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뒷간②] "인권도, 지구도 지킬 공간 만듭니다"

  • 이수연 기자
  • 2023.12.07 07:00
물이 없는 생태뒷간이 완성된 모습.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물이 없는 생태뒷간이 완성된 모습.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지구 반대편 아이들이 물동이를 들고 7시간을 걸어요. 떠온 물은 흙탕물이죠. 같은 지구에 사는데 나는 편하고 저들은 힘든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느꼈어요. 물을 조금이라도 아낄 방법을 고민하다가 생태뒷간을 만들었죠."

충북 충주에 사는 엄수정 씨는 2012년 한 다큐멘터리를 본 뒤, 물 없는 화장실을 짓기로 결심했다. 다만 재래식 화장실은 엄두가 안 났다. 찾아보니 '생태뒷간'이란 게 있는데 핵심은 대변과 소변 분리였다. 대변은 발효할 때 공기가 잘 통해야 하는 반면 소변은 공기 접촉을 차단해야 퇴비로 쓸 수 있어서다. 해외 제품도 있었지만 비싼 가격 탓에 직접 대소변분리기 개발에 나섰다. 우리나라 최초였다. 

그렇게 만든 생태뒷간을 사용한 지 2년, 좋은 건 나눠야 한다는 지인의 제안에 판매를 시작했다. 2014년 생태뒷간을 제작하는 사회적기업 '스페이스선'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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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선이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한 대소변분리기를 장착한 변기. 뒤로는 대변을 배출하고 앞으로는 소변을 배출한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스페이스선이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한 대소변분리기를 장착한 변기. 뒤로는 대변을 배출하고 앞으로는 소변을 배출한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조립식으로 완성
사업 비결은 '판매자 이전에 사용자'

스페이스선의 생태뒷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뉴스펭귄>은 지난 1일 고객 의뢰를 받고 충남 공주로 향한 스페이스선과 동행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그 위에 미리 만들어온 바닥면, 벽면 4개, 천장과 지붕을 하나씩 조립한다. 안에는 대소변분리기가 달린 변기와 대변을 담는 통을 설치한다. 마지막으로 소변이 이동하는 호스를 밖으로 빼서 통에 연결하면 완성이다.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스페이스선이 10년째 사업을 이어온 동력은 사업보다 먼저인 삶에서 나온다. 판매자 이전에 한 명의 사용자로서 개선을 거듭했다. 스페이스선 엄수정 대표는 화장실에 갈 때나 가지 않을 때나 오로지 생태뒷간 생각뿐이었다. 엄 대표는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면서도 편안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가 지금의 생태뒷간"이라고 말했다.

 

수세식의 한계
'재난 앞 무용지물'

생태뒷간 설치를 의뢰한 농부 권태옥 씨는 "벌써 두 번째 설치인데 항상 100% 만족한다"며 "수세식 화장실은 정화조랑 물, 전기처럼 필요한 게 많은데 생태뒷간은 다 자연으로 돌아가니까 에너지를 쓰지 않아서 관리도 쉽다"고 말했다. 

권 씨는 "생태뒷간에서 모인 분뇨는 숙성해 바로 앞에 밭으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도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갈 텐데 이 세상에 쓰레기를 많이 남겨놓고 가는 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수세식 화장실용 정화조를 설치하기 위해 땅을 갈아엎는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가 나온다. 수세식 화장실은 기후재난과 같은 위기 앞에 한계가 분명해진다. 재난 상황에선 이동식 화장실이 중요한데, 물이 필요한 수세식 화장실은 이동할 수 없어서다.

지난 2월 튀르키예 대지진 당시 주한튀르키예대사관 측은 긴급지원이 필요한 물품으로 '이동식 화장실' 등을 꼽았다. 스페이스선은 최근 대소변분리기를 활용한 간이 이동식 화장실도 개발해 개발도상국 보급을 준비 중이다.

왼쪽부터 대변통과 소변통. 생태뒷간 사용 후 대변통에 왕겨를 뿌려 대변을 숙성한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왼쪽부터 대변통과 소변통. 생태뒷간 사용 후 대변통에 왕겨를 뿌려 대변을 숙성한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생태뒷간에서 나온 분뇨는 숙성을 거쳐 권태옥 씨의 밭에 퇴비로 뿌려진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나의 불편함으로
세상이 좋아진다면

생태뒷간을 사용하는 고객들 반응은 긍정적이다. 엄수정 대표는 "예전엔 일 년에 1~2건 설치했다면 최근에는 10건까지도 주문이 들어온다"며 "생태뒷간 안에서 자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다. 그는 "이윤보다는, 생태뒷간이 어떤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이어간다"고 말했다.

생태뒷간은 도시에서도 쓸 수 있다. 엄 대표는 "대소변분리기만 구매해 아파트 베란다에서 사용하는 분들도 있는데 대소변 분리만 제대로 이뤄지면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경기 파주의 한 도시텃밭은 스페이스선이 설치한 생태뒷간을 화장실로 이용한다.

엄 대표는 "과거엔 생태뒷간을 꺼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젠 관심 보이는 사람이 많다. 물론 그만큼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불편함으로 세상이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불편함에 익숙해지면 위기 때 최소한의 인권도, 지구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스페이스선의 '선'은 사람과 산을 합친 한자 '신선 선()'이다. 사람(人)과 산()이 어우러진 공간을 의미한다.

왼쪽부터 스페이스선 엄수정 대표와 김덕겸 이사.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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