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재판부와 '기후위기 감수성'

  • 성은숙 기자
  • 2023.01.27 09:10
수원지방법원 내 태극기와 법원기(사진 성은숙 기자)/뉴스펭귄
수원지방법원 내 태극기와 법원기(사진 성은숙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성은숙 기자] 얼마 전 기후위기 직접행동에 나섰다가 공동주거침입,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을 받은 녹색당 활동가 4명에게 감형이 선고됐다. 활동가들이 총 1200만원의 벌금형(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후 10개월여 간의 법정공방 끝에 얻은 결과다. 녹색당은 이를 '한국의 기후불복종 재판 역사상 첫 승리'라고 명명했다. 

이번 재판을 받은 녹색당 활동가들은 2021년 10월 포스코 주관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에 사전등록 없이 참석해 단상에 올라가 기후위기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비판하는 한편 정부의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비율 상향 등을 촉구했다.

이후 법정에 선 이들은 본인들과 미래세대의 생명권, 환경권, 자유권 등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행위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한 차례 미루면서 고심한 끝에 전 세계가 직면한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높은 수준의 노력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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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기후위기 직접행동에 강경한 입장을 보인 재판부도 있다.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본사 앞 조형물에 녹색 수성페인트를 뿌리는 행위 등으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재물손괴 등 혐의로 재판 중인 청년기후긴급행동 소속 기후운동가들의 1심 판단이 그렇다. 

이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공익에 헌신한다 하더라도 그 활동은 어디까지나 법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피고인들의 범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기후운동가들의 정당행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아가 "피고인들은 목적의 정당성만을 부르짖으며 이를 실현하고자 선택한 범죄에 대해 반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기색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온도차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방점을 두느냐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청년기후긴급행동 기후운동가들의 1심 재판부는 총 5장의 판결문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단 한 문장도 적지 않았다. '부인할 수 없고 되돌리기 어려운 것'으로 지목된 건 기후위기가 아닌 기후운동가들의 범죄사실 뿐인 셈이다. 

근래 전 세계적으로 기후소송이 급증하고, 기업과 정부에 기후위기 가속화 책임을 인정하는 판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참여와 책임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가 된 것이다. 이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재판부는 '기후위기 감수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이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법문의 형식적인 해석이 아닌 실정법의 엄중함 내에서 합목적적인 해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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