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에서 극적으로 부활한 희망의 동물 4

2025-11-18     이지영 기자

기후위기 가속화 속에 세계 곳곳에서 안타까운 멸종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절멸 위기를 극복하고 기적적으로 개체수가 늘어난 동물도 있다. 이들이 희망을 찾은 원동력은 ‘서식지 건강 회복’과 ‘생태계 균형 부활’이다. 멸종위기에서 벗어난 동물과 그들의 서식지는 어떻게 활력을 되찾았을까?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난 10월 멸종위기등급이 완화된 20종 명단을 발표했다. 이들은 “효과적인 보존 조치와 위협 요인 감소가 개체수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위기에서 벗어난 종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단순히 개체수만 늘어난 게 아니라 그 종이 속한 생태계 전체가 건강하게 회복했다. 종 또는 서식지 복원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위협요소가 드러나거나 지역사회와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 해당 지역 주민이 복원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사례도 관찰됐다. 

IUCN 보고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미국 비영리 과학 저널 PLOS Biology(플로스 바이올로지)가 2024년 밝힌 바에 따르면, 멸종위기가 완화된 종들은 대개 ‘적극적인 보전 활동’이 이뤄졌고, 다양한 보전 조치가 동시에 이뤄졌다. IUCN 리스트를 포함한 최근 조사에서 멸종위기 등급이 하향조정돼 위기가 완화됐다고 평가받은 야생생물 4종을 소개한다. 

염소 방목 중단하고 나무 심었더니 돌아온

과달루페 준코

(사진 Pau Aleixandre, Julio Hernández Montoya, Borja Milá, Wikimedia Commons)/뉴스펭귄

멕시코 과달루페섬에서만 사는 고유종 새 과달루페 준코(Junco insularis)는 2025년 멸종위기 등급이 한 단계 낮아졌다. 2016년에는 위기(EN)였지만 올해는 취약(VU)판정을 받았다. 개체수도 상당히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이들의 개체수가 줄었던 것은 산염소 때문이었다. 과달루페섬에는 지난 19세기부터 산염소가 많았다. 산염소 활동 역역이 넓어지고 먹이활동이 늘어날수록 산림은 줄고 토종식물도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준코를 비롯한 토착 조류 숫자도 급격히 감소했다. 

이에 정부는 섬 전체에서 더 이상 산염소 사육하거나 방목하는 행위를 금지했고, 야생 산염소는 모두 죽이는 정책을 시행했다. 염소가 줄어들면서 토종 풀과 나무는 살아났지만 외래종이 과도하게 번식해 또 다른 문제가 됐다. 외래 잡초와 나무가 과도하게 번식하는 문제는 토종 수목을 심고 침입종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관리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자 산림이 서서히 복원되고 식생이 살아났다. 숲 생태계가 힘을 회복하면서 과달루페준코 서식환경도 좋아졌다. 

사육과 방목을 중단하는 과정에서 주민 생계 피해에 대한 논란이 일었으나 정부는 토종 생물보전과 섬 생태계 복원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며 정책을 추진했다. 대신, 정부는 주민들이 생계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비영리단체와 협업해 섬 인근에 해양보호구역을 만들고 주민들이 생태관광 가이드로 일하거나 해양과 산림복원사업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국가간 협조로 개체수 늘린

검은얼굴숟가락부리(저어새)

(사진 국립생물자원관)/뉴스펭귄

저어새라고도 불리는 검은얼굴숟가락부리(Black-faced Spoonbill)는 동아시아 연안과 갯벌에 산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 전 세계 개체수가 300마리도 되지 않을 만큼 심각한 개체수 감소를 겪었다. 갯벌과 해안 습지의 개발과 매립으로 서식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보존에 관여하는 한국, 중국, 홍콩, 대만 등의 국가가 각기 다른 이용과 보전 정책, 개발 규제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에서는 개발이 우선되면서 갯벌·습지가 잘 보존되지 못했다. 중국과 대만에서도 환경영향평가가 미흡한 상태에서 갯벌 매립과 양식장 조성이 잇따랐고, 한국 역시 1960년대 이후 대규모 간척과 매립이 반복되며 1990년대까지 평가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보전정책이 본격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딥베이 일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이후 람사르 습지로 등록하며 보전정책을 강화했다. 대만도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주요 습지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중국 딥베이와 맞닿은 지역인 홍콩은 1976년 마이포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1995년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해 검은얼굴숟가락부리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과학적으로 모니터링을 지속해왔다. 이곳에서는 ‘습지 손실 금지(no net loss in wetland)’ 원칙을 꾸준히 시행했다. 개발, 매립, 인공구조물 설치 등으로 습지가 줄어들거나 훼손될 경우, 그만큼의 습지를 새로 복원하거나 대체해 전체 습지의 양과 기능이 줄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2006년에는 한국·중국·홍콩·대만 등의 국제사회가 협력해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을 맺었다. 공동 모니터링과 정보 공유, 서식지관리계획 수립 등 보호조치를 공동으로 추진했다. 2023년에는 인천 송도와 홍콩 마이포가 ‘자매서식지(EAAF Sister Sites)’ 협약을 체결해 공동조사와 정보교류를 확대했다. 인천시는 “국제멸종위기종 저어새 보존 국제네트워크”를 구축해 홍콩·중국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전 세계 약 4,000여 마리 저어새 보호에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1994년 위급(CR)으로 지정되었던 이 종은 2000년 ‘위기(EN)’로 완화됐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6,000마리 이상으로 늘어났다. 주요 서식지인 홍콩 딥베이의 월동 개체수도 1982년 20마리에서 2022~2023년 겨울 527마리까지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먹이가 되는 토끼부터 늘린

이베리안스라소니

(사진 Photo: CoDe83 / iNaturalist CC BY-NC, IUCN)/뉴스펭귄

이베리안스라소니(Iberian lynx)는 이베리아반도에 서식하는 고양이과 동물이다. 20세기 말에는 안달루시아의 두 보호구역인 시에라 모레나와 도냐나 국립공원에만 남아있었다. 

개체수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먹이인 유럽 굴토끼 개체수 감소였다. 토끼가 전염병과 사냥꾼에 의해 남획되면서 스라소니의 번식과 생존율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베리안스라소니 서식지를 확장하기 위해 토끼의 개체수 복원도 함께 이루어졌다. 2002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스페인스라소니를 구할 목적으로 '라이프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이에 정부와 NGO 등으로 꾸려진 복원팀은 6만 3천마리 이상의 토끼를 인공 증식해 야생에 방사했다. 이와 함께 토종 초지를 복원하고 질병 관리도 강화했다. 또한, 스라소니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인공 번식을 거쳐 자연에 방사했다. 방사된 스라소니들은 야생 개체들과 번식을 이어가며 서식지를 점차 넓혀 나갔다. 더불어, 복원팀은 보호구역과 새로운 복원지 사이에 야생동물통로를 구축해 서식지 확장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는 지역 사냥협회와의 협력이 필요했다. 스라소니 서식지 대부분이 사냥협회의 소유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토지주와 사냥협회의 동의 없이는 토끼와 시라소니 방사, 모니터링을 진행할 수 없었다. 약 300건 이상의 사유지와 공유지 협약을 맺었고, 토지소유자들은 카메라 트랩을 설치하는 등의 모니터링 진행과 야생동물 통로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협력했다. 야생동물로 인한 가축과 농작물 피해가 생길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시행했다. 지역 주민들은 토끼 사냥 시기를 조정하고 포획 허용량 제한,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등의 결정권도 가졌다.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서식지를 관리하면서 보호구역 규제의 실효성과 신뢰성이 높아졌다.

이 결과, 2000년대 초반 개체수가 고작 94~100마리에 불과해 위급(CR)으로 분류되었지만, 2015년에는 ‘위기(EN)’로, 2024년 6월에는 ‘취약(VU)’으로 등급이 완화됐다. 그리고 현재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에서 야생 개체수가 2,000마리를 넘어섰다. 당시 보전 조치가 없었다면 야생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것으로 평가된다.

지역 주민이 보디가드 자처한

대형뿔코뿔소

(사진 IUCN Redlist)/뉴스펭귄

인도와 네팔, 아프리카 보호구역에 서식하는 대형뿔코뿔소(Greater one-horned rhino)는 20세기 초 개체수가 100마리 이하로 떨어질만큼 심각한 멸종위기를 겪었다. 

대형뿔코뿔소 뿔을 노린 밀렵이 조직화되고 불법적으로 거래된 것이 멸종위협요소였다.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뿔이 전통약재나 장식품으로 쓰이며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세 국가는 모두 초기에  군사적 대응을 택했다.보호구역 안에서도 순찰대와 밀렵꾼의 충돌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국립공원 경비원들에게 총기 사용을 허가하고 이 과정에서 밀렵꾼과 관계없는 주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인도는 특히 보호구역 주변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까지 시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권문제논란과 지역주민의 반발이 일어났다.

이후 단속은 첨단기술 이용과 지역사회 참여 방식으로 바뀌었다. 드론을 활용해 24시간 감시하고 울타리에 센서를 설치해 야생동물 이동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밀렵꾼의 침입을 탐지하도록 했다.

지역 주민들은 순찰대원으로 활동하면서 밀렵꾼을 직접 감시해 포상금도 받았다. 또한 보호구역에서 사냥과 임산물 채취 등을 대신하여 생태관광 가이드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특히 케냐 르와 등 일부 보호구역에서는 코뿔소와 소, 염소 등 가축을 함께 기르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감시와 목초지 관리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 결과, 대형뿔코뿔소는 2008년 IUCN 등급이 ‘위기(EN)’에서 ‘취약(VU)’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현재 개체수는 약 4,000마리로, 최근 10년 동안 20% 이상 증가했으며, 지역주민이 보전활동의 주체로 자리잡은 보호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좁은 서식지에 사는 종은 멸종위기 벗어날 가능성 높다"

PLOS Biology 보고서는  IUCN 적색목록 평가에 근거했을 때, 섬이나 좁은 서식지에 사는 종일수록 멸종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밝혔다. 서식지가 제한된 지역에서는 위협 요인을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또한 서식지 집중 관리, 침입종 제거 그리고 종별 방사나 이식 같은 맞춤형 복원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어서 등급 완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복원 조치 이후 짧은 기간 안에 서식지 면적이 넓어지고 개체수가 증가한 점도 개선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했다.

반면, 대륙에 분포하는 대형 종, 광범위한 서식지를 가진 종, 또는 관리가 어려운 지역에 서식하는 종은 개체수 회복이 느리다. 코끼리, 호랑이처럼 이동 범위가 넓고 다양한 위협에 노출된 종은 국제협력과 장기적인 모니터링이 중요하다. 이들은 밀렵, 서식지 단절, 개발 압력 등 복합적인 위협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서식지가 넓을수록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대한 관리도 어렵다. 일부 지역에서 보호 조치를 시행해도 전체 개체군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보호구역 지정이 충분하지 않거나, 단기적이고 부분적인 관리에 그친 지역에서는 멸종 등급 완화가 어려울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