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으로 4790조 원 농업 손실...아시아 피해가 절반
지난 30년간 기후위험 현실화...농업·식량안보 직격탄 “선제 대응·기후재정 확대 없으면 피해 규모 더 커질 것”
가뭄, 홍수, 해수온 상승 등 기후위기가 초래한 재난이 지난 30여 년간 전 세계 농업 기반을 깊이 침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1~2023년 누적 농업 피해액은 3조 2600억 달러(약 4790조 원). 연평균 약 990억 달러로 글로벌 농업 GDP의 약 4%에 해당하는 규모다. 단순한 농업 손실을 넘어 식량안보, 지역경제, 노동시장 전체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14일 발표한 보고서 ‘재해가 농업과 식량안보에 미치는 영향 2025’에서 “기후재난은 더 빈번해지고 더 파괴적이며 더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농업·수산업처럼 기후 민감도가 높은 산업은 충격에 매우 취약해 대응 방식 전환 없이는 손실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경고를 내놨다.
곡물 46억 톤 증발...아시아가 전체 손실의 47%
FAO 분석에 따르면 지난 33년간 재난으로 사라진 농축산물은 곡물 46억 톤, 과일·채소 28억 톤, 육류·유제품 9억 톤에 달한다. 이 손실은 전 세계인의 일 평균 섭취 열량 320kcal, 필요 에너지의 최대 16% 감소시키는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아시아가 전체 손실의 47%인 1조5300억 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대규모 생산과 홍수·폭풍·가뭄 등 자연재해 노출도가 높기 때문이다.
미주는 전체의 22%인 7130억 달러, 아프리카는 6110억 달러로 절대 규모는 적지만 생산 기반과 생계 타격이 GDP 구조 전체를 흔드는 상대적 피해가 가장 크다는 점이 주목된다.
어업도 예외가 아니다. 해양 열파는 1985~2022년 사이 66억 달러의 손실을 야기하며 전 세계 어업의 15%에 영향을 미쳤다. FAO는 “수산·양식업은 5억 명을 먹여 살리지만 현재 재해 평가에서 대부분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미니카연방·미얀마 가장 큰 충격… “기후재난 불평등 심화”
독일 비영리 기후·환경연구단체 저먼워치의 ‘기후위험지수(CRI) 2026’에서도 기후재난의 후폭풍을 보여준다. 특히 1995~2024년 30년간의 기후재난이 어떤 국가를 가장 강하게 흔들었는지를 보여준다.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국가는 소규모 섬나라인 도미니카연방과 최빈개발도상국인 미얀마. 도미니카연방은 허리케인 피해로 100여 명이 사망하고 11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누적 손실만 30억 달러 이상에 이른다. 미얀마는 홍수와 폭풍으로 14만 1000명 사망, 900만 명 이상 피해, 86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저먼워치는 “기후위험이 이미 국가 간·계층 간 불평등을 가속하고 있다. 1.5℃ 목표는 기후 안전장치로서 정치·경제적 의미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후재정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면 극한 기상재난의 사회·경제적 충격은 더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응 아닌 예측·선제 조치로 전환해야”
FAO와 저먼워치는 공통적으로 향후 30년간 기후재난의 규모는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온 상승, 해양 열파 확대, 강수 패턴 붕괴, 병해충의 북상·범위 확대 등 복합 재난이 동시에 심화되기 때문이다.
FAO는 핵심 대책으로 디지털 기반 조기경보 및 위험관리 체계를 제시했다. 인프라와 교육을 포함한 디지털 접근성 확대, 국가 농업·기후정책에 디지털 기술 통합, 손실과 피해 재정 확대 등이다. 관련해 지난 10년간 축적된 데이터는 기후재난 예측 정확도를 높였고 농민·정부·지역사회가 위험을 이해하고 선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FAO는 “기후재난 대응의 패러다임이 사후 복구에서 사전 예측·선제 조치로 이동해야 한다”며 “디지털 전환은 이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도구”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