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미 베었는데 알고 보니 불법...산림청은 “몰랐다”
국가유산청이 뒤집은 '산림청 벌채' 허점...환경 영향은 누가?
현재 전국에서 진행 중인 벌채사업 상당수가 법적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림청은 법을 제대로 몰랐다는 입장이다.
수십 년간 관행처럼 이어진 산림청의 벌채·숲가꾸기 사업이 법적 근거 없이 국가유산 영향진단을 피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 그동안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생태·문화유산 훼손 가능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가유산청이 올해 3월 기존 행정지침을 개정했고, 산림청이 뒤늦게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면서 “벌채는 영향진단 예외”라는 논리가 사실상 무너진 것이다.
핵심은 산림청이 벌채와 숲가꾸기 대부분을 영향진단 대상에서 제외해 왔지만, 실제 법령 구조상 예외로 인정할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국가유산영향진단법 시행규칙 제4조제2항제4호는 ‘지표 원형을 변경하지 않는 벌채’만 면제 대상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현실의 벌채는 통상 작업로·운반로 개설, 임목 반출을 위한 절토·성토·굴착을 수반하며 이는 「산지관리법」상 명백한 형질변경에 해당한다. 법제처 역시 “형질변경이 포함되는 경우 면제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숲가꾸기는 산림청이 1970년대 이후 시행해 온 산림관리 사업으로, 간벌·솎아베기·하층식생 제거·병충해 방제 등이 포함된다. 명목상 “산림 건강성·생장 촉진”을 위한 관리지만, 일부 현장에서는 굴착기·진입로 개설이 불가피하며 일시적 대면적 개방, 토양 교란, 서식지 단절 등이 반복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벌채는 그루터기를 자르는 행위이고 토지 하부는 건드리지 않아 해당하지 않는 줄 알았다"며 "해당 법령과 관련해 공문으로 전달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로를 벌채 구간 전체에 여는 것이 아니라 국지적으로 조성하는데도 전국 산림 사업마다 조사 의무를 적용하면 조사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지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 영향진단은 개발사업 과정에서 매장유산을 훼손하지 않도록 사전에 지표조사와 유존지역평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아파트 단지 조성, 도로 건설, 하천 정비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는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다만 과거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시절부터 ‘기존 산림지역에서 시행하는 입목 식재·벌채·솎아베기’ 등 일부 산림관리 행위는 지형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외가 인정돼 왔다. 산림청은 이 조항을 근거로 대부분의 산림사업을 영향진단 면제 분야로 분류해 왔다.
그러나 올해 3월 국가유산청이 행정지침을 명확히 하면서 “형질변경이 포함되는 산림사업은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공식화했고, 법제처 역시 9월 같은 취지로 “벌채는 영향진단 대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사실상 기존 면제 관행이 법적 근거가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생태자연 등급 낮추는 숲가꾸기 '모순'
국가유산 영향진단 허점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산림 사업을 예외로 적용하는 환경영향평가 역시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산림청 숲가꾸기 이후 생태자연도 등급이 내려가 개발이 가능해지는 사례다. 벌채 면제 관행이 생태자연도 체계 자체를 왜곡시켜왔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생태자연도는 국립생태원이 매년 고시하는 국가 생태평가 체계로, 1등급은 자연성이 가장 높고, 3등급은 인위적 교란이 큰 지역을 뜻한다.
환경영향평가는 이 등급을 기준으로 조사 범위가 달라진다. 1등급 지역은 정밀조사·보전대책을 요구하지만, 3등급 지역은 조사 면제 또는 간소화가 가능하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산림관리를 의도적으로 선행해 등급을 낮춘 뒤 개발을 추진하는 악용사례가 반복돼 왔다.
이달 초 국립생태원이 발표한 연구에서 산림관리 이력으로 생태가치가 하락하는 경향이 공식 확인됐다.
국립생태원이 2014년~2024년 10년간 접수된 생태자연도 이의신청 958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178건(18.58%)이 산림관리와 직접 관련이 있고 면적으로는 전체 이의신청 면적 31.23%를 차지했다. 산림관리가 이루어진 지역에서는 생태자연도 1등급 면적 33.15%가 감소, 반대로 3등급 면적은 43.21% 증가했다. 벌채·간벌 등 산림사업이 생태 자연성을 낮추고, 자연도 등급 하락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영향을 보여주는 수치다.
실제로 산림관리 후 이의신청을 거쳐 등급이 낮아진 지역에서는 케이블카, 채석장, 관광시설 등 개발 사업이 승인되기도 했다. 산림관리를 먼저 시행하고 시기에 맞춰 생태자연도 등급 이의신청 -> 등급 하락 -> 환경영향평가 면제 기준 충족 -> 개발 승인 과정을 거친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산림관리 후 생태등급이 빠르게 바뀌는 문제를 막기 위해 지난해 지침을 개정해 벌채·간벌 등이 이뤄진 지역은 향후 5년간 생태자연도 재평가를 유예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30년 이상 된 자연림이 1등급 기준이며, 훼손된 숲이 5년 안에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 역시 개정된 규정에 대해 "실제로 미리 인위적인 벌채나 숲가꾸기를 하고 일부러 등급을 낮추는 개발 악용사례가 있어 이를 방지하고자 5년 규정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5년 실효성 우려에 대해서는 "만들어진 지 1년"이라며 "일정 시일을 두고 효과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평가 체계 산림 산업에도 적용해야"
생태자연도 등급 악용 사례를 보면 숲가꾸기를 포함한 벌채는 나무를 베는 행위가 인정되는 모순이다. 그럼에도 산림청 숲가꾸기나 긴급벌채 등 목적을 막론하고 나무를 베는 성격의 사업에서는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서 예외 조항이 적용돼 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법제처 판단을 계기로 산림사업 전반에 대한 환경평가 체계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는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산림 죽목을 훼손하는 행위는 법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문제지만, 산림청의 영향력이 커 환경평가 체계가 손대지 못한 것”이라며 “나무는 경제적 가치가 있지만 생물다양성은 시장가격이 없어 구조적으로 후순위에 밀린다”고 말했다.
서울환경연합 최진우 전문위원은 "보호구역 내 산림경영을 금지해야 하고 중요한 생물서식지가 있는 지역도 벌목 등을 금지 제한하거나 환경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며 "현재는 제도화된 감시 장치가 없고, 조사 역시 부실하다. 기후부와 국립생태원에서 문제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