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팬데믹' 겪지 않으려면... 폐의약품,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 남주원 기자
  • 2022.02.27 00:05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의약품으로 생태계 및 인간 안보에 경고등이 켜지면서 최근 폐의약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넥스트 팬데믹'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버려지는 의약품,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며 이와 관련된 국내 실태와 문제점 및 개선책은 무엇일까. 

폐의약품은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먹다 남은 약을 지칭한다. 땅에 매립되거나 하수구로 버려질 경우 항생물질 등 약 성분으로 인해 토양오염과 수질오염의 원인이 되고 슈퍼버그(슈퍼박테리아)와 같은 항생제 내성균 확산 문제로 생태계와 인류 건강을 위협한다. 

폐의약품 그 자체로는 별문제가 없을지라도, 매립 및 하수 처리 과정에서 약의 화학성분이 다른 물질에 반응하면 독성이 증폭되거나 항생제 내성을 가진 초강력 슈퍼버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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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는 항생제를 포함한 약물들에 대해 내성을 갖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 및 곰팡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항생제나 약물에 대해 내성을 갖게 되면 미생물이 약물에 노출돼도 생존할 수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슈퍼버그에 감염되면 약물 효과가 낮아져 치료에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전 세계 의료·보건계는 관련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게다가 유전자 변이, 중성화 등 동식물 번식에도 끔찍한 영향을 미치며 심각할 경우 멸종까지 초래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UN)을 비롯한 국제사회 역시 항생제 내성 문제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자 '넥스트 팬데믹'으로 언급했을 정도니 폐의약품 처리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폐의약품을 잘못된 방식으로 버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가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폐의약품 처리 관련 여론조사'를 시행한 결과, 절반이 넘는 도민이 폐의약품을 일반쓰레기 종량제봉투 또는 가정 내 싱크대·변기·하수관을 통해 버리거나 혹은 처리 방법을 몰라 집에 보관 중이었다. 이는 모두 잘못된 처리 방법이다.

지난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성인 14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5.2%가 쓰레기통이나 하수구, 변기를 통해 폐의약품을 배출한다고 답했다. 약국과 보건소를 통한 처리는 전체 8%에 그쳤다.

그렇다면 올바른 폐의약품 처리 방법은 무엇일까? 폐의약품은 별도의 전용 수거함에 분리배출 후 소각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까운 약국이나 보건소, 행정복지센터 등 공공시설 및 공동주택에 설치된 '폐의약품 수거함'에 배출해야 한다. 이렇게 수거된 폐의약품은 전문업체에서 일반쓰레기와 분류해 섭씨 1000도 이상 고온에 별도로 소각 처리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집에 있는 의약품을 그대로 가져가 배출하면 끝'이 아니라는 사실. 평소에 분리수거를 하듯 폐의약품 역시 당연히 분리배출 작업이 필요하다. 종류별 배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알약(비닐봉지): 겉 포장지 제거 후 알약만 모아서 배출
알약(캡슐): 캡슐은 까서 버리고 안에 든 가루만 한곳에 담아 밀봉해 배출
가루약: 약포지 상태 그대로 배출
물약, 시럽: 남은 액체를 하나의 용기에 모두 모아서 새지 않도록 밀봉 후 배출
연고, 안약, 천식 흡입제, 스프레이 등 특수용기에 담긴 약: 2차 포장재(종이갑 등) 제거 후 특수용기 그대로 배출

하지만 올바른 폐의약품 배출 방법을 알고 있는 시민들 역시 "약국 눈치가 보여서", "약국에 가져갔는데 거절당해서", "약국이 집에서 멀어서" 등 이유로 약국을 통한 폐의약품 처리에 불편함을 겪어온 터였다. 기껏 집에 있는 약들을 열심히 분류해 가져갔더니 정작 받아주는 약국이 없었다는 것. 

사실 폐의약품 수거는 약국이 아닌 시·군·구 각 지자체의 책무다. 대한약사회 등 약계에 따르면 폐의약품 수거는 약사들에게 업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특히 제대로 분리되지 않거나 엉망인 상태로 버려진 약품은 약사들이 일일이 후속작업을 해야 한다. 

폐의약품은 엄연히 재사용할 수 없는 '폐기물'이다. 따라서 약국이나 보건소, 의약과가 아니라 각 지자체 생활폐기물과, 청소과 등 환경부서가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약국은 폐의약품 수거 거점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약계 입장이다. 

이 같은 이유로 기존 약국 중심으로 시행돼온 폐의약품 수거가 최근 공공시설이나 공동주택으로 확대되고 있다. 집 근처로 접근성이 높아지자 시민들은 이전보다 편리하게 폐의약품 분리배출을 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다.

개봉3동행정복지센터 입구 앞에 설치돼 있는 폐의약품 수거함 (사진 구로구 공식 인스타그램)/뉴스펭귄
개봉3동행정복지센터 입구 앞에 설치돼 있는 폐의약품 수거함 (사진 구로구 공식 인스타그램)/뉴스펭귄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폐의약품 수거 체계를 개선해 최근 동주민센터, 구청, 복지관, 시립병원 등 공공시설 약 570개소에 폐의약품 수거함을 확대 설치했다. 그밖에 일부 의원급 병원에 대해서도 수거함을 추가 확충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치구별 1개소씩 공동주택 총 25개소를 대상으로 ‘폐의약품 집중 수거의 날' 시범사업을 운영해 왔다. 올해는 자치구별 10개소씩, 즉 공동주택 총 250개소에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폐의약품 집중 수거의 날'에 따라 공동주택 재활용품 분리배출일 중 월 1회, 일정시간과 장소를 정해 폐의약품을 수거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원래는 폐의약품을 약국에서 보관하고 있었으나 지난해 5월부터 수거절차 과정이 간소화되면서 약국에 배출하는 대신 가정에서 직접 공공 수거함에 배출하도록 적용 중"이라며 "아직 적용되지 않은 자치구도 있어 자치구마다 다를 수 있다"라고 지난 24일 뉴스펭귄에 전했다.

공공데이터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OO시 OO구 폐의약품 수거함 검색 결과 (사진 공공데이터 포털)/뉴스펭귄

그렇다면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는 폐의약품 수거함 위치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먼저 '공공데이터 포털' 검색을 통해 원하는 시·군 폐의약품 수거함 위치와 참여 약국 현황을 알 수 있다. 다만 공공데이터 포털에는 이전에 누군가가 직접 신청해 접수된 데이터만 올라와 있으므로 본인 거주지는 나오지 않거나 업데이트되기 전 자료일 수 있다. 

또는 생활폐기물과, 생활환경과 등 각 자치구 관련 부서에 문의하거나 공식 홈페이지 및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민일 경우 120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역별 정확한 수거지 리스트가 절실한 상황이다. 가정 내 폐의약품 회수처리사업은 지난 2008년 환경부를 비롯한 7개 기관·단체가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실시, 이듬해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됐다. 14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정부는 폐의약품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과 시민들의 실천만 외치고 있을 뿐, 정작 폐의약품 수거함 위치는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폐의약품 배출 관련 포스팅을 올린 서울특별시 공식 블로그 댓글창에는 "하루 날 잡고 약 잔뜩 챙겨서 약국 3군데를 돌았는데 전부 거절당했다", "우리 동네 약국, 보건소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하던데", "여기저기 다 말뿐이다",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약국이 의무가 아니라면 확실한 수거지 리스트라도 있어야 활용 가능할 듯" 등 반응이 허다하다.

국가에서 체계화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탓에 시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수거함 위치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폐의약품 수거사업에 시민들의 관심과 행동을 바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집 주변 어디에 수거함이 있는지' 알려주는 정확한 리스트는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제는 정말 폐의약품 수거에 대한 지역별 확실한 가이드라인과 수거지 리스트를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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