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에 떠다니는 유전자로 ‘멸종위기종’ 찾는다

공기 eDNA기술로 이동 범위 넓은 동물까지 탐지

2025-11-20     이지영 기자
공기 중 미세한 세포 조각만으로도 멸종위기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공기 중 미세한 세포 조각만으로도 멸종위기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영국 정부가 공기에서 채집한 eDNA(환경 DNA)로 전국 생물다양성을 조사한 결과 보호종은 물론 침입종의 흔적까지 드러났다. 직접 관찰이나 포획 없이도 멸종위기종의 흔적을 폭넓게 추적할 수 있게 되면서 종 보호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는 평가다. 

영국 정부는 2025년 6월 국제 학술지 Nature Scientific Reports에 게재한 ‘영국 최초의 국가 단위 공기 eDNA 생물다양성 조사 결과’에서 공기 중 생물 유전 정보를 채집해 멸종위기종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eDNA는 생물이 몸에서 떨어뜨린 세포나 털, 타액, 분비물, 피부 조각 등이 물, 흙, 공기 같은 주변 환경에 섞여 남은 유전물질을 말한다. 이 DNA를 채집해 분석하면 어떤 생물이 그곳을 지나갔고 살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전에는 주로 물이나 흙에서 유전자를 채집해 특정 생물에 대한 존재를 탐지했다. 

공기 eDNA기술을 활용하면 날거나 이동 범위가 넓은 동물까지 폭넓게 탐지할 수 있다. 다양한 동·식물의 흔적을 동시에 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기 eDNA기술은 특수 필터로 공기를 채취해 DNA를 추출한다. 연구진이 생물 서식지로 알려진 곳에 필터를 설치해 생물종을 파악했더니 멸종위기종이 탐지됐다. 대부분 보호구역에서 탐지되며 서식정보와도 대체로 일치했다. 

보고서에서 탐지한 생물 목록을 살펴보면, 멸종위기종이자 영국 보호종인 유럽수달(NT, 준위협), 멸종 최소관심 등급이지만 영국 보호종인 붉은다람쥐, 큰박쥐, 고슴도치(VU, 취약)가 있다. 희귀하게 관찰되는 수염박새(LC,최소관심), 영국에 드물게 방문하는 올리브등물떼새(LC, 최소관심) 도 탐지됐다.

침입종도 발견됐다. 동부회색다람쥐, 어류인 프러시안 카프, 침입 가재, 외래 사슴류 등이 공기 eDNA기술로 확인됐다. 붉은여우는 아직 보고가 되지 않은 곳에서 최초로 확인된 침입종이었다. 

영국 공중 eDNA 대규모 연구를 수행한 영국 환경화학연구기관이 공개한 일러스트. (사진 영국 UKCEH)/뉴스펭귄

인공 사육실에서 초원으로 확대된 공기 eDNA기술

공기 eDNA기술을 활용한 실험은 2022~2023년 초창기에 동물원이나 인공 사육실에서만 진행되다 지난해부터 보호구역이나 넓은 초원 등 자연환경에서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공기 eDNA기술은 주로 소형 공기 펌프에 특수 필터를 부착해 공기 중 DNA를 수집한다. 현장에서 연구자가 직접 장비를 들고 이동하며 공기를 채집하거나 자동화 장치를 설치해 지속적으로 공기를 흡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공기 eDNA기술을 국가 범위의 생물다양성 조사에 활용한 사례는 영국이 처음이다. 영국은 전국 15곳에 설치된 대기질 측정소의 자동 흡입기를 활용했다. 자동 흡입기의 공기 유입구에 특수 필터를 부착해 24시간 동안 외부 공기를 빨아들여 생물 유전물질을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빗방울, 먼지, 수분, 미세입자와 함께 야생동물, 식물, 곤충에서 떨어진 세포 조각과 배설물이 흡수됐고, 이를 기반으로 DNA 분석을 진행했다.

영국 정부는 공기 eDNA기술을 조류를 모니터링하는 시민과학 관찰 데이터(eBird)와 비교했을 때, 특히 멸종위기종과 침입종, 외래종 범주에서 더 많은 탐지를했다고 밝혔다. 동부회색다람쥐나 침입 가재, 프러시안 카프처럼 기존에 거의 기록이 없던 종들이 먼저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처럼 출현 빈도가 낮은 종의 탐지는 지역과 환경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멸종위기종은 개체수 자체가 적고, 환경에 DNA를 남기는 기회도 적어 검출이 더 어려운 종에 속한다. 여기에 수집 시기, 기상 조건, 날씨와 계절 등 환경 변화에 따라서도 특정 종을 포착할 가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공기 eDNA조사는 여러번 반복해서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데이터를 모으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영국 사례의 경우 기존 대기질 측정소를 그대로 활용했다는 데서 오는 한계도 있다. 연구진은 기구의 위치나 필터를 설치한 높이 같은 주변 환경에 따라 탐지 민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기 eDNA기술을 이용해 생물다양성 조사를 실시한 영국 전역 15개 대기질 측정소의 위치. (자료 Nature Scientific Reports)/뉴스펭귄

공기 eDNA기술로 멸종위기종 찾고 불법거래 단속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에서도 공기 eDNA기술을 이용해 멸종위기종을 찾아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생명과학·자연보전 연구팀은 2022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코알라를 공기 eDNA기술로 탐지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장기 프로젝트로, 코알라 서식지로 알려진 퀸즐랜드 등 4곳에 특수 필터를 설치해 진행됐다. 

숲과 습지, 코알라의 이동 통로인 나무 아래에 필터를 부착하고 최소 30분에서 수 시간 단위로 공기 중 DNA를 모아 분석한 결과, 코알라는 서식지 4곳 중 2곳에서만 확인됐다. 이 연구는 공기 중 eDNA 기술이 넓은 지역에서 야생 멸종위기종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세계적으로 처음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공기 eDNA 기술이 멸종위기종 불법거래 단속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는 올해 해양선박에서 이 기술을 이용해 멸종위기종을 찾아내는 시도를 했다. 연구팀은 동물원에서 확보한 폐사한 사자 가죽을 컨테이너 내부에 넣어두고 환풍구와 밀폐 공간 등에 다양한 종류의 필터를 설치, 30분 간격으로 공기를 반복 채집했다. 그 결과 컨테이너 내부 공기에서 사자의 DNA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자는 국제적으로 불법거래가 많이 되는 멸종위기종으로 IUCN 적색목록 취약(VU) 등급이다.

공기 eDNA기술은 동물을 직접 포획하지 않고도 다양한 생물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도 생물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 빠르고 안전하게 탐지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연구원들은 이러한 특성이 멸종위기종과 서식지를 파악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어 자연보전 관리의 혁신적인 새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