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당에서 거북들이… '방생'이 '살생' 되는 아이러니

  • 남주원 기자
  • 2022.06.24 11:41
(사진 제보자 박 모 씨 제공)/뉴스펭귄
(사진 제보자 박 모 씨 제공)/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3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일요일이었던 지난 12일 경주 여행에서 거북 불법 방류 및 학대로 추정되는 행위를 목격했다. 사람들이 문무대왕릉 앞 해변가에 있는 굿당에서 대여섯 번에 걸쳐 거북을 들고 나와 바다에 던졌던 것. 

평소 뉴스펭귄 애독자였던 박 씨는 "처음에는 저희도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거센 파도에 바다로 나가지 못한 거북이 다시 해변가로 떠밀려 들어온 것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라며 뉴스펭귄에 제보했다.

그는 "거북들은 해안가로 밀려 들어오며 뒤집히거나 관광객들에 의해 다시 바다로 보내지기도 했으며, 사진이 찍히는 등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릉 인근은 일부 무속인과 불자들 사이에서 영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소문으로 매년 문무대왕릉을 찾아 방생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영험이 깃들었다고 믿는 장소에서 기도와 함께 물고기나 거북 등을 방생하는 것이다.

방생은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거북, 새 등 생물을 다시 자연에 놓아줌으로써 살려주는 일을 일컫는다. 살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예로부터 불교나 무속신앙에서는 방생을 통해 공덕을 쌓거나 소원이 이뤄지길 바랐다.

그날 박 씨가 본 문무대왕릉 해변가 주변 횟집에도 '방생 고기 판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횟집 바로 옆 굿당 안에서는 실제로 굿이 진행되고 있었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성인 손바닥 크기 정도되는 작은 거북들을 바다로 들고나갔다.  

(사진 제보자 박 모 씨 제공)/뉴스펭귄
(사진 제보자 박 모 씨 제공)/뉴스펭귄

문제는 방생되는 거북들이 ‘붉은귀거북’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박 씨는 뉴스펭귄에 "거북들은 붉은귀거북으로 추정된다. 방생을 목적으로 어디선가 집단 사육되거나 유통되고 있지도 모른다"라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어 "비전문가라서 해당 거북 종이나 습성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 있지만 동물 학대 행위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붉은귀거북은 바다에 살지 않는 민물 거북이다. 바다에 풀어줘봤자 결국 죽음을 맞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이들의 방생은 엄연히 불법이다. 

생태계 교란종은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돼 개체수 조절 및 제거 관리가 필요한 종을 일컫는다.

국내 생물다양성법 제24조에 따르면 생태계교란 생물을 수입·반입·사육·방사·유기·양도·보관·운반·유통하는 행위는 모두 금지된다. 이를 어길 시 생물다양성법 제35조에 따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사진 제보자 박 모 씨 제공)/뉴스펭귄
(사진 제보자 박 모 씨 제공)/뉴스펭귄

박 씨는 해변가로 떠밀려온 거북을 발견한 즉시 경주시청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냥 바다에 풀어주라는 얘기뿐이었다. 이후 경주에 있는 환경야생동물보전협회에 연락했으나 속 시원한 해결책을 얻지는 못했다.

생태계 교란종과 관련해서는 여타 동물구조 활동처럼 국내 동물보호단체에 도움을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동물권단체 '카라' 김나연 활동가는 "현재로서는 단체 내 생태계교란종에 대한 어떤 인프라나 제도가 구축돼 있지 않다"면서 "이와 관련해서 캠페인 등을 하고 싶어도 여력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고 뉴스펭귄과의 통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어 "동물보호단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일은 국가에서 수습해야 한다. 환경부 등 국가 차원에서 더욱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박 씨 일행은 환경부에 신고하려고 했으나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이유로 거북을 죽일까 우려해 그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우려는 실제 생태계 교란종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생태계 교란종 처리 방법에 대해 "신고를 받으면 따로 관할 지역에 수거 요청을 한다. 그럼 지자체에서 폐기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뉴스펭귄에 밝혔다. 예외적으로 살려주는 경우는 없었다.  

(사진 Pexels)/뉴스펭귄
(사진 Pexels)/뉴스펭귄

물론 악의를 품고 생태계 교란종을 방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다수는 공덕을 쌓거나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물고기나 거북 등을 방생한다. 또는 명소를 찾아온 관광객이 바닷가 근처 식당에서 회를 먹으려다 '방생 고기 판매' 안내판을 보고 물고기를 먹는 대신 사서 바다에 풀어주는 식이다.

뉴스펭귄이 문무대왕릉 앞 해변가에 있는 횟집 중 한곳에 문의한 결과 방생 물고기는 1만원부터 구매할 수 있다. 굿당은 5만원부터 대여할 수 있으며 가격은 무당과 굿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방생 거북도 판매하는지 묻자 주인은 "우리는 거북을 팔고 있지 않지만, 간혹 주위에 거북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자라를 거북으로 착각한다. 자라는 민물에서 사는 동물이라 바다에 넣어도 어차피 다시 나온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부 식당은 자라를 거북으로 잘못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다. 꼭 붉은귀거북 등 생태계 교란종이 아니더라도 민물에 사는 자라를 바다에 방생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을 살리려고 하는 '방생'이 정작 그들을 죽이는 '살생'이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처럼 민물거북 또는 키우던 붕어나 잉어 등 민물고기를 충분한 사전 정보 없이 바다에 풀어줌으로써 좋은 의도가 변질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박 씨는 경주시 바닷가에서 행해지는 거북 방생이 생명권과 동물권을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태계 교란종인 점을 차치하고라도 민물에 살아야 하는 생물이 인간에 의해 강제로 바다로 방류되는 점, 야생에 방류된 거북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할 수 없는 점, 해변으로 밀려온 후 주민 또는 관광객들에게 발견돼 호기심 해소 및 학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점 등을 꼬집었다.

아울러 "'생태계 교란종’ 지정 역시 인간 중심적인 것이며 이를 근거로 어떤 생명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대로 일각에서는 생태계 교란종에 대한 국민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생태계 교란종도 인간의 욕심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Wikipedia)/뉴스펭귄
(사진 Wikipedia)/뉴스펭귄

북미 지역이 원산지인 붉은귀거북은 국내에 들여오면서 애완용으로 흔히 알려져 있던 거북 중 하나다. 그러나 종교적인 방생 행사와 무책임한 유기 등으로 이후 많은 수입 개체가 야생으로 퍼져 나가자 생태계 파괴 주범으로 전락했다. 특히 토종 남생이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현재는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돼 있다.

붉은귀거북 수입이 금지되자 일부 사람들은 그 대체재로 리버쿠터라는 미국산 거북을 들여왔다. 그렇게 리버쿠터, 플로리다붉은배거북 등이 차례로 붉은귀거북과 비슷한 운명을 밟게 됐다.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돼 수입·반입·사육·방사·유기·양도·보관·운반·유통 등이 모두 금지된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붉은귀거북속 전종을 비롯해 리버쿠터, 중국줄무늬목거북, 악어거북, 플로리다붉은배거북 등이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돼 있다. 이 거북들은 모두 인간 때문에 수입되고 방생되며 결국 죽임 당하는 신세다.

한 생물 사육 전문 블로거는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면 끝인 걸까. 붉은귀거북 방생 급증▶생태계교란종 지정▶대체종으로 리버쿠터 증가▶리버쿠터 방생 급증▶생태계교란종 지정▶???"라며 "이런 악순환이 지속된다면 생태계교란종 화살표가 다음으로 향하는 곳이 어디일지... 부디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모든 사육자가 책임감을 가지셨으면 한다"라고 당부했다.

한편 뉴스펭귄이 국립생물자원관에 종 판별을 요청한 결과 이번에 문무대왕릉 앞 해변가에서 발견된 거북은 붉은귀거북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도민석 연구사는 "보내주신 사진에 따르면 '민물거북'에 속한 외래종으로 판단된다"라고 뉴스펭귄에 말했다.

그는 "다만 정확한 종 동정은 불가능하다. 정확한 동정을 위해서는 머리와 배변 사진이 모두 필요한데, 본 사진은 단순 등갑만이 촬영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