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악당의 민낯 ⑩] 한국서부발전...태안의 하늘을 덮은 매연
탄소의 바다를 건너는 공장 — 태안화력 3,100만 톤의 진짜 얼굴
서해의 회색 바람을 따라가다 보면, 해안의 적막 위로 거대한 구조물이 떠오른다. 태안화력발전소다. 이곳에서 배출된 연간 3,100만 톤의 이산화탄소(CO2)는 한국 기후위기의 중심에 놓인 절대적 수치다. 이 규모가 어떤 환경적 함의를 갖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일은 지금의 한국에 주어진 필수 과제다.
‘3,100만 톤’은 국제 연구자들의 분석에서 비롯됐다. 학술지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실린 Don Grant 연구진은 2018년 기준 태안화력의 배출량을 3,100만 톤으로 제시했다. 위키피디아 역시 이 데이터를 토대로 태안화력을 ‘세계 최상위 배출 발전소 중 하나’로 기록했다.
국내 언론은 3,140만 톤으로 보도하며 한국 최대의 단일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꼽았다. 반면 충남도가 최근 발표한 2024년 자료는 연간 2,210만 톤을 기록한다. 수치는 낮아졌지만, 태안화력이 가진 기후위험의 본질이 그대로다. 2018년 값은 발전량·연료 품질·측정 방법 차이로 높게 산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2024년의 값은 운전률 조정과 일부 정책적 변화의 영향을 반영한 결과다. 배출량이 일시적으로 줄었다 해도, 감소 폭이 구조적 전환의 결과인지 단기 조정인지에 대한 분석은 공개되지 않았다. 전력 정책은 투명한 자료를 토대로 결정돼야 한다. 과학은 정확한 데이터 위에서만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1인당 CO2 연간 배출량(약 12톤)을 기준으로 하면 태안화력 3,100만 톤은 258만 명(부산 인구 78%)이 1년 동안 배출하는 양이다. 자동차로 환산하면 중형 승용차 674만 대의 연간 배출량과 같다. 인천–뉴욕 왕복 비행편의 2톤 배출 기준으로 환산하면 1,550만 회 왕복해야 나오는 양이다.
자연이 태안화력에서 나오는 탄소를 흡수하려면 성숙한 나무 14억 그루가 필요하다. 한국 전체 산림의 6분의 1이 1년 동안 흡수해야 하는 양이다. 과학자들은 “태안화력의 배출량은 단일 발전소를 넘어 국가 탄소 감축전략 전반을 압박하는 구조적 고비용 배출원”이라고 지적한다.
태안의 하늘 아래에 드리운 탄소의 제국
태안화력은 한국서부발전(WP)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의 석탄화력발전소다. 총 10기, 6.5GW에 달하는 설비는 WP 전체 발전용량의 57%를 차지한다. 부지 규모는 여의도의 1.6배에 달하는 460만㎡.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1~8호기는 2037년까지 폐지 대상이지만 실제 일정은 아직 불확실하다.
태안화력은 수도권 전력과 천안·아산 국가첨단전략산업단지까지 전기를 공급하는 핵심 축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흘러나가는 것은 전기만이 아니다. CO₂와 SO₂·NOₓ 등 유해 대기오염물질이 이 지역의 상공과 주민 건강에 오래도록 각인돼 있다.
태안화력의 탄소 흔적, 과학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지상에서는 단순한 산업시설로 보이지만, 위성은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발전소에서 배출된 CO₂가 서해 상공에서 긴 플룸(plume) 형태로 퍼져나가며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 최근 관측 기술의 고도화로 이 플룸은 더욱 정밀하게 드러나고 있다. NASA의 OCO-2 위성은 태안 상공을 통과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CO₂ 증가 패턴을 관측해 왔다. 그런데 해안 지역은 에어로졸(AOD)이 많아 오차가 생기기 쉬운 곳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AI 보정 기술을 도입했다.
연구진(Sihe Chen 등)은 위성이 관측하는 대기층 높이를 신경망으로 계산해 XCO₂(대기 전체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 오차를 크게 줄였다. 여기에 유럽의 ICOS 지상 CO₂ 관측망 데이터를 결합하자, 지역 배출 패턴이 이전보다 훨씬 정확히 재구성됐다. 이제 태안 상공의 CO₂ 흐름은 ‘위성+AI+지상 관측’이라는 삼중 관측 체계를 통해 지도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위성만으로 배출량을 단정할 수는 없다. CO₂ 농도는 바람, 혼합고, 대기 안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같은 양을 배출해도 대기 흐름에 따라 농도 패턴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반드시 기상 역산 모델을 함께 사용한다. 풍속·대기 혼합고·경계층 구조 등을 분석해 실제 배출량을 거꾸로 계산하고, CEMS 굴뚝배출 자동측정 데이터와 비교해 정확도를 검증한다.
일부 분석에서는 위성·기상 모델 기반 추정치가 WP의 공식 보고치보다 연간 1,000만 톤 정도 높게 나타난다는 결과도 있다. 또 CEMS 데이터는 야간·휴일에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 같은 시간대 위성이 관측한 AOD(대기에어로졸농도)는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도 포착됐다. 연구자들은 이를 두고 “정비 기간 비공개 배출 가능성”, “장비 보정 불일치”, “보고 체계의 구조적 맹점” 등을 가설로 제시한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배출 데이터의 투명성이 충분하지 않다.
이 삼중 관측 체계는 특정 발전소를 의심하기 위함이 아니다. 한국의 온실가스 관리 체계를 보다 투명하고 신뢰 가능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기반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배출을 과학이 기록하고, 기록된 데이터는 사회가 선택할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화학적 복합체: 태안의 공기 속에 숨어 있는 두 번째 위기
태안은 CO₂뿐 아니라 SO₂·NOₓ가 대기 중에서 화학반응을 거쳐 생성되는 2차 미세먼지(PM₂.₅)의 집중 지대로도 꼽힌다. 이 미세 입자는 폐포 깊숙이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고 심혈관계까지 영향을 확장한다.
석탄 화력발전소가 밀집된 서해안 지역은 PM₂.₅, NOₓ(NO₂ 포함), SO₂ 등 다양한 대기오염물질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한국의 코호트 연구(Eunjung Cho 등)는 PM₂.₅ 농도가 연평균 2.9 µg/m³ 증가할 때 심혈관 질환 발생(입원) 위험이 11.6%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고령층에서 이 같은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국제 연구기관 CREA(센터 포 리서치 온 에너지 앤 클린 에어)의 모델링에 따르면, 한국의 석탄화력발전소는 매년 720명 규모의 조기 사망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수십 년 단위로 누적하면 수천 명에 달할 수 있다. 이러한 건강 부담은 특히 석탄발전소가 집중된 충남 지역 주민에게 더 큰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어린이 취약성은 또 다른 경고다. 충남연구원·단국대·순천향대 등의 어린이 건강영향조사(2019–2020)에 따르면 발전소 인근 어린이들은 대기오염에 노출돼 폐 기능 지표에서 불리한 경향을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국제적·국내 연구들도 장기적·반복적 대기오염 노출이 아동의 폐 성장과 폐기능 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해 왔다.
또한 CREA의 건강영향평가(HIA)와 같은 모델링 연구는 한국 석탄발전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어린이 천식 신규 발생 등 여러 건강부담을 일으키며, 전체적으로 연간 수백 명의 조기 사망과 수많은 질병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증거들은 발전소 인근 아동 건강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구체적 역학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구조적 불평등 : 태안에 드리운 오염의 그물망
태안의 공기는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지리·기후·전력 체계가 서로 얽힌 오염의 그물망 때문이다. 태안의 하루는 바람이 만든 순환으로 움직인다.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돈다. 언뜻 보면 오염이 빠져나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하루 20~30km 규모의 해륙풍 순환이 오염을 다시 지역 내부로 되돌려 놓는다. “한 번 나간 오염이 다음 날 다시 돌아오는” 구조다.
밤이 되면 대기는 더 닫힌다. 야간 혼합고가 30~60m로 낮아지며 공기 위에 뚜껑이 씌워진다.오염물질은 위로도 옆으로도 퍼지지 못한다. 겨울이면 기온역전까지 겹쳐 오염이 8~12시간씩 갇히는 날도 많다. 실제 환경부 자료에서도 태안·서산의 밤 PM₂.₅ 농도가 낮보다 더 높은 기록이 반복된다.
이 모든 과정의 부담은 지역 주민이 감당한다. 충남은 한국 전력의 25%를 생산하지만, 지역 소비량은 생산량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혜택은 수도권이 누리고, 위험은 태안이 떠안는 구조적 불평등이 여전히 지속된다.
왜 서부발전은 바뀌지 않는가 : 정책의 틈과 전환의 지연
WP는 국제사회에서 “탈석탄 의지가 낮은 고배출 공기업”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2040년까지 석탄 40기 폐지를 언급했지만 실제 일정·감시·건강 영향 공개는 충분치 않다. 스코프3 배출 산정·공개는 매우 제한적이며, 주민 건강 영향 공개는 사실상 부재하다. 과학자들이 지적해온 전략적 지연(strategic delay)의 전형적 구조와 닮아 있다. 목표는 제시하지만 실행력은 미약한 방식이다.
WP는 가스터빈 전환과 수소 혼소 실증 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LNG 공급망 확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 누출은 여전히 심각한 기후 리스크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고효율 가스터빈이 전환의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궁극적 탈탄소가 아니라 '저탄소 도피처'에 가깝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6%대에 머물러 있다. 태안 해상풍력(2.5GW)은 주민 갈등과 인허가 지연으로 정체돼 있다. WP가 발표한 재생에너지 30% 목표 역시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필요한 지역 참여 구조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태안의 하늘은 묻는다. “목표는 있는데 왜 실행은 느린가?” “전환을 말하면서 왜 스코프3와 주민 건강 데이터는 비공개인가?” 그리고 “탈석탄 로드맵은 왜 여전히 과학이 제시한 최소 기준에 못 미치는가?” 남은 일은 실행뿐이지만 주체도 정책도 없는 실정이다.
태안의 하늘이 말하지 못한 진실, 그리고 한국 에너지의 다음 장은?
위성이 실시간 스캔하는 열 지도, 야간 오염 정체 그래프, 계절마다 달라지는 CO₂ 자취. 이들 데이터는 서로를 향해 정교하게 이어지며 하나의 메시지를 완성한다. “지금의 속도로는 미래를 지킬 수 없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어쩔 수 없는 구조’를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과학에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바람의 순환, 혼합고의 변화, 발전소 배출의 패턴은 모두 명확한 결론을 제시한다. 위험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의 누적이다. 태안은 그런 사실을 좀 더 빨리 감지된 장소일 뿐이다. 한국의 에너지 체계가 만들어낸 모든 문제는 태안의 대기 속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마지막 숙제를 남겼다.
세계는 지금 재생에너지와의 전쟁 중이다. 하지만 우리의 에너지 전환은 선언에 그쳤고 석탄은 여전히 타고 있다. 한국서부발전이 진정한 ‘국민 공기업’이라면, 그리고 정부가 ‘탄소중립’의 구호만 외친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석탄의 굴레를 끊고 과감한 에너지 전환에 나서야 할 때다. 더 빠르고, 더 투명하고, 더 공정한 선택과 실행이 시작되는 순간, 서해안 하늘은 새로운 에너지 시대의 첫 페이지가 열릴 것이다.
석탄화력의 ‘심장’ 태안화력발전소, 기후위기 시대에도 굴뚝은 멈추지 않았다
뉴스펭귄은 한국 온실가스의 현주소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된 ‘기후악당’의 얼굴들을 낱낱이 추적하는 연재 기획을 시작한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후진적 기후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의 오명을 뒤집어쓴 한국, 그 배경에는 누구의 책임이 자리하고 있는가. 본 기획은 한국 온실가스 배출의 구조적 모순을 해부하고,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의 민낯을 드러내며, 정부의 무책임과 무관심을 고발한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진실을 기록한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