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꽃집에서 포장재 없는 꽃다발을 샀다

  • 이후림 기자
  • 2022.11.06 00:00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한 달 전 동생에게 축하할 만한 일이 생겼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원하던 회사에 합격한 것이다. 그간 가족에게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면 꽃과 케이크를 선물했던 터다. 합격 소식을 듣던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동생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산 뒤 꽃집에 들렀다.

마음에 드는 꽃을 고르고 돈을 지불하려던 찰나 최근 기사가 문득 떠올랐다. 영국 왕립공원 측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조문을 원하는 추모객들에게 꽃다발을 지참한다면 플라스틱 포장재를 제거해달라는 요청문을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했던 사건이다.

당시 왕립공원 측은 "헌화할 때 지속가능성을 위해 포장하지 않은 꽃을 가져오는 것을 고려해달라"며 "부득이하게 포장재를 제거하지 못했으면, 비치된 쓰레기통에 포장재를 버리고 꽃만 헌화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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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줄이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주된 목적은 수월한 퇴비화를 위해서였다. 왕립공원 측은 이렇게 만든 퇴비로 왕립공원 전역 관목 및 조경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왕립공원과 주 목적은 다르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데 작은 실천이라도 해보자 싶어 꽃집에서 포장재 없는 꽃다발을 샀다.

비닐과 플라스틱 대신 끈 하나로 묶인 꽃다발은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어색했지만 꽃집 사장님의 말마따나 더욱 '꽃다웠다'. 그간 버리지 않고 모아둔 꽃다발 포장재로 셀프 포장을 해볼까도 고민했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포장된 것들에 더 이상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대포장을 없애려는 일부 소비자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와 환경단체 등이 직접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 문제에 대해 항의하고 나섰지만 정부, 기업 대응은 소비자들의 강력한 요구에 비해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지난 9월 환경운동연합 논평에 따르면 과대포장 단속에도 불구하고 매년 포장재 폐기물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과대포장 규정을 비롯해 무늬만 '친환경' 제품이 늘어난 탓이다. 포장재 폐기물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강력한 열쇠는 소비자가 아닌 정부와 기업이 쥐고 있는 이유다.

과대포장 문제는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식품부터 택배, 음반, 굿즈에 이르기까지 각종 산업에서 발생하는 포장 폐기물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 꽃을 포장하는 데 사용되는 포장재도 마찬가지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지속가능성 연구소 카이 찬(Kai Chan) 교수에 따르면 꽃 포장에 사용되는 포장재는 가볍고 얇은 탓에 인근 강, 호수 또는 바다로 흘러가 미세플라스틱이 될 가능성이 높다.

캐나다 한 잡지사는 플로리스트가 매년 플라스틱 폐기물 최대 10만톤을 생산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화훼산업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는 비단 포장재뿐 아니다. 현지에서 재배할 수 없는 꽃이나 제철이 아닌 꽃을 타지에서 수입해 탄소발자국을 높이는 것도 큰 문제다. 실제 북반구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항공편이나 트럭을 통해 남반구에서 꽃을 수입한다. 캐나다장식산업통계에 따르면 당국은 2020년에만 관상용으로 1억4000만달러에 달하는 꽃을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에서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려함을 입은 화훼산업의 현실은 이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화훼산업의 지속가능성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당히 뒤처져 있다. 그렇다고 당장 꽃 구매를 중단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업계는 지속가능한 화훼산업을 위해 노력하는 단계에 있다. 

꽃집 사장님은 포장재 없는 꽃다발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꽃은 본래 모습 그대로가 가장 예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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