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후위기 시대] 국내기업들 재생에너지 사용비중 낮은 까닭은?

  • 최나영 기자
  • 2022.03.19 05:00

재생에너지 전력시장 구조‧제도 개편 어디까지 왔나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기후위기 시대, 국내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한국전력의 6개 자회사 중 한국남동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남부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5년 대비 2020년 8~28% 감축했다. 4개 발전사의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천9백만~4천252만여톤 수준이다.

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되려 증가한 기업도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5년 대비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87.1% 증가했다. 배출량은 1천253만여톤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도 67.8%, LG화학도 12.1%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었다. 배출량은 각각 469만여톤, 817만톤이다.

단순히 매출이 증가하면서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든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더 감축하지 않으면 기후위기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018년 기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6%는 산업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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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7.2%에 그치는 현실. 문재인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를 전체 발전 비중의 30%, 2050년 70%까지 늘리겠다’고 제시한 목표치와도 간극이 크다. 국내외의 온실가스 감축 추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사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가 필요할까? 19일 <뉴스펭귄>이 살펴봤다.

(사진 RE100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사진 RE100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 낮은 이유?
기업 의지도 문제지만 제도적 한계도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낮은 것은 기업들의 의지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제도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전력소비자들이 재생에너지만 특정해서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최근까지 없었다. 2020년까지만 해도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재생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석탄‧천연가스‧재생에너지 등을 통해 생산된 전력이 한국전력의 송‧배전망을 통해 기업과 가정에게 섞여서 전달이 되고, 기업‧가정을 비롯한 전력소비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전력이 어떤 에너지원으로부터 생산된 것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전이 대부분의 전력을 독점적으로 판매하고 있어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직접 거래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최근까지 없었다. 한국의 전력시장은 한전이 자회사인 6개 발전회사와 다수 발전회사가 생산한 전력을 모두 매입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구조다. 한전이 판매하는 전력은 과반 이상이 석탄‧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통해 생산된 전력이다.

그러다 ‘RE100’ 캠페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 필요성도 늘어나게 됐다.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국제 캠페인이다. 애플‧구글을 비롯한 350여개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기업을 포함한 하청업체들에게도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해서 생산한 제품을 납품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RE100 가입 추세에 'K-RE100' 도입
기업, 재생에너지 구매 가능해 졌지만…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기업의 RE100 참여와 이행을 돕기 위해 지난해 ‘한국형 RE100(K-RE100)’ 제도를 내놓았다. K-RE100을 이행할 수단으로는 △녹색 프리미엄제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Power Purchase Agreement)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지분참여 △재생에너지 설비 직접 설치‧사용 등이 제시됐다. 전기소비자인 기업이 이런 방법들로 재생에너지 사용 확인서를 받아 RE100 이행에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시행 1년이 지난 현재까지 K-RE100을 활용한 국내 기업은 지난달 20일 기준 80곳에 그쳤다. 이행 수단도 한 가지에 몰렸다. 참여 기업 중 74%인 59곳이 녹색 프리미엄 사용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녹색 프리미엄은 정부가 도입한 5가지 방법 가운데 실제로 재생에너지 사용이 확대되는 정도가 가장 낮은 방법이라는 점이다.

녹색 프리미엄은 전기소비자가 일반 전기요금에 웃돈(프리미엄)을 얹어 조금 더 비싼 가격으로 전력을 한전에서 구매하는 방법이다. 녹색 프리미엄 참여 기업이 공급받는 전력은 재생에너지 생산 전력이 아니라 기존에 공급받던 전력과 같지만,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사용 확인서’를 발급받아 RE100 인증에 활용할 수 있다. 기존 설비를 기반으로 쓰는 것인 만큼, 한전 전력망을 통해 공급되는 전력에서 재생에너지만 생산된 것만 따로 구매하는 것이 실제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했다는 인증만 하는 셈이다. 녹색 프리미엄이 실질적으로 당장은 온실가스 감축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신 기업들이 낸 추가요금은 한국에너지공단에 출연돼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는 데 활용된다.

 

(자료 한국에너지공단)/뉴스펭귄
(자료 한국에너지공단)/뉴스펭귄

기업들의 선택은 '녹색 프리미엄'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인 기여 못한다는 지적도

기업들이 K-RE100 이행 방안 중 녹색 프리미엄을 가장 많이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녹색 프리미엄이 비교적 간편하고 저렴하게 RE100을 이행할 수 있는 수단이어서라는 평가가 나온다. 녹색 프리미엄은 다른 K-RE100 방식과 달리 자체 발전 설비를 구축하거나, 망 이용료‧수수료 같은 비용을 지급하지 않아도 돼 당장은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적다.

K-RE100 시행 초기인 만큼, 제도와 관련한 여타 조건‧기반들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 전문위원은 “제도에 참여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지난해는 시행 초반이라 기업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녹색 프리미엄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너무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이 정상화되거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 선진국의 경우 전기요금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비용이 충분히 반영돼 있어 우리처럼 과도하게 낮지 않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전환하더라도 비용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전기요금과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가격이 모두 너무 낮아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유인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재생에너지 직접구매하는 ‘직접 PPA’도 등장
3월 본격 시행, 망 사용료는 여전히 내야 해

반면 K-RE100 수단 중 제3자 PPA에 참여한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제3자 PPA는 기업이 한전의 중개로 재생에너지 발전업체와 전력구매계약을 맺는 제도다. 해당 제도와 관련해선 망 사용료‧중개 수수료 등을 내야 하기 때문에 다른 K-RE100 수단보다 비용 부담이 커 참여가 적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전의 중개를 거치지 않는 ‘직접 PPA’를 허용한 전기사업법 개정안까지 통과돼 PPA 사용이 확대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당초 전기사업법에는 발전사업과 판매사업의 겸업이 금지돼 있었다. 지난해 4월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한해서는 전력 판매도 할 수 있게 됐다. 직접 PPA의 경우 중개 수수료는 내지 않아도 되지만 망 사용료는 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여전히 참여 기업의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산자부 관계자는 “직접 PPA를 위한 법안과 시행령은 개정됐다”며 “세부 지침들을 마련하면 이달 중 본격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 Pixabay)/뉴스펭귄
(사진 Pixabay)/뉴스펭귄

‘직접 PPA’ 두고 기대와 우려 엇갈려
“재생에너지 확대에 효과적” vs “공공재인 전력 민영화 안 돼”

그린피스를 비롯한 일부 기후‧환경단체과 전력소비 기업들은 직접 PPA가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에 효과적인 정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직접 PPA가 도입되면 기업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5~20년 장기간 고정 가격에 계약을 맺고 전력을 안정적인 가격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발전사업자는 장기간 고객을 확보해 대규모 발전 설비에 투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가 빠르게 확대해 온실가스 배출 감축 효과를 낼 수 있다.

장 위원은 “기업들에게 망 사용료를 과도하게 할인해 주면 원칙이 무너지는 부분이 있다”며 “망사용료는 정상화한 가격으로 부과하되 재생에너지 사용 기업에 대해 다른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직접 PPA 참여를 유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직접 PPA 제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공재인 전력을 민간시장에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일부 국내 환경단체와 노동계는 재생에너지 부문 전력판매시장 개방이 석탄‧원자력 등 다른 전력의 판매시장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력 부문이 민영화돼 수익과 효율성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 도서 산간을 비롯해 외진 곳에 있는 지역은 전력 사용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기획실장은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이 필요한데 공공이 하면 느리니까 민간이나 에너지 자본의 개입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하지만 속도만큼 방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이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이디어 차원이긴 하지만 지자체 별로 재생에너지 공사를 설립하고 한전은 지방 공기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지역 분산 방식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성희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도 “(RE100을 강조하면서 직접 PPA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그걸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우리나라에 (글로벌 기업이) RE100을 요구하면 일방적일 수 있다”며 “(국내 상황에 맞게) 재생에너지를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 위원은 “전력부문 민영화에 대해 우려되는 부분은 보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민영화를 어떻게 감시하고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없이 그냥 ‘민영화냐, 공공이냐’라고 나누는 것은 논의 자체를 단순화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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