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탄소시장 톺아보기 ①] 민간주도 탄소시장이 온다…증권가 선점 경쟁

  • 김지현 기자
  • 2023.05.16 16:14
(사진 Carbon Market Watch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사진 Carbon Market Watch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뉴스펭귄 김지현 기자] 전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로 산업계의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발적 탄소시장’’이 금융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정부기관이 참여 기업을 지정하고 탄소배출권을 검증하는 ‘규제 탄소시장’과 달리, 민간이 정부의 규제 없이 탄소감축 사업을 벌이고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을 말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국내 최초 자발적 탄소시장 거래소를 개설할 계획이다. 이에 하나증권과 SK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자발적 탄소시장은 검증 체계의 부실함과 중복 계산 문제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뉴스펭귄>은 자발적 탄소시장의 부상 배경과 현황, 문제점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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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탄소시장 위주로 재편되는 탄소시장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는 기업들에게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할당한 후, 기업이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인증기관의 검증을 거쳐 인증서(탄소배출권)를 발급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기업들은 이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식처럼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자동차 제조기업이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전기차를 개발하면 탄소배출권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 또 △ 삼림 보존 및 삼림 조성 사업 △ 재생에너지 사업 △ 탄소 포집·저장·활용 사업 등 외부에서 탄소감축 사업을 해서 탄소배출권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기업은 탄소배출권으로 자기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하거나 다른 기업에게 탄소배출권을 팔아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반면, 온실가스를 할당량보다 많이 배출한 기업은 다른 기업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온실가스 배출량 초과분을 상쇄해야 한다. 배출량 상한선을 지키지 못할 경우, 과징금이 부과되고 기업 주가와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근 증권사들은 왜 탄소배출권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을까? 이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 자발적 탄소시장을 중심으로 재편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이 거래되는 시장은 크게 ‘규제 탄소시장’과 ‘자발적 탄소시장’으로 구분된다. 규제 탄소시장은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설정하고,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기업을 지정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하고, 이 기업들이 거래소 안에서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도록 하는 시장이다.

반면 자발적 탄소시장은 민간이 규제기관의 감독 없이 자발적으로 탄소감축 사업을 벌이고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을 말한다. 비정부 기관이 탄소감축 사업을 검증해 탄소배출권을 발행하며, 시장 참여자들은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탄소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규제 탄소시장이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의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규제 탄소시장은 정부기관이 지정한 기업만 참여할 수 있어 거래량이 부족하고, 전 세계적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로 인해 늘어난 산업계의 탄소배출권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자발적 탄소시장이 새로운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insey)는 2021년 1월 발간한 보고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발적 탄소시장 청사진’에서, 2030년 자발적 탄소시장 규모가 최대 500억달러(약 66조82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국내 최초 자발적 탄소시장 거래소 개설

특히 한국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국내 최초 자발적 탄소시장 거래소를 개설할 예정이다.

기존 한국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은 정부가 지정한 업체 650곳과 금융기관 5곳(산업은행, 기업은행,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SK증권)만 거래에 참여할 수 있어 거래량이 저조했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자발적 탄소시장 거래소를 개설해 정부기관의 지정을 받지 않은 기업도 탄소배출권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미국 베라(Verra)와 스위스 골드스탠다드(Gold Standard) 등 극소수 탄소배출권 인증 기관이 담당해 온 자발적 탄소배출권 품질 인증, 발급, 유통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민간 주도 탄소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열린 ‘ESG 금융 추진단 2차 회의’에서 “현재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기업의 탄소배출 감축을 유도하기 위한 가격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시장참여 확대와 파생상품 도입 등을 통해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지난해 9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증권가, 자발적 탄소시장 선점 경쟁

하반기 자발적 탄소시장 거래소 개설을 앞두고, 국내 증권사들의 시장 선점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 지정 기업을 넘어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시장으로 확대될 경우, 금융업체의 역할이 거래 중개뿐만 아니라 탄소배출 감축 사업 투자, 탄소배출권 거래 플랫폼 개발 및 운영, 탄소배출 관리 컨설팅, 탄소배출권 관련 파생상품 거래 등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최근 자본시장 침체 여파로 실적 하락세를 겪고 있어, ESG 경영을 통한 평판 개선과 이윤 창출을 동시에 꾀할 수 있는 탄소배출권 사업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까지 금융감독원에 ‘자발적 탄소배출권에 대한 자기매매 및 장외거래 중개업무(이하 자발적 탄소배출권 중개업무)'를 신청한 증권사는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SK증권, NH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8곳이다.

특히 하나증권, SK증권, NH증권, 한국투자증권이 선제적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하나증권은 2022년 4월 국내 증권사 최초로 자발적 탄소배출권 중개업무 등록을 마쳐 자발적 탄소시장에 진입했다. 이어 같은 달 방글라데시 6개 주에 태양광 정수시설을 보급하는 탄소감축 사업을 해 탄소배출권 94만톤을 확보했다. 또 2022년 12월에는 싱가포르 탄소배출권 거래소 CIX와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은형 하나증권 대표이사(오른쪽)와 미켈 라센 CIX 대표이사. (사진 하나증권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지난해 12월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은형 하나증권 대표이사(오른쪽)와 미켈 라센 CIX 대표이사. (사진 하나증권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SK증권은 지난 2021년 국내 증권사 최초로 탄소배출권 대표 인증기업인 베라와 골드스탠다드에서 인증받은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해 2021년 탄소중립을 달성했다. 지난 12일에는 국내 증권사 최초로 국제 금융배출량 측정 이니셔티브인 ‘탄소회계금융연합체(이하 PCAF)’에 가입했다. 약 380개 금융사가 참여하고 있는 PCAF는 금융기관이 투자와 대출 등 금융활동을 통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금융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한다.

NH투자증권은 올해 초 탄소금융팀을 신설해 국내외 탄소감축 사업 투자 및 탄소배출권 거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농협과 연관성이 높은 농축산 부문에 대한 탄소감축 사업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발행한 탄소배출권을 국내외 탄소시장에 유통할 계획이다. 지난 2월에는 친환경 벤처기업 포이엔(4EN)의 탄소감축 사업에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해 2030년까지 총 16만7000톤에 달하는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확보할 계획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22년 4월에 자발적 탄소시장 진출을 발표하고 금융감독원에 자발적 탄소배출권 중개업무를 신청했다. 또 같은 해 11월 한국중부발전과 '자발적 탄소시장 배출권 사업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어 국내외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공동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왼쪽)과 김호빈 한국중부발전 사장이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한국투자증권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지난해 11월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왼쪽)과 김호빈 한국중부발전 사장이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한국투자증권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하나은행의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15일 발간한 보고서 ‘글로벌 은행의 금쪽같은 탄소배출권’에서 “향후 자발적 탄소시장이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전반의 성장을 촉발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라며, “유럽계 금융회사에 비해 자발적 탄소시장 진출이 늦은 국내 금융회사들은 틈새시장을 발굴하거나 탄소관리 컨설팅 등 솔루션 제공으로 업무를 특화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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