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발 나간 ‘친환경’ 선물세트 포장재… 아직 갈 길 멀다

  • 최나영 기자
  • 2022.09.05 12:00

식품‧유통업계, ‘친환경’ 애쓰지만 현실은 ‘그린워싱’ 여지 다분

서울의 한 신세계백화점에 진열된 추석 과일선물세트. 종이 상자와 종이 칸막이를 사용했지만, 과일 하나하나가 비닐포장된 것이 보인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서울의 한 신세계백화점에 진열된 추석 과일선물세트. 종이 상자와 종이 칸막이를 사용했지만, 과일 하나하나가 비닐포장된 것이 보인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스티로폼과 비닐 코팅 상자, 플라스틱 트레이, 젤 아이스팩…. 명절 선물세트에 주로 사용되는 포장재들이다. 이 포장재들은 배출량이 많고 분리배출이 어려워 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올해 추석에는 선물세트 포장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최근에는 기후위기 심화와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친환경’을 앞세운 명절 선물세트를 내놓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뉴스펭귄>은 각기 다른 브랜드의 백화점 3곳을 방문해 선물세트의 포장 실태를 확인해 봤다.

 

신세계백화점 A점, ‘친환경’ 포장 노력 흔적은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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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일주일 가량 앞둔 지난 2일 서울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A점. 지하 식품관에는 추석 선물세트가 한창 판매되고 있었다. 전시된 추석 선물세트들을 보니 얼핏 보기에는 ‘친환경’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앞서 신세계백화점은 이번 추석 선물세트에 친환경 포장 비중을 높이겠다고 홍보해 왔다.

상자의 칸막이 또는 트레이(받침대)를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로 쓴 과일세트가 대표적이다. 난좌라고도 불리는 오목한 모양의 과일 받침대는 상품의 흠집과 충격 방지를 위해 스티로폼 등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을 주로 사용해 왔다. 과일 사이사이의 빈 공간이 가늘고 긴 크라프트지로 덮인 과일세트도 보였다.

축산과 수산 선물세트를 담는 보냉백도 보였다. 앞서 신세계는 업계 최초로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보냉백을 도입해 왔다고 밝혀왔다. 신세계는 이 보냉백을 ‘친환경’이라고 소개하며 이번 추석 시즌에는 보냉백 도입을 확대한다고 홍보해 왔다.

 

신세계백화점에 축산과 수산선물세트를 담는 데 사용하는 보냉백.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신세계백화점에 축산과 수산선물세트를 담는 데 사용하는 보냉백.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과일세트 상자‧받침대는 '종이'로 바꿨다지만… 
과일 하나하나는 개별 비닐포장

하지만 한계도 많이 보였다. 상자와 칸막이는 종이로 바꿨지만, 과일세트의 과일 하나하나는 대부분 스티로폼 재질의 받침접시 또는 그물모양 완충재로 싸여 있었다. 이 발포 합성수지 재질의 과일 포장재는 분리배출 대상이 아니다. 과일 하나하나가 비닐로 싸인 경우도 있었다. 

서울의 한 신세계백화점에 진열된 추석 선물세트. 곶감 하나하나가 개별 포장돼 있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서울의 한 신세계백화점에 진열된 추석 선물세트. 곶감 하나하나가 개별 포장돼 있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종이 트레이에 담긴 포도 밑에 비닐 완충재가 깔려 있는 경우도 보였다. 곶감 하나하나가 비닐 또는 플라스틱 상자로 개별 포장된 선물세트도 있었다. 과일 상자 받침대와 칸막이를 여전히 플라스틱으로 사용한 상품도 있었다.

보냉백의 경우 폐페트병을 활용해 만들었다지만, 신세계백화점이 회수해 재사용하는 방식은 아니어서 ‘친환경’으로 일컫기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선물 포장재로 사용된 보냉백을 고객이 자발적으로 재사용하지 않는 이상 순환의 고리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폐페트병을 활용해 만든 제품을 포함해 보냉백은 분리배출 대상이 아니다.

 

롯데백화점 B점‧현대백화점 C점, 종이 포장한 줄 알았는데…
스티로폼 포장 위에 종이만 덧대기도

같은 날 방문한 서울의 롯데백화점 B점도 상황은 비슷했다. 롯데백화점 B점의 경우 과일세트 상자의 받침대와 칸막이를 종이 재질로 만든 것은 환경적 측면에서 진보된 부분이었다. 하지만 신세계백화점 A점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과일 포장으로 발포합성수지 소재 받침접시, 그물모양의 완충재를 사용하고 있었다.

과일이 베이지색이 도는 크라프트지 완충재로만 포장돼 있는 줄 알았는데, 안쪽을 살펴보니 발포합성수지 완충재로 한 차례 더 포장돼 있는 상품도 있었다. 사실상 발포합성수지 완충재로 포장해 두고 ‘친환경’ 홍보 효과를 내기 위해 크라프트지를 덧댄 것으로 보인다. 보냉백의 경우, 롯데백화점은 신세계백화점과 달리 ‘업사이클링’ 소재를 사용하고 있진 않았지만 회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왼쪽 서울의 한 현대백화점 추석 과일세트 사진. 오른쪽 서울의 한 롯데백화점 추석 과일세트 사진. 베이지색 크라프트지 완충재 안쪽에 발포합성수지 완충재가 싸여 있는 것이 보인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왼쪽 서울의 한 현대백화점 추석 과일세트 사진. 오른쪽 서울의 한 롯데백화점 추석 과일세트 사진. 베이지색 크라프트지 완충재 안쪽에 발포합성수지 완충재가 싸여 있는 것이 보인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이 이날 방문한 서울의 현대백화점 C점에서도 과일을 개별로 비닐 포장한 사례나, 발포합성수지 포장 위에 크라프트지 포장을 덧대 ‘친환경’ 효과만 낸 사례가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종이상자에 과일을 담은 과일세트도 있었지만 라탄이나 플라스틱 소재로 보이는 바구니를 활용한 과일세트도 보였다. 

 

명절 과대포장 단속서 과태료 부과 사례는 0.3%?

명절 선물 포장재를 더 줄일 방법은 없을까. 환경단체들은 과대포장 규제 강화를 주장한다. 정부는 2008년부터 매년 명절 전후로 과대포장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백화점 3곳 모두에서 사용하고 있는 발포합성수지 소재의 과일 포장재는 단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등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명절 선물 포장으로 나오는 쓰레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임에도, 정부가 과대포장을 적발해 과태료까지 부과한 사례는 단속 건수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추석에는 전국 지자체에서 1만1417개 제품을 단속해 77건을 적발했다. 이 중 과태료를 부과한 제품은 단속한 제품의 0.34%인 39개 제품에 그쳤다. 올해 설에도 1만2049개 제품을 단속했지만, 55건을 적발하고 27개(단속한 제품의 0.22%) 제품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특히 (발포합성수지 소재의 과일 포장재 같은) 완충재의 경우 규제 대상 포장재에 포함되지 않아 기업들이 여전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며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포장재를 최소화하도록 정부와 기업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발포합성수지 소재의 받침접시나 그물모양 과일 포장재 같은 경우 제품 보호를 위한 완충재나 포장 부자재에 해당되기 때문에 단속 대상이 아니다”며 “과거 포장 부자재에서도 (단속 대상에 넣을지 고민했지만) 업계에선 너무 부담이 크다고 해서 (단속 대상에 넣지 않아) 그렇다”고 설명했다.

 

명절에 많이 발생하는 쓰레기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 (자료 환경부)/뉴스펭귄
명절에 많이 발생하는 쓰레기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 (자료 환경부)/뉴스펭귄

“기업이 포장재 줄인다 해도 부분적 개선에 그칠 확률 높아…
선물 문화 자체가 획기적으로 변해야”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선물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자 상품권을 선물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게끔 하는 등 선물 문화 자체가 다양하게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선물 포장이라는 것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형식이 있다 보니 기업이 포장재를 줄인다고 해도 부분적 개선에 그칠 확률이 높다”며 “'명절이라고 해서 꼭 선물을 줘야 하는가, 선물을 준다고 해도 꼭 이런 방식으로 줘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뉴스펭귄>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한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3곳 모두 “담당자와 연결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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