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멸종위기종②] 천연기념물 흑돼지? 미처 몰랐던 제주흑돼지의 진실

  • 이후림 기자
  • 2021.05.26 06:00

 

제주토종흑돼지 (사진 제주 축산진흥원 제공)/뉴스펭귄

뉴스펭귄의 새로운 기획시리즈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은 국내에 서식하는 주요 멸종위기종의 ‘현주소’를 알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종이든, 그렇지 않든 사라져가고 있는 종들이 처한 위기상황을 주로 드러내는 것이 목표다. 우리 바로 곁에서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종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다. 공존과 멸종은 관심이라는 한 단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제주 여행을 앞두고 맛집 리스트에 흑돼지가 빠질 리 없다. 제주 지천에 깔린 흑돼지 식당 중 가장 맛있는 집을 찾기 위해 검색해 본 경험은 제주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한 번쯤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제주 토종 재래흑돼지가 201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호종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면 '내가 그동안 천연기념물을 먹은 것이냐'며 재차 사실 여부를 확인하곤 했다.

제주흑돼지는 독특한 역사를 통해 문화적 가치가 높은 전통 가축으로 평가받고 있는 엄연한 보호종 천연기념물 제550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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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가 제주에서 접하는 흑돼지는 대부분 천연기념물 재래흑돼지가 아닌 일반 개량흑돼지다. 제주개량돼지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을 전후해 생산능력이 낮은 토종재래돼지 능력 개량을 목적으로 다양한 개량종이 유입되면서 탄생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다수 개량종이 농가에 분양되면서 토종돼지 개체 수를 급감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제주토종흑돼지 (사진 제주 축산진흥원)/뉴스펭귄

토종흑돼지 개체 수가 자연스럽게 줄게 된 원인은 또 있다.

과거 제주흑돼지는 '통시'라고 불렸던 야외 변소 근처에서 인분을 먹고 살았는데, 1970년 시작된 새마을운동으로 재래식 화장실이 개량되면서 이들 존재 가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빨리 자라고 번식력 좋은 개량돼지를 두고 굳이 토종돼지를 고집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개체수가 급감하자 제주축산진흥원은 1980년대 후반 도 전체를 뒤져 순수 토종흑돼지 5마리를 찾았고, 계통번식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축산진흥원에서 사육, 보존되는 개체는 280여 마리에 달한다. 진흥원은 보호개체 수가 250마리를 넘어가면 사육 환경이 제한적인 탓에 분양을 신청한 일부 농가에 보내기도 한다.

동일한 종이라도 오로지 축산진흥원에서만 보존의 역할을 수행하며, 개인에게는 보존 책임이 없다.

그렇다면 재래흑돼지와 개량흑돼지의 차이는 무엇일까?

1989년 흑돼지 멸종 직전 농원을 시작해 첫 분양 때 1순위로 천연흑돼지를 들여온 늘푸른농원 김응두 대표는 뉴스펭귄과의 인터뷰에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토종 제주 재래흑돼지와 개량흑돼지를 눈으로만 구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주토종흑돼지(좌)와 제주개량흑돼지 (사진 제주 축산진흥원 제공)/뉴스펭귄

그의 말에 따르면 토종흑돼지는 입과 코, 특히 발목이 개량흑돼지에 비해 눈에 띄게 갸름하며 보다 매끄러운 털을 가지고 있다. 몸집 역시 작은 편이다. 이에 3개월 된 개량흑돼지와 7개월된 토종흑돼지를 섞어놓으면 제 아무리 전문가라도 구별이 쉽지 않다.

두 종을 키우는 방법 또한 다르다.

김응두 대표는 "지금은 질병 때문에 일시적으로 금지됐지만 재래흑돼지는 옛 방식으로 운동장에 풀어놓고 키운다"며 "일반 돼지가 평생 케이지에 갇혀 햇빛 한 번 못 보고 자란다면 토종흑돼지는 매일 햇빛을 보며 자라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토종돼지는 기간을 오래 두고 기른다"며 "항생제 등은 일체 주사하지 않기 때문에 발육이 더디고 살이 단단하다"고 덧붙였다.

제주토종흑돼지 (사진 제주 축산진흥원 제공)/뉴스펭귄

지자체와 전문가들은 이들 종을 보존해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주도 축산진흥원 신은애 농업연구사는 "제주흑돼지 유전자 특성 분석 결과 육지 재래돼지와는 차별된 혈통의 고유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제주도 특유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해 체질이 튼튼하고 질병에도 강하다"며 "우리나라 토종 가축으로서 체계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응두 대표는 "학자들 말에 의하면 흔히 접하는 제주개량흑돼지 몸속에 토종돼지 DNA 3~7%가 들어있다고 한다"며 "이 사실 만으로 토종돼지 보존 가치는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흑돼지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17년 문화재청, 농촌진흥청, 제주특별자치도 세 기관은 '천연기념물 가축 유전자원 중복 보존 협약'을 체결해 유전자원을 보호하고 있으며 제주흑돼지의 엄격한 사양관리를 위해 '제주흑돼지 관리지침'을 제정, 더욱 안정적으로 혈통이 보존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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