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탈석탄' 증권사들, 3년간 석탄기업에 수조원 '투자'

  • 최나영 기자
  • 2022.08.10 10:15

신규 삼척석탄화력 투자 5개 금융기관 석탄기업 투자현황 분석
19년 2월~21년 11월 GCEL기준 조사...NH 5조, 신한금투 3206억원 투자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기후위기 심화로 탄소 배출량 감축이 전 세계의 과제가 됐다. 금융기관들이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투자할 때 화석연료 관련 기업은 배제하라는 사회적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금융기관 10곳 중 7곳 정도는 2019~2020년에 '탈석탄 선언'을 했다. 선언 이후, 실제 국내 금융기관들은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을까?

현재 강원도 삼척에서는 2024년 준공을 목표로 삼척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이다. 삼척 석탄화력발전소는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신규 건설되는 석탄발전소로, 포스코의 자회사 삼척블루파워가 짓고 있다.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 KB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국내 6개 금융기관의 회사채 발행 주관과 인수를 통해 사업비 일부를 조달하고 있다. 해당 금융기관 6곳 중 5곳은 탈석탄 선언을 했음에도 석탄발전 기업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탈석탄 금융’ 헛구호?…“삼척석탄발전 회사채 주관 중단하라” 기사 참조>

건설 중인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사진 삼척블루파워 홈페이지)/ 뉴스펭귄
건설 중인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사진 삼척블루파워 홈페이지)/ 뉴스펭귄

그렇다면 이 금융기관들이 지원한 석탄 관련 기업은 삼척 석탄화력발전소뿐일까? 이 금융기관들은 삼척블루파워를 포함해 지금까지 석탄발전 기업에 얼마나 많이 지원했을까?  <뉴스펭귄>은 9일 독일 비영리단체 우르게발트와 국내 기후운동단체 기후솔루션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6개 증권사 중 5곳이 2019년 2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약 3년간 석탄 관련 기업을 지원한 내역을 분석했다. 키움증권의 지원내역은 확인되지 않아서 분석하지 못했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석탄 관련 기업’의 기준은 우르게발트가 개발한 GCEL(Global Coal Exit List‧세계 탈석탄 목록)의 기준을 차용했다. GCEL은 석탄의 생산뿐 아니라 유통‧소비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체를 석탄사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국내 금융기관들이 석탄화력발전 사업에 대한 직접 투자 중단만을 탈석탄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에 비해 강화된 기준이다. 기후솔루션은 “GCEL의 기준은 글로벌 금융기관 탈석탄 정책의 기초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탄 생산‧유통‧소비 모두 ‘석탄사업’으로 규정하고 분석했더니
NH투자증권, 석탄기업 지원 규모 3년간 38억달러 이상

분석 결과, NH투자증권이 이 기간 석탄 관련 기업에 지원한 규모는 해당 자료를 통해 확인된 것만 해도 38억8000만달러(약 5조568억원)로 집계됐다. 지원한 기업은 삼척블루파워‧포스코‧LX인터내셔널(구 LG상사)‧한국남부발전‧한국남동발전‧한국중부발전‧한국동서발전‧GS E&R(지에스이앤알)‧두산에너빌리티(구 두산중공업) 등이다. 이들 기업은 한국‧베트남‧호주‧인도네시아 등에서 석탄 관련 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프 뉴스펭귄)/뉴스펭귄
(그래프 뉴스펭귄)/뉴스펭귄

석탄기업 회사채 인수 규모… 신한금융투자 2억4500만달러
미래에셋‧한국투자증권은 각 1억8700만‧6400만달러

자료에 따르면 신한금융투자는 이 기간 석탄 관련 기업에 총 2억4500만달러(약 3205억원)를 투자했다. 세부 내용을 보면, 포스코 계열사들의 회사채 2억100만달러(약 2631억원)와 LX인터내셔널 회사채 4300만달러(약 563억원)를 인수했다. 포스코 계열사들은 한국‧베트남‧호주에서 석탄 관련 사업을,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에서 석탄채굴 관련 사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래에셋증권이 이 기간 석탄 관련 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확인된 금액은 총 1억8700만달러(약 2437억원)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전력 회사채 1억7000만달러(약 2225억원)와 한국남부발전 회사채 1700만달러(약 221억원)를 인수했다. 한전은 국내에서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석탄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이 기간 석탄 관련 기업 투자금액은 6400만달러(약 842억원)다. 이는 한국‧인도네시아‧베트남에서 석탄 관련 사업을 진행한 한국중부발전의 회사채를 인수한 금액이다. 이 기간 KB증권이 석탄기업에 투자한 내역은 입수한 자료 중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탈석탄 선언 이후 석탄기업 지원 사례도 일부 있어

이 자료에 나타난 회사채 인수 시기를 고려해 보면, 이들 증권사 중 일부는 탈석탄 선언 이후로도 석탄 관련 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분석된다. NH투자증권의 대주주인 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2월 탈석탄 금융을 선언했다. 미래에셋증권도 지난해 3월 환경 사회 정책 선언문을 통해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와 관련 인프라 건설을 배제영역으로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KB금융그룹은 2020년 탈석탄 금융을 선언하고 친환경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투자증권도 2020년 8월 탈석탄을 선언했다. 신한금융그룹도 2020년 책자 등을 통해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탈석탄 기조를 밝힌 바 있다. 한편, 키움증권은 탈석탄 선언을 비롯해 탈석탄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기후솔루션은 "이 기업들은 탈석탄 선언 이후로도 삼척블루파워를 비롯한 석탄기업을 지원했다"며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했다.

 

(사진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 KB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홈페이지)/뉴스팽귄
(사진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 KB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홈페이지)/뉴스팽귄

 

증권사들 “석탄기업 범위 매우 광범위하게 규정한 듯,
내역의 대다수는 탈석탄 선언 이전에 지원한 것”

이같은 분석결과에 대해 일부 금융기관들은 우르게발트가 석탄기업의 범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규정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나 한전‧포스코 같은 기업들은 석탄 관련 기업으로 보기 애매하다”며 “삼척 석탄화력발전소와 같이 탈석탄 선언 이전에 맺은 인수확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언 이후로도 지원하고 있는 것 외에는 석탄 관련 기업을 지원한 내역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투자 회사가 석탄기업으로 분류됐다는 이유만으로, 석탄‧화력발전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발행된 회사채를 인수한 것까지 석탄기업 지원 내역으로 규정하기엔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도 했다. 이 관계자는 “두산에너빌리티나 한전‧포스코 같은 기업들의 석탄발전 사업을 위해 자금을 조달한 것도 아니다”며 “해당 내역 중에는 녹색채권 목적의 투자가 포함돼 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자료에 나타난 대부분이 탈석탄 선언 이전에 지원한 내역이라는 해명도 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목록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기때 인수한 회사채 내역도 포함돼 있다”며 “지원 내역은 삼척블루파워 사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차환‧상환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신한금융투자와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도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탈석탄 선언 이전에 계약을 이미 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만 석탄 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며 “이같은 경우 말고는 탈석탄 선언 이후 석탄기업을 지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6개 증권사들이 지난 4월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를 인수한 것도 2018년 삼척블루파워와 맺은 자금조달에 관한 인수확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단체 “국내 석탄기업 설정 범위가 좁은 것…
석탄기업에 분류된 기업에 금융지원하지 말아야”

환경단체들은 우르게발트가 제시한 석탄기업 범위가 과도하게 광범위하다는 금융기관들의 지적에 대해 국내 금융기관들의 석탄기업 설정 기준이 낮은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현재 대부분 금융기관이 도입한 탈석탄 기준은 신규 석탄화력발전 사업에 대한 투자 중단으로 한정돼 있다. 현재는 사실상 신규로 추진되는 석탄화력발전 사업이 없어진 만큼, 환경단체들은 이 같은 기준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수연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GCEL에 사용되는 기준이 전 세계에서 권고되는 기준이고, 이 기준보다 더 높은 기준을 도입하는 해외 기관도 많다”며 “NH투자증권이 지원한 두산에너빌리티와 한전포스코도 대표적인 석탄 기업으로 손꼽힌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같이 석탄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에 대해 금융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며, 많은 해외 기관투자자가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환경단체들은 석탄기업에 대한 신규 금융지원을 제한하는 것에서 나아가 기존에 투자한 석탄자산 역시 적극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연구원은 “해외에서는 이미 석탄뿐 아니라 화석연료 전반에 대해 금융제재를 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비해, 국내 증권사들은 탈석탄 선언 자체를 늦게 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며 “채권은 만기일이 있으니 더 이상 연장은 하면 안 되고, 주식의 경우 기준을 세워 서둘러 탈석탄을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석탄발전이 정부의 탈석탄 기조로 경제성도 잃었다는 지적도 했다. 실제 삼척블루파워는 지난해 1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올해 4월 18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도 기관투자가들의 수요는 전무했다. 석탄발전에 비우호적인 환경이 지속된 탓으로 보인다. 미매각된 회사채는 발행해 준 6개 금융기관이 모두 떠안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