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규제 완화… 거꾸로 가는 환경부

  • 최나영 기자
  • 2022.09.14 15:21

환경단체 “환경보전 앞장서야 할 환경부가 본분 망각”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유해화학물질을 소량 취급하는 공장을 설립하려던 A씨. 그는 최근 정부가 화학물질의 위험도에 따라 차등화된 규제를 적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량 취급하는 사업장은 허가가 신고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정보도 접했다. 비용을 많이 절감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B씨는 고향 땅에 작은 마스크 공장과 숲속 야영장을 운영하고 싶지만 환경영향평가라는 장애물을 만난다. 포기하려던 차에 간소화된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결국 순조롭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보도자료에 담긴 ‘환경규제 혁신으로 예상되는 변화 체감사례’다. 내용만 보면 경제 관련 정부 부처가 발표했을 법하지만, 사실 이 자료는 환경부가 발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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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최근 연이어 환경규제 완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자연‧생활환경 보전에 나서야 할 환경부가 본분을 망각한 것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경규제 혁신방안 설명 자료 (자료 환경부)/뉴스펭귄
환경규제 혁신방안 설명 자료 (자료 환경부)/뉴스펭귄

환경부가 보고한 ‘환경규제 혁신 방안’ 보니…
환경영향평가 절차 간소화 방침에
화학물질 위험도 따라 규제 차등화

환경부는 지난달 26일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열린 1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환경규제 혁신방안’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혁신방안에는 환경영향평가를 하기 전에 실시 여부를 검토해 결정하는 ‘스크리닝 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제도는 평가 건수가 많고 조사 항목과 범위도 매우 광범위해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소요됨에도 오히려 부실화‧형식화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크리닝 제도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검토해 환경영향평가를 받을 사업과 면제될 사업으로 나누는 제도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은 모두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환경부의 혁신방안에는 화학물질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해 규제를 차등 적용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저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시설까지 고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시설과 똑같은 규제가 적용되고 있어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는 이유를 달았다. 향후 환경부는 화학물질의 유‧위해성에 따라 취급시설 기준, 영업허가 등의 규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저위험으로 분류된 물질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는 셈이다.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경제 형벌규정 1차 개선 과제 중 일부 (표 '경제 형벌규정 개선 추진계획 및 1차 개선 과제' 갈무리)/뉴스펭귄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경제 형벌규정 1차 개선 과제 중 일부 (표 '경제 형벌규정 개선 추진계획 및 1차 개선 과제' 갈무리)/뉴스펭귄

관계부처 합동 ‘경제 형벌규정 개선 추진계획’엔
사실상 ‘환경범죄’ 처벌 완화 내용 포함돼

이날 같은 행사에서는 사실상 ‘환경범죄’의 처벌을 완화한다는 내용이 담긴 ‘경제 형벌규정 개선 추진계획 및 1차 개선과제’도 발표됐다. 해당 자료는 이날 기획재정부와 법무부가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환경부를 포함한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자료로 알려졌다. 

이 계획은 경제법령상 형벌이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로 구상됐다. 이 계획엔 기업에 대한 형벌규정을 완화하기 위한 32개의 개선과제가 명시됐다. 그 중 ‘환경범죄’를 경제형벌 범주에 포함해 법적 처벌을 완화하겠다는 내용도 4개나 된다.

기업이 업무상 과실 또는 중과실로 화학사고를 일으켜 상해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화학물질관리법 57조 위반)나 기업이 오염물질을 불법 배출해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환경범죄단속법 3조2항 위반) 받게 되는 형벌 수위를 낮추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다만 두 사례 모두 피해자가 사망했을 때는 기존 형벌을 유지하기로 했다.

개선과제엔 오염물질을 불법배출함으로써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상수원을 오염시킴으로써 먹는 물의 사용에 위험을 끼친 경우(환경범죄단속법 3조1항 위반) 받게 되는 형벌 수위도 낮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도지사의 허가 없이 제주도의 보존자원을 매매하거나 제주도 밖으로 반출하려는 범죄(제주특별법 473조 위반)를 저지른 예비‧음모범에 대한 형량도 완화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환경부가 환경규제 완화에 적극적인 이유

환경 보전을 우선해야 할 환경부가 이같이 환경규제 완화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앞서 지난 4월 윤 대통령이 한화진 환경부 장관을 지명할 당시 풍경에서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한 후보자는 규제 일변도의 환경 정책에서 벗어나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환경정책을 설계할 적임자라 판단했다”고 한 후보자 지명 이유를 밝혔다.

이후 한 장관도 지난 5월 취임사에서 “명령과 통제 중심의 규제 틀을 벗어나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최대한 이끌어 내야 한다”고 윤 대통령에 화답하듯 말했다. 한 장관은 취임 전 열린 같은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도 “환경부가 아직도 규제라는 부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환경부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6월30일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을 만나 환경규제 개선을 위한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뉴스펭귄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6월30일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을 만나 환경규제 개선을 위한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뉴스펭귄

이후 한 장관은 취임 뒤 지난 5월 말께 차관 직속 ‘환경규제 현장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지난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와의 간담회에선 6대 경제단체와 환경규제를 개선하기 위한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한 장관을 (새 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으로 넣으면서 일종의 ‘미션’으로 준 것이 규제 완화였다”며 “미션 자체가 그렇게 설정돼 있다 보니 지금의 환경부는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 펼치게 될 환경정책도 그런 범주 안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환경단체 “환경사건 기소 5%에 그쳐… 재계 목소리 과대 대표돼”
의원들도 “환경부 장관인지 산업부 장관인지” 비판

이에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환경부가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어느 정부 부처보다 앞서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할 환경부가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를 묵인하고 방조하고 있음을 단호히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환경범죄에 대한 형벌규정들이 지나치게 기업인을 옥죄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했다. 실제 대검찰청 검찰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환경사범 형사사건은 2015년 1만730건에서 지난해 1만4079건으로 20%가량 늘었지만, 정식재판에 넘겨지는 사례는 5%에 그친다. 환경운동연합은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표현처럼 재계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된 면이 있다”며 “오히려 환경범죄 영역에서 사법정의가 잘 작동하는지 점검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사진 청년기후긴급행동)/뉴스펭귄
(사진 청년기후긴급행동)/뉴스펭귄

환경단체들은 환경규제 완화와 환경범죄 처벌 완화 정책을 철회할 것을 환경부에 촉구하고 있다. 강홍구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싼 부실‧조작‧청탁 의혹이 계속되고 있는데 스크리닝 제도를 적용하면 이런 문제들이 훨씬 더 심해질 것”이라며 “환경보전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사회엔 가습기살균제 참사처럼 사망자만 1700명 이상 발생한 사례도 있다”며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면 제도적 대안이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를 다듬고 재설계해야 하는데 되려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의원들이 여야 할 것 없이 한 장관의 규제완화 행보에 쓴소리를 내기도 했다. 당시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한 장관을 향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에 규제완화가 된다 하더라도 맨 마지막에 최후에 생각해봐야 하는 게 환경”이라며 “환경부 장관 이하 전부 다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환경부 장관인지 산업부 장관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그런 부분을 (장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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