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 반쪽짜리 COP30

화석연료 퇴출 무산에 적응재원도 논란

2025-11-24     정도영 기자
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결정문에 화석연료 퇴출을 명시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사진 UN Climate Change/Kiara Worth)

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운 결과로 막을 내렸다. 80개 이상 국가가 요구했던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은 산유국 반대로 무산됐다. 기후변화 적응 재원을 3배로 늘리기로 했지만 목표 시점이 5년 미뤄졌다. 미국이 공식 대표단을 보내지 않고 중국이 침묵하는 가운데 뚜렷한 리더십도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다. 시민사회에서는 COP 체제가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니냐는 'COP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 산유국 반대에 '좌초'

브라질 벨렝에서 현지시각 22일 폐막한 COP30에서 가장 큰 쟁점은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 로드맵 마련이었다. 2년 전 두바이 COP28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화석연료 전환을 선언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이나 시기는 정하지 못했다. 이번 COP30에서는 그 실행 계획을 만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회의 시작부터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을 제안했고, 영국, 독일, 프랑스, 콜롬비아, 한국 등 80개 이상 국가가 지지 서한에 참여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인도 등 주요 산유국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최종 합의문인 '무치랑 결정문'에는 '화석연료(fossil fuels)'라는 단어 자체가 언급되지 않았다. 브라질 의장국은 공식 협상 밖에서 자발적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차선책에 그쳤다.

브라질은 아마존 한가운데인 벨렝에서 회의를 개최하며 산림 보호 의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산림 벌채 중단 로드맵 역시 최종 결정문에서 빠졌다. '아마존 COP'로 불리며 의미를 부여받았던 이번 회의의 상징성이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환경단체 생물다양성센터(Center for Biological Diversity)의 진 수(Jean Su) 에너지정의 국장은 "회의장에 불이 난 것은 COP30이 화석연료 퇴출을 위한 자금 지원 이행에 참담하게 실패했다는 완벽한 은유"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회의 기간 중 COP30 회의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협상이 지연되기도 했다.

안드레 코헤아 두 라고 COP30 의장이 회담 중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UN Climate Change/Lara Murillo)

적응재원 3배 증액, '누가 얼마 낼지' 빠져 공허한 약속

기후변화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한 적응 재원은 2035년까지 현재의 3배인 연간 12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2021년 COP26에서 약속한 '2025년까지 400억 달러로 2배 증액' 목표가 미달된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한계가 분명하다. 당초 개발도상국들이 요구했던 목표 시점은 2030년이었으나 2035년으로 5년 미뤄졌다. 기준 연도도 2025년(약 400억 달러)에서 2022년(약 324억 달러)로 변경돼 실질적인 목표 수준이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누가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빠졌다는 점이다. 지난 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COP29에서도 재원을 늘리기로 합의했지만 기여 국가와 금액이 명시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목표만 제시하고 이행 방안은 불분명한 '공허한 약속'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연간 적응 재원 수요는 2035년까지 약 3100억 달러로 추정된다. 1200억 달러는 실제 필요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인도 기후재단 사타트 삼파다(Satat Sampada)의 하르지트 싱(Harjeet Singh) 전략고문은 "2035년까지 재원을 3배로 늘린다는 것은 이미 물에 잠긴 마을과 불타는 농장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기후위기는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불참·중국 침묵...리더십 부재 속 산유국 '득세'

이번 COP30에서는 뚜렷한 기후 리더십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공식 정부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미국이 COP에 공식 참석하지 않은 것은 역대 최초다.

중국은 회의장 입구에 대형 파빌리온을 설치하고 재생에너지 기술을 홍보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실제 협상에서는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기후 의제를 주도해온 유럽연합(EU)도 내부 경제 위기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예전만큼 강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영국 BBC는 "미국은 접근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은 침묵함으로써 이득을 얻었다"며 "이런 리더십 부재를 파고든 러시아가 평소와 달리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을 막는 데 앞장섰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산유국이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며 로드맵을 무산시켰다"고 분석했다.

COP 체제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플랜1.5 권경락 활동가는 “COP는 만장일치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중국, 인도 같은 탄소 다배출국과 산유국의 의견도 모두 반영해야 한다”면서 “이런 구조적 한계 때문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맹이 없는 회담이 반복되면서 국제 시민사회에서는 'COP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COP 체제 전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윤원섭 선임연구원은 "프레임워크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분석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이 탈퇴하면서 예정됐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단순히 진전이 없었다고 하기보다는 조금 더 세밀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3년간 이집트, UAE,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회의들은 개최국 분위기 때문에 경직돼 보였지만, 이번 브라질에서는 원주민, 청년, 젠더 등 다양한 기후 당사자들이 기후정의를 외쳤다"며 "COP은 기본적으로 기후 활동가들에게 축제의 장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아마존 원주민들이 COP30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사진 UN Climate Change/Diego Herculano)

한국, PPCA 가입 성과에도 '기후 꼴찌' 오명

한국은 이번 COP30에서 '국제탈석탄동맹(PPCA)'에 가입하며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석탄발전을 하는 국가 중에서는 실질적으로 첫 번째 가입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국은 또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로 2018년 대비 53~61% 감축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미 2040년 탈석탄을 선언한 상황에서 PPCA 가입이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활동가는 “탈석탄 목표 시점을 2030년이나 2035년으로 앞당긴 것도 아니”라면서 “이미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PPCA 가입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질적 이행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윤 연구원은 "PPCA 가입은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어떻게 구속력을 만드느냐가 시험대"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이번 COP30뿐만 아니라 이전 총회들에서도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등 약속·선언을 많이 했는데, 그것들이 지금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 기간 중 발표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서 한국은 64개국 중 6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최하위권이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산유국과 파리협정을 탈퇴한 미국뿐이다.

CCPI는 한국의 낮은 평가 이유로 1.5도 목표와 맞지 않는 전력수급계획, 낮은 탄소 가격,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부족 등을 꼽았다. 특히 목재 바이오매스 수입이 지난 5년간 41% 증가해 두 번째로 큰 재생에너지원이 된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COP30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면담하고 있다. (사진 기후에너지환경부)

한국의 협상 과정에서의 역할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권 활동가는 “한국은 유엔기후변화협약 협상 그룹인 환경건전성그룹(Environmental Integrity Group) 소속으로 중립적 입장에서 조율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면서 “그러나 적응 재원 구체화나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 마련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화석연료와 산림 벌채 관련 내용이 최종 결정문에서 빠질 때도 문구 수정을 요구하는 등의 적극적인 역할이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어 "글로벌 시민사회에서는 전반적으로 이번 COP30 결정문 자체가 매우 실망스럽다는 분위기"라며 "화석연료와 산림 벌채 로드맵이 빠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 정세희 외교팀장은 "복잡한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도 국제사회가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최신 과학과 현장의 데이터가 경고하는 긴급성, 재원 수요 등을 충족하기에는 국제사회가 실제로 움직이는 속도와 지원 규모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내년 COP31은 터키(안탈리아)가 의장국을 맡고 호주가 협상을 총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브라질은 남은 임기 동안 화석연료 전환과 산림 보호 로드맵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