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초보 식집사의 한라봉 나무 키우기

  • 박연정 기자
  • 2023.10.26 15:41
한라봉 나무. (사진 박연정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박연정 기자] '띠링~ 한라봉 나무가 도착했습니다'

택배 도착 문자를 본 후 나는 무척 당황했다.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에게 "누구냐?"며 한라봉 나무 범인을 추궁하던 중 한 친구가 '너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식물을 하나 보냈다'는 문자와 함께 자신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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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반강제적으로 '식집사(식물+집사의 합성어)'가 됐다.

사실 나는 식물 키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릴 적 아빠가 키웠던 방울토마토에서 나온 개미가 온 집안을 헤집어놨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온몸이 쭈뼛쭈뼛 선다. 더불어 '~키우기'에 재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나를 챙겨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어쨌든 친구가 좋은 마음으로 준 선물이니 '라봉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지어주며 정을 붙이려고 노력했다.

분갈이 모습. (사진 박연정 기자)/뉴스펭귄

초보 식집사와 가족이 된 라봉이는 뜻하지 않게 많은 수난을 겪었다.  

먼저 분갈이 할 때가 떠올랐다.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진 나무를 그 상태에서 계속 키우면 뿌리가 자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분갈이를 결심했다. 마침 집 주변에 꽃시장이 있어 화분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신문지를 펼쳐두고 라봉이를 플라스틱 화분에서 새로 산 화분으로 조심스레 옮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분갈이 후 물이 배수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화분에 임의로 물을 주는데 시간이 지나도 물이 빠지지 않았다.

화분에서 라봉이를 다시 꺼내 흙 사이 자갈을 걷어내고 뿌리를 조금 잘라낸 후에야 배수가 되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바구니를 라봉이 거치대로 사용했다. (사진 박연정 기자)/뉴스펭귄

또 다른 난제는 '점점 휘어지는 라봉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였다.

원래도 휘어진 채로 배달되기는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쪽으로 더 휘어 자랐다. 

집에 있는 바구니를 라봉이 거치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빨간 노끈으로 줄기를 묶어두기도 했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나무젓가락 몇 개를 나무 줄기에 묶어 지지해두니 많이 휘지는 않았다. 

마지막 난관은 '적당한 무관심'이었다.

주변 식집사 친구들이 가장 강조한 것이기도 했다. 세심하게 관찰하되 관심은 적당히 주라는 것이다. 친구들은 내가 혹여나 다르게 이해할까 싶어 우스갯소리로 "나뭇잎이 썩어가는데 그냥 두는 건 적당한 무관심이 아니라 방치다"라고 말했다. 

인간 세상도 그렇듯 식물 세상에서도 지나친 관심과 사랑은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식물 키우기를 꺼렸지만 어느새 라봉이가 내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라봉이가 샛노란 한라봉 열매를 맺을 때까지 '적당한 무관심'으로 최선을 다해 키워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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