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였어?' 서울교대 쪽동백나무 잎사귀 잘라간 범인 정체

  • 남예진 기자
  • 2023.08.31 14:38
가위벌에 의해 곳곳이 잘려나간 쪽동백나무 잎.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가위벌에 의해 곳곳이 잘려나간 쪽동백나무 잎.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예진 기자] 강남 한복판에서 왕가위벌, 밑들이벌에 이어 장수가위벌의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해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쪽동백나무의 나뭇잎 곳곳이 동그랗게 잘려 나간 흔적이 발견됐다.

이를 목격한 서울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신동훈 교수는 반듯하게 잘려 나간 단면을 통해 '가위벌'이 유력한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다만 범인의 모습이 끝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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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지난달 18일, 신동훈 교수는 쪽동백나무의 잎사귀를 잘라낸 범인이 '장수가위벌'이라는 사실을 포착해 '생물관찰—WhyTV' 유튜브에 영상을 공유했다.

장수가위벌.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장수가위벌.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그렇다면 장수가위벌은 대체 어떤 곤충일까?

기존에 장수가위벌은 일본과 중국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농림축산검역본부 이흥식 박사에 의해 국내에서도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그의 논문에 근거해 국가생물종목록에도 추가됐다.

이흥식 박사는 "장수가위벌은 과거에 비해 인터넷과 촬영기기의 발달로 전국적으로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으나, 다른 가위벌과 비교했을 때 자주 발견되지 않는 편"이라고 밝혔다.

왼쪽은 왕가위벌, 오른쪽은 장수가위벌이다. 두 종은 멀리서 보면 크기와 외형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김새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왼쪽은 왕가위벌, 오른쪽은 장수가위벌이다. 두 종은 멀리서 보면 크기와 외형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김새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장수가위벌은 왕가위벌과 외형과 크기가 비슷해 자주 같은 종으로 오해받지만, 자세히 보면 곳곳에서 다른 점이 관찰된다.

이흥식 박사는 "왕가위벌은 머리가 동그랗고 크며 큰 턱의 앞쪽이 가느다랗다. 반면 장수가위벌은 머리가 가늘지만, 잎사귀를 자르기 위해 턱에 넓은 절단면이 발달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양봉학회지에 게재된 <한국산 가위벌속 미기록종 1종, Megachile pseudomonticola 보고(벌목, 가위벌과)> 논문에서도 장수가위벌의 큰 턱은 둥글고, 2번째와 3번째 이 사이에 절단면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돼 있다.

이 박사는 "날개 빛깔도 조금 다른데 왕가위벌 날개는 전체적으로 흑갈색으로 보이지만, 장수가위벌 날개는 끝의 4분의 1 정도만 흑갈색을 띠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를 들여다보면 왕가위벌은 점각(點刻)이 크고 많이 나 있지만 장수가위벌은 배 부분에 점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왕가위벌은 배에 흰 선이 1개 관찰되지만, 장수가위벌은 마디마다 흰 선을 관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왼쪽은 서울교육대학교 테니스장에서 산란방을 꾸리고 있는 왕가위벌. 오른쪽은 산란방에서 발견된 왕가위벌의 알. (사진 남예진 기자, 신동훈 교수 제공)/뉴스펭귄
왼쪽은 서울교육대학교 테니스장에서 산란방을 꾸리고 있는 왕가위벌. 오른쪽은 산란방에서 발견된 왕가위벌의 알. (사진 남예진 기자, 신동훈 교수 제공)/뉴스펭귄

두 종은 산란 방식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왕가위벌의 경우 잎사귀를 자르는 대신 나무 구멍에 꿀과 꽃가루를 뭉친 경단을 먹이로 넣는다. 이후 경단 위에 알을 낳고 송진으로 벽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며 여러 칸의 산란방을 만든다.

칡 잎사귀를 잘라가는 장수가위벌. (영상 sigma1920HD)

반면 장수가위벌은 여타 가위벌과 마찬가지로 나뭇잎을 잘라 나무 구멍이나 바위틈에 산란방을 만들고, 말아 둔 잎사귀 속에 꽃가루를 모아 알을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뭇잎 곳곳에 잘려나간 흔적이 보이는 쪽동백나무.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나뭇잎 곳곳에 잘려나간 흔적이 보이는 쪽동백나무.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이때 장수가위벌은 주로 '칡' 잎사귀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서울교대서 관찰된 장수가위벌은 '쪽동백나무'의 잎을 잘라가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흥식 박사는 "칡 잎사귀로 산란방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넓은 잎사귀라면 가리지 않는 편"이라며 "잎을 크게 잘라내기 때문에 부드럽고 큰 잎사귀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왼쪽은 백목련나무, 빨간선으로 표시된 오른쪽은 쪽동백나무다. 잎사귀를 관찰하면 백목련나무의 잎사귀는 잘려나간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쪽동백나무는 곳곳이 잘려나가 있다.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왼쪽은 백목련나무, 빨간선으로 표시된 오른쪽은 쪽동백나무다. 잎사귀를 관찰하면 백목련나무의 잎사귀는 잘려나간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쪽동백나무는 곳곳이 잘려나가 있다.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실제로 쪽동백나무 바로 옆에 식재 된 백목련 나무의 잎사귀는 조금 더 질긴 탓에 장수가위벌이 잘라간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쪽동백나무의 잎은 여기저기가 잘려 나간 상태였다.

또 쪽동백나무와 같은 과에 속하는 때죽나무도 잎사귀가 작다 보니 장수가위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신동훈 교수는 "장수가위벌이 잎사귀를 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초 정도였지만, 나뭇잎을 고르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며 "장수가위벌 나름대로 고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불과 2~3주 전만 해도 잎사귀를 잘라가는 장수가위벌을 관찰할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산란방 제조를 끝마친 듯하다"고 예측했다.

이어 "장수가위벌이 잎을 잘라가는 모습을 눈으로 쫓았지만 순식간에 건물 뒤로 날아가 버려 산란방의 위치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며 "이를 찾는 것이 당면한 과제"라고 전했다.

밑들이벌 . (사진 생물관찰—WhyTV 영상 캡처)/뉴스펭귄
밑들이벌 . (사진 생물관찰—WhyTV 영상 캡처)/뉴스펭귄

한편 서울교대에선 왕가위벌과 장수가위벌 뿐만 아니라 희귀한 밑들이벌의 생태도 관찰되고 있다.

밑들이벌은 왕가위벌의 산란방을 찾아낸 후 그 안에 있는 왕가위벌의 애벌레에 긴 산란관을 이용해 알을 낳는 기생벌이다.

신동훈 교수는 도심 한복판에서 왕가위벌, 장수가위벌, 밑들이벌 등의 야생벌들이 산란과 경쟁을 통해 번식하고 있는 생태를 학생들과 함께 관찰하며 기록하고 있다. 신 교수는 "도심속 생태관찰이 학생들의 생태소양을 향상시키는데 효과적이고, 이러한 생태소양이 궁극적으로 기후위기 대응 역량을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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