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한양도성에는 표범이 거닐었다

  • 이후림 기자
  • 2021.11.17 13:49
아무르표범 (사진 콜체스터동물원, 위키미디어)/뉴스펭귄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19세기 후반까지 서울 도심 곳곳에 아무르표범이 살았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서울대학교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런던동물학회(ZSL) 등 국제연구진은 한양 15~19세기 기록을 근거로19세기 말까지 아무르표범이 현재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성벽 안에서 사람들과 공존했다는 연구결과를 15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컨저베이션 사이언스(Frontiers in Conservation Science)'에 게재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오늘날 러시아, 중국, 북한 국경 제한된 지역에서만 소수 살아남은 아무르표범이 과거에는 무엇보다 한반도 남쪽에 널리 퍼져 서식했다는 것.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연구진은 1870년부터 1900년 사이 한국을 방문한 서양 여행자의 책, 편지, 현장 일기를 비롯한 다양한 출처에서 서울 도성 내 '표범 목격담' 12사례를 찾아냈다. 이 중 사례 2곳에는 호랑이와 표범 두 종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던 단어 '큰 고양이(Big Cat)'로 언급됐으나 연구진은 19세기 말 서울이 6~8m 높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점을 예로 들어 호랑이보다는 표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1890~1897년 사이에 제작된 서울의 역사 지도. 표범 목격(1870–1900) 위치가 빨간색으로 표시됐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프런티어스 인 컨저베이션 사이언스' 학술지)/뉴스펭귄
19세기 후반 서구 거주민과 여행자에 의한 서울 표범 목격기록 (사진 승정원일기, '프런티어스 인 컨저베이션 사이언스' 학술지)/뉴스펭귄

기록에 따르면 당시 표범은 대부분 버려진 궁궐이나 외국 대사관 주변에서 관찰됐다. 19세기 말 이 같은 공간은 주로 정원, 자연 초목 및 수역으로 둘러싸여 있었을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은 거의 방문하지 않았다.

표범이 낮에 버려진 궁궐이나 숲에 숨어있다가 어두워지면 도심에 나와 사냥에 나섰을 것이라는 게 연구진 추정이다.

궁궐 내 정원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길 잃은 개, 주민들이 기르던 돼지, 사슴 등 사냥거리가 풍부했다는 점 역시 아무르표범이 한양 도성에 터를 잡고 서식할 수 있었던 주 요인이다. 

연구진은 아무르표범이 1970년대까지 한국 외딴 산간지대에서 살아남았지만 19세기 후반 한국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이 도심 내에서 이들 멸종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조선시대 전국에 서식하던 표범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무차별적인 사냥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같은 시기, 서울의 많은 지역이 개간되면서 버려진 궁궐 등이 막사로 재건돼 서식지가 사라지기도 했다.

1902년 높은 수준의 도시 개발과 주거 밀도를 가졌던 서울 (사진 '프런티어스 인 컨저베이션 사이언스' 학술지)/뉴스펭귄

연구 주 저자 조슈아 포웰(Joshua Powell) 박사는 "역사적 생태학은 현재 멸종위기에 처한 종의 역사적 분포에 대한 지식 격차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도구"라며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 보존방법에 대해 훨씬 더 명확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한국 한양에서 아무르표범 출몰과 절멸은 이에 대한 완벽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런던동물학회 사라 두런트(Sarah Durant) 소장은 "이번 사례로 표범은 도시에서 생존할 수 있는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라며 "인간과 공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서로 받아들인다면 도시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항 교수는 "이번 연구는 도시화된 환경에서 인간과 맹수 공존 사례를 공간적, 시간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19세기 말에 초점을 맞춘 이번 연구 외에도 조선왕조 500년에 걸쳐 산발적으로 표범과 공존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조건만 맞는다면 도심에서 인간과 표범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때 사람들과 함께 서울에 살았던 아무르표범은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있으며 러시아, 중국 및 북한 국경 일부 지역에만 매우 소수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