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더는 못늘린다던 정부, 산업계 위해선 가능?

  • 임병선 기자
  • 2023.03.21 18:17

[뉴스펭귄 임병선 기자] 정부가 산업계 의견을 적극 수렴해 산업부문만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하향한 데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 초안을 21일 공개했다. 이번 기본계획에는 2021년 10월 전 정부가 발표했던 기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이하 NDC)를 수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는 산업분야 감축목표를 하향하고 그만큼 필요한 감축량은 에너지전환과, 수소, CCUS(탄소 포집 및 저장과 이용), 국제감축 등을 조금씩 늘려 충당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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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계획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당초 기본계획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이달 25일까지 확정되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4월 중순 정도에 확정될 전망이다. 초안 공개 이후 22일 공청회, 24일 청년단체 토론회, 27일 시민단체 토론회가 계획돼 있고 이를 통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미루기'식 탄소감축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수정 사항을 자세하게 보면, 먼저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기존 14.5%에서 11.4%로 줄어든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측은 “경제, 사회 여건과 실현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문별, 연도별 감축목표와 수단 등 합리적 이행방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사회와 약속한 NDC는 줄일 수 없기 때문에, 필요감축량를 달성하기 위해 44.4%였던 에너지전환 분야 감축 목표를 45.9%로 상향한다. 또한 수소기술을 통한 감축 목표는 기존 760만t에서 840만t으로, CCUS로 줄이는 이산화탄소는 1030만t에서 1120만t으로 늘린다. 국제감축 분야 감축량도 3350만t에서 3750만t로 늘린다.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이에 대해 “계속 미래에 미루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우는 게 선진국 대한민국이 취할 태도는 아닌 것 같다”고 <뉴스펭귄>에 21일 말했다. 수소, CCUS를 통한 탄소저감은 개발 중이며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최 소장은 “현재 우리 세대가 쓸 수 있는 기술로 계획을 짜야 하는데 대부분 아직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미래기술에 미루고, 해외 감축으로 미루는 것”이라며 “현재 에너지 믹스를 가지고는 당분간 원전을 연장시키는 방식으로 버틸 뿐 감축 경로를 제대로 따라가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국제적으로도 나쁘게 비춰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환경운동연합은 초안 공개 직후 논평을 내 "기존 NDC에서도 전환, 수송 등 타 부문이 27%~46%까지 감축하는 동안 산업부문은 14.5%만 감축할 정도로 느슨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며 "산업부문 배출량은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35%를 차지하는 최대 배출원 중 하나임에도 가장 적은 감축량을 할당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잔여 탄소 예산 등 국제 동향을 고려하고, 오염자부담의 원칙에 입각해 산업부문 감축량이 상향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연합은 앞서 정부 행보에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다른 부문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제대로 된 의견수렴 없이 주요 경제단체와 간담회를 통해 산업계의 민원만을 ‘적극 청취’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산업 분야 감축목표 하향은 산업계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청사진을 설계하며 철강, 석유화확, 정유,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단지, 중소기업, 중견기업 등 산업계 전반 의견이나 학계 의견을 20차례 수렴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도별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10개 기업 (그래픽 국토환경연구원,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뉴스펭귄,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뉴스펭귄
연도별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10개 기업 (그래픽 국토환경연구원,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뉴스펭귄,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뉴스펭귄

 

없던 태양빛이 솟아나나

산업자원부는 앞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을 발표하며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재생에너지 확대와 관련, 현 보급 여건 하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의 추가 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못박은 바 있다.

앞서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는 제10차 전기본 재생에너지 목표를 이전 회차에 비해 줄인 정부를 전면 비판했고, RE100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 재생에너지 목표 후퇴에 강한 우려를 내비친 서한을 보낸 바 있다.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나 이번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는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목표 줄이기’를 위해서 에너지믹스 계획이 변경됐다. 탄소중립녹색위원회 NDC 계획을 담당한 환경부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은 산업부와 협의가 끝난 사항”이라고 말했다.

도시 내 태양광 발전 확대 방안 중 하나로 꼽히는 주차장 태양광발전기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도시 내 태양광 발전 확대 방안 중 하나로 꼽히는 주차장 태양광발전기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제10차 전력기본계획은 지난 1월 31일 확정됐고, 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담긴 내용을 제11차 전력기본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다만 최근 기후솔루션 등 환경단체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취소소송’에 돌입, 제10차 전기본이 다시 마련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20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2030년 NDC 상향안에 따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인 30.2%을 실현가능성이 낮고 과다한 목표라고 일축하며 에너지 전환에 브레이크를 밟아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축소 및 화력발전 수명 연장으로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의 책임을 미래세대에게 전가하고, 불투명한 과정에서 유명무실한 검증 절차를 거쳐 졸속으로 확정된 10차 전기본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전면 취소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취소소송’ (사진 기후솔루션)/뉴스펭귄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취소소송’ (사진 기후솔루션)/뉴스펭귄

 

절차 상 문제도

의견 수렴에 관한 불만도 제기된다.

직장인 이 씨는 탄소중립 정책에 관심이 많아 공청회 참가를 신청했지만 공청회 전날에나 기본계획 내용을 받아보게 됐다. 이 씨는 "쉬운 내용이 아니라 미리 숙지할 시간이 필요한데 늦게 알려주는 걸 보니 공청회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고 <뉴스펭귄>에 21일 말했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참여 중인 민간위원들조차 자세한 내용을 며칠 전에야 부분적으로 받아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공청회 전 최대한 빨리 배포하려고 했으나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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