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인간과 생태계, 그 사이의 거리

  • 이후림 기자
  • 2023.03.31 17:35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인간은 최근의 산물이다. 이제 그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인간은 언제까지나 존속할 그 무엇이 아니라 해변가에 그려진 얼굴이 파도에 이내 씻겨 버리듯 그렇게 금세 지워져버리고 말 것이다" 저명한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미셸 푸코가 저서 <말과 사물>에 기록한 내용이다. 

지구 역사 46억년에서 가장 늦게 출현한 인류라지만 고도로 발달한 두뇌와 유리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인간 지배적인 사회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자연착취는 부정할 수 없는 인류 역사의 일부다. 인류 문명이 확장하고 발전하면서 더 많은 공간과 자원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인간 외 종들은 길들여지거나 멸종했다. 

그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인간중심적 사회가 결국 인류, 나아가 지구의 종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위기로 인식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최초로 제도화한 사람은 기원전 3세기 스리랑카의 데바남피야 티샤왕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당시 티샤왕은 세계 최초로 자연보호구역을 공식 지정했다. 그로부터 약 2000년이 지난 1872년 미국 의회가 옐로스톤을 세계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이후 미국을 따라 세계 여러 국가도 국립공원을 지정하고 특별기구를 설치하는 등 국가 차원의 자연보호 행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 역시 순수 자연을 보전하기 위한 생물학적 또는 생태중심적 관점이라기보다는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건강, 생존, 복지가 위태롭다고 여겨진다면 여전히 보전 정책을 제도화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곧 인간 외 종은 인간에게 유용성이 없다면 본질적인 가치와 권리를 가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관점은 인간을 '우리', 이외 종을 비롯한 생태계를 '그들'로 철저히 구분하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고착화된 인간중심적 발상을 버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이달 20일 유럽환경청은 자연과 인간 사이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보고서는 제아무리 도덕적이라는 정책조차도 종종 인간인 '우리'와 이외 종인 '그들' 사이 구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착화된 관점을 재고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연 생태계를 더 이상 '타인'이 아닌 '나 자신' 곧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자는 취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 필요성에 의해 자연을 보호하는 행위'는 지속불가능하다. 이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면 자연은 다른 형태의 자본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자본의 한 형태로만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신약이 발명돼 기존 생물 탐사가 불필요해지면, 약용 자원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열대우림 가치가 그만큼 감소하는 식이다.

(사진 Pixabay)/뉴스펭귄
(사진 Pixabay)/뉴스펭귄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이와 일맥상통하는 '자연권리운동'도 한창이다. 자연권리운동은 강, 호수, 산과 같은 생태계가 인간과 동일하거나 적어도 유사한 방식으로 법적 권리를 갖도록 옹호하는 행위다.

자연권리원칙에 따르면 생태계는 법적 인격 지위를 가질 권리가 있으며, 따라서 특정 개발 프로젝트 또는 기후위기로 인한 환경 저하를 포함한 피해를 법정에서 방어할 권리가 주어진다. 생태계가 권리의 주체로 선언되면 대리권리를 갖게 되는 보호자가 최선의 이익을 위해 생태계를 대신해 행동할 수 있는 '법정 대리권'을 갖는다. 

인간중심적인 사회에서 벗어나 보려는 노력은 수많은 생명의 종말 위기에 앞서 이제야 출발점에 섰다. "인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미셸 푸코의 말이 유난히 가슴에 와닿는 뜨거운 봄이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