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 없는 '윤리적 생리용품' 시대 열린다

  • 조은비 기자
  • 2022.10.04 11:54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뉴스펭귄 조은비 기자] 10월4일 ‘세계 동물의 날(World Animal Day)’은 야생동물 멸종 위협을 알리는 등 동물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국제 기념일이다.

1925년 독일 동물학자 하인리히 짐머만(Heinrich Zimmermann)이 제안해, 그해 3월24일 독일 베를린에서 약 5000명의 시민과 함께 최초의 세계 동물의 날 행사가 개최됐다.

이후 1931년 세계동물보호총회(International Animal Protection Congress)에서 10월4일을 세계 동물의 날로 지정했다. 10월4일은 동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 ‘동물의 수호성인’ 아사시의 프란체스코(Saint Francis of Assisi)의 축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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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세계동물의날 공식 페이스북)/뉴스펭귄
(사진 세계동물의날 공식 페이스북)/뉴스펭귄

동물실험도 세계 동물의 날에 지목되는 문제 중 하나다. 최근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의약품 개발 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시험법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동물실험 결과를 인체에 적용시켰을 때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2017년 화장품법 개정으로 화장품 원료에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러쉬, 아로마티카, 닥터브로너스 등을 비롯해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각지대에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콘돔, 윤활제와 같은 생리용품이다.

콘돔, 윤활제 등은 의료기기로 분류돼 동물실험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제품이다. 의료기기 동물실험 절차는 국제표준규격(ISO)에 규정돼 있고,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미국 FDA 등이 이를 준수하고 있다.

수많은 동물들이 질 점막 자극성 검사, 세포독성시험 등 실험에 쓰이고 안락사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우리에게 기본적인 의문이 들게 한다. 인간의 성생활을 위해 수많은 동물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그리고 콘돔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동물실험이 꼭 필요할까?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콘돔판매업체 중에서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처음으로 비건 소사이어티(Vegan Society) 인증을 받은 호주 콘돔판매업체 ‘글루이드(GLYDE)’는 동물실험을 반대하고, 식물성 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 콘돔판매업체 중 최초로 페타(PETA)의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인증을 받은 업체는 기존 ‘이브(EVE)’에서 브랜드명을 변경한 ‘체레미 마카(CHEREMI MAKA)’다. 크루얼티 프리는 제품의 재료, 제작 과정 등에 동물실험이 없는 제품에 부여되는 인증 마크다.

크루얼티 프리 인증 마크 (사진 페타 공식 홈페이지)/뉴스펭귄
크루얼티 프리 인증 마크 (사진 페타 공식 홈페이지)/뉴스펭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규정에 따르면 의료기기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안전성을 입증하는 시험이 요구되며, 일부 시험은 동물을 이용한다. 체레미 마카는 콘돔 제조사가 과거에 받아둔 동물실험 결과로 제품 허가를 받았고, 직접적으로 동물실험을 행한 적은 일절 없다.

성민현 체레미 마카 대표는 “향을 추가하거나 방부제 종류를 바꾸면 추가적인 동물실험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콘돔 제조사에서 이미 허가를 득한 제품을 그대로 판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콘돔의 고무냄새에 대한 소비자 컴플레인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도, 고무냄새를 줄일 수 있는 향료를 추가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라고 <뉴스펭귄>에 말했다.

윤활제에 대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기 위해 국제 연구 과정에도 참가하고 있다. 페타와 동물대체시험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미국의 연구기관 ‘인스티튜드 포 인 비트로 사이언스(Institute For In Vitro Sciences)’는 의료기기 허가에 필요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11개 윤활제 기업과 컨소시움을 만들어 협력하고 있다.

성 대표는 “(대체시험연구) 프로그램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데이터가 필요한데, 자사 연구팀에서 지금까지의 연구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연구팀에서는 유출되면 안 되는 핵심 자료임에도, 동물실험을 줄이기 위해 자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미국 FDA에서 대체시험 결과를 인정하면, 한국 식약처에도 적극적으로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게 된다. 페타와 FDA와의 만남도 조율 중에 있다.

성 대표는 “동물실험 금지를 주장하는 측이 꼽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비효율에 있다. 10개 중 9개의 제품이 임상시험에 실패하며, 실제로 인간과 다른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은 1.16%밖에 되지 않는다. 21세기 들어 화장품 산업에서 동물실험 감소를 위한 법적 변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과 같이, 의료기기 산업도 분명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동물의 날'을 기념해 성 대표는 “문제는 ‘그들이 논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가?’ ‘그들이 말할 줄 아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고통을 느끼는가’에 있다. 라는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말이 있다”라며 “동물복지나 동물보호가 잘 돼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들과 공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 밖에도 체레미 마카는 환경적인 영향을 고려해 토양을 보호하는 혼농임업 및 맛이나 성분은 차이가 없지만 상품성이 떨어지는 못난이과일 등으로 제품의 원부자재를 변경하고 있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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