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벌처②] 독수리와 샤머니즘 그리고 기후위기

  • 남주원 기자
  • 2024.03.27 16:40

얼마전 취재차 참석한 한국몽골국제포럼은 기자를 독수리에 '입덕'하게 만들었다. 자연의벗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멸종위기종 포럼은 서울 홍대에 있는 한 대강당을 가득 메꿀 만큼 뜨거운 인파 속에 진행됐다. 오직 독수리를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러브벌처' 시리즈물로 전한다. 러브벌처는 사랑(Love)과 독수리(Vulture)를 뜻하는 두 단어를 합친 것이다. 

■러브벌처 연재기사 발행계획
①대머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져 
②독수리와 샤머니즘 그리고 기후위기
③몽골 조류학자 사랑게렐 이친허를러 인터뷰
④추루와 엠케이공칠의 궤적
⑤빨리 가려면 혼자, 멀리 가려면 함께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러브벌처 1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 독수리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이제 독수리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깊어졌겠다, 이 녀석들... 과연 이 험한 세상에서 잘 살아남고 있기는 한 건지 유심히 들여다볼 때다. 독수리가 맞닥뜨린 위협을 알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내가 너의 뼈를 갖고 있을지니,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렴"

샤머니즘 의식에 쓰일 용도로 온라인상 거래되고 있는 독수리 해골과 발톱.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샤머니즘 의식에 쓰일 용도로 온라인상 거래되고 있는 독수리 해골과 발톱.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많은 독수리가 샤머니즘과 미신의 희생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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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포럼 발표자였던 몽골조류보호센터(MBCC)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조류학자는 독수리 해골과 발톱 등 샤머니즘 의식에 사용되는 독수리 신체부위와 몽골 국민들이 이를 거래하는 장면 등의 사진을 공개했다.

또다른 몽골 연구진도 "최근 몽골에서 독수리 깃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현대의 종교적 관습과 관련된 것"이라고 보고서 <아프리카-유라시아 독수리 보존을 위한 다종행동계획>에 밝힌 바 있다. 

몽골과 접경하고 문화적인 배경이 비슷한 중국만 보더라도, 독수리 뼈로 만든 피리에 대한 기사와 참고문헌이 상당하다. 이른바 '뼈피리(Bone flute)'다. 뼈피리는 문학과 예술, 문화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독수리 뼈로 제작한 이 피리는 오랜 중국 역사에서 영적 치유와 종교적 신념, 샤머니즘과 토테미즘, 마녀문화, 프로파간다 등 다방면에 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독수리를 박해한 기록은 네팔에도 있다. 이곳 수염수리(Bearded vulture)들은 의학적 가치를 지니고 번영을 불러온다는 잘못된 미신으로 죽임 당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는 독수리 신체부위를 지니면 '명성'을 가져다준다는 미신이 널리 퍼져있다. 명성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암암리에 독수리 사체 일부를 고가에 사고팔며 전통의학과 제사 등 의식에 사용한다. 

현지에서도 독수리를 죽이거나 신체부위를 판매하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 있는 시장에서는 독수리 신체부위가 비밀리에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무속신앙이나 잘못된 신념은 비단 몽골 독수리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제학술지 SETAC에 게재된 논문 <인간침입에 의한 환경오염물질 영향을 반영한 구세계독수리>에 따르면 이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독수리인 '구세계독수리' 모두에게 가해진 위협이다. 

연구진은 "문화적·종교적 관행은 멸종위기에 처한 구세계독수리 개체군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독수리는 전통의학과 음식, 의식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농약에 중독된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 피해만큼은
인간과 독수리의 경계가 없다"

지구가열화로 인한 독수리 이동에 대한 영향을 모니터링한 자료. (사진 화포천생태학습관 곽승국 관장 제공)/뉴스펭귄
지구가열화로 인한 독수리 이동에 대한 영향을 모니터링한 자료. (사진 화포천생태학습관 곽승국 관장 제공)/뉴스펭귄

독수리는 기후위기에 의해서도 위협받고 있다. 러브벌처 1편에서 다뤘듯, 독수리는 바람의 기류를 타고 이동하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이날 화포천생태학습관 곽승국 관장은 "지구가열화로 인해 독수리 이동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기온변화가 혼란스러우니 독수리도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 관장에 따르면 지난해는 몽골 기온이 너무 높아져 독수리들이 평소보다 보름 이상이나 늦게 한국을 찾았다. 

그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독수리 이동생태를 모니터링한 결과, 몽골의 온도가 올라갈수록 독수리가 한국에 오는 시기는 늦어졌다. 급격한 기온변화에 폐사할 가능성도 높았다.

몽골 환경단체 사라나자연보존재단(SNCF) 사랑게렐 이친허를러 대표는 '조드'라고 불리는 몽골 기후위기 현상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조드는 몽골을 강타한 혹한과 폭설 현상으로 영하 50℃를 맴돈다.

사랑게렐 대표는 "몽골은 지난해 조드가 굉장히 심각했다"며 "조드 발생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 같은 기후위기와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몽골 가축은 물론 독수리와 맹금류가 위기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몽골 소방청에 따르면 몽골 땅의 약 90%가 조드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겨울 발생한 조드는 최근 10년간 발생한 조드 중 5번째로 강력했다. 기후전문가들은 통상 약 10년마다 발생하는 조드 주기가 기후위기로 인해 빨라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노영대 감독 역시 "조드로 인해 몽골의 수많은 가축이 죽고있다"며 "이는 몽골 유목민과 독수리도 죽어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나라의 자연재해와 위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늘 날던 친구들과 가족 모두
부딪히고 충격받아 죽었죠"

조류비행전환기.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조류비행전환기.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몽골조류보호센터가 독수리 보존을 위해 벌이는 주요활동 중 하나는 조류 감전사 저감 프로젝트다. 많은 몽골 독수리들이 송전선(고압선) 충돌과 감전사로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현재 몽골에서는 나선형과 플래퍼형 등 2가지 유형의 조류비행전환기가 사용되고 있다. 조류비행전환기란 비행경로에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새에게 알려줌으로써 송전선 충돌을 방지하는 장치다. 

예컨대 송전선에 설치한 이 장치가 반사판을 갖추거나 자외선을 방출해 독수리가 먼 거리에서도 장애물을 예측할 수 있게 신호를 주는 방식이다.

알탕게렐은 "우리는 나선형 타입을 더 권장한다. 고비사막 남동부 220kV짜리 송전선에서 관찰된 것처럼 나선형이 플래퍼 타입보다 혹독한 몽골 기후 조건에서 내구성이 더 좋고 오작동률도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센터 측에서 조류비행전환기를 설치한 사례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수많은 독수리가 송전선 충돌과 감전사로 죽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억울합니다. 우리는 사냥 못한다니까요!"

'벌처'는 '이글'과 달리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하지 못한다. 대신 죽은 동물 사체를 먹어 '야생의 청소부'라고 불린다.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벌처'는 '이글'과 달리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하지 못한다. 대신 죽은 동물 사체를 먹어 '야생의 청소부'라고 불린다.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몽골에서 벌처는 검독수리(Golden eagle)라는 다른 종으로 오해받아 억울하게 죽기도 한다. 

검독수리는 보통 깊은 산속에 살면서 산토끼나 꿩, 산새, 뱀 등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해 먹는다. 겨울에는 평야나 해안에서 오리나 물새를 노리기도 한다. 때때로 가축 새끼도 공격한다.

이에 사람들은 벌처가 가축을 죽였다고 오해해 포획하거나 덫을 놓는다. 벌처는 검독수리와 달리 살아있는 가축을 사냥하지 않고 이미 죽은 사체를 먹는데 말이다.
 

"거, 땅 좀 같이 나눠씁시다"

가축 방목으로 황폐화된 몽골의 토지 도식화.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가축 방목으로 황폐화된 몽골의 토지 도식화.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과도한 가축 방목으로 인한 토지 황폐화와 서식지 파괴도 한몫한다. 현재 몽골에서 진행 중인 사막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몽골 독수리는 높은 나무나 절벽, 산 정상 바위에 둥지를 튼다. 하지만 일부 독수리는 낮은 덤불과 초원, 사막 등에도 둥지를 짓는데, 이들은 지나친 방목화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훼손된 서식지에 터전을 잃었다. 
 

"중독됐어요, 독극물에..." 

농약 중독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은 독수리.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농약 중독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은 독수리. (사진 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마지막으로 독수리 목숨을 앗아가는 주요 원인은 '농약 중독'이다. 농약으로 폐사한 동물 사체를 섭취함으로써 2차 중독에 걸려 죽는 것이다.

일부 마을주민들은 늑대나 들개가 가축을 해치자 일부러 가축 사체에 살충제나 독약을 뿌린다. 엄한 독수리는 그 사체에 입을 댔다가 숨을 거두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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