 떠난다. 전세계 약 1만마리가 분포하며, 그중 3~4마리가 3년 전부터 시흥 호조벌에 찾아오고 있다. 이곳에서 설치류 등을 먹는 상위 포식자다. 쇠부엉이가 매년 찾아가던 경기 부천의 대장들녘이 개발로 사라지면서 새 서식지를 찾아 이동했다는 게 오환봉 대표의 설명이다.

쇠부엉이를 찍기 위해 시흥 호조벌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사진 독자 김송원 씨 제공)/뉴스펭귄
쇠부엉이를 찍기 위해 시흥 호조벌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사진 독자 김송원 씨 제공)/뉴스펭귄

내년에도 오겠지만...

가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는 쇠부엉이, 괜찮은 걸까.

이상돈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부엉이는 기본적으로 예민한 종이라 사람들이 떼로 모여 있으면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고 번식에도 영향을 준다"며 "가까이에서 찍으면 발자국 같은 흔적 때문에 이 번식지를 버릴 수도 있으니, 지자체는 사람 출입을 금지하는 등 신속하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월 일산호수공원에 찾아온 칡부엉이를 근접해서 찍는 사진가들이 늘자 고양시 문화예술과는 현수막을 부착했다. 일종의 계도 조치다. 그럼에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올해 1월 강화도 갯벌 앞에는 '두루미를 드론으로 촬영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이 경고문을 무시하고 드론으로 두루미를 촬영한 일도 있었다.

결국 사진가들의 야생조류에 대한 '보존 의식'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조중래 사진작가는 <뉴스펭귄>과 통화에서 "쇠부엉이처럼 귀한 새가 나타났다면 계속 찍기보다 어느 정도 촬영했다면 양보하고, 새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거리를 지켜서 촬영하는 문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사진가들이 몰린다고 알려지면 잘 가지 않는다"며 "사람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찍히지도 않고 사진도 다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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