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폐쇄 일정만 있고 예산·대책 두루뭉술...정의로운 전환 어디에?

2025-11-17     정도영 기자

정부가 2038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40기를 폐쇄하겠다는 일정만 제시했을 뿐, 그 작업을 둘러싼 '정의로운 전환' 과정은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소중립기본법에 정의로운 전환 조항이 있으나 대부분 선언적 규정에 그치고 구체적 기준은 대통령령에 위임해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EU 등이 사회적 합의 구조와 예산, 노동자 지원 프로그램 등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탈석탄 정책이 2038년까지 40기 폐쇄 일정만 제시했을 뿐, 해체·환경·노동 전환 등 '정의로운 전환' 과정 전체가 설계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Unsplash)

"속도만 있고 과정 없는 전환"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석탄발전소 40기가 순차 폐쇄된다. 그러나 폐쇄 일정 외에 지역 경제, 고용, 환경관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종합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일정을 제외하고는 지역에 미치는 경제영향, 고용 악화를 국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그 피해를 온전히 지역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광역 단위에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정책 방향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고 관련 예산도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두루뭉술한 탄소중립기본법

한국은 2021년「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약칭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며 제7장에 '정의로운 전환' 조항을 뒀다. 그러나 법 조항 대부분이 선언적 규정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제47조(기후위기 사회안전망의 마련)는 "지원 대책과 재난대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할 수 있다", "~마련하여야 한다"는 표현만 있을 뿐 구체적 지원 내용이나 예산 규모는 명시하지 않았다.

제48조(정의로운전환 특별지구의 지정 등)는 "급격한 일자리 감소, 지역경제 침체" 등이 발생한 지역을 특별지구로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으나, 구체적 지정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으로 위임했다. 

이어지는 대통령령에서는 특별지구 지정 요건을 "탄소중립 정책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기업의 경영환경 악화 등이 예상되거나 발생한 지역"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경영환경 악화'의 구체적 기준이나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법률 시행 3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특별지구로 지정된 곳은 없다.

제53조(정의로운전환 지원센터의 설립 등)도 "설립·운영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으로, 의무 이행을 강제하지 않는다. 관련 시행령은 "취업지원, 직업훈련, 생계지원" 등을 나열하고 있으나, 지원 대상(연령, 근속연수 등), 지원 금액, 지원 기간 등 실행 가능한 구체적 기준은 명시하지 않았다.

3無, 사회적 합의 · 예산 명시 · 노동자 지원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국제 기준과 비교할 때 세 가지가 없다.

첫째, 사회적 대화와 합의 구조가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5년 정의로운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지속가능성의 목표 및 목표달성을 위한 경로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함. 모든 관계자들 사이에 공유된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함"을 핵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독일은 2018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31인으로 구성된 탈석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위원회는 약 7개월 동안 매달 한 번 이상 회의했고 경제적 타격이 가장 큰 탄광지역 세 곳을 방문했다. 

반면 한국의 탄소중립기본법은 특별지구 지정 시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고만 명시할 뿐, 노동자·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자의 직접 참여 절차나 사회적 대화 구조에 대한 구체적 규정은 없다.

둘째, 구체적 재원과 예산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2027년까지 550억 유로(약 93조 원) 규모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조성했다.

독일은 석탄지역투자법을 통해 2020-2038년 동안 갈탄(brown coal. 수분이 많고 품질이 낮은 석탄) 지역 세 곳에 총 140억 유로(약 23조 7000억 원) 예산이 투입된다고 법으로 명시했다. 지역별 배분 비율도 구체적으로 정했다. Lusatian 지역 43%(60억 2000만 유로), Rhenish 지역 37%(51억 8000만 유로), 독일 중부 지역 20%(28억 유로)다.

한국의 탄소중립기본법 제48조 제2항은 특별지구 지원 내용을 나열하고 있으나, 구체적 예산 규모나 재원 조달 방안은 명시하지 않았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로 위임했다.

셋째, 노동자 직접 지원 프로그램이 구체화되지 않았다. 독일은 58세 이상 노동자에게는 공적연금 수령 시까지 고용조정 지원금을 지급한다.

한국은 탄소중립기본법 제47조 제3항에서 "재교육, 재취업 및 전직 등을 지원하거나 생활지원을 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규정했으나, 구체적 지원 대상(연령, 근속연수 등), 지원 수준, 지원 기간 등 실행 가능한 기준은 없다. 이어지는 시행령 제48조에서 "고용상태 영향조사를 5년마다 실시"하도록 규정했을 뿐이다.

탄녹위 "특별지구 지정 준비 중"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탄녹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직속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정부는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지정을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박경환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전환국 사무관은 "특별지구는 고용부·산업부와 공동으로 지정하게 돼 있다"며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에는 보다 폭넓은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지원사업을 할지 발굴하는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구가 끝나면 고시안이 나오고, 고시안에 따라 지자체 신청을 받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예산과 관련해서는 기획재정부가 운용하는 기후대응기금을 재원으로 제시했다. 2025년 기후대응기금은 2조 3260억 원 규모다. 이 중 '공정한 전환' 예산은 2077억 원으로 전체의 8.9%다. 기후대응기금은 2022년 신설 이후 2조 4000억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배출권 가격 하락과 유류세 인하 정책 등의 영향으로 기금 수입은 매년 예산안 대비 큰 폭으로 부족했다. 2022년 배출권 매각 대금은 예산안 7306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 3188억 원에 그쳤다. 2023년에는 4009억 원 중 실제 수입이 996억 원에 머물렀다.

일정만 있고 과정은 없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탈석탄 정책이 '폐쇄 일정'만 있고 '전환 과정'은 설계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주요국의 정책 비교를 통한 국내 석탄화력발전 부문 공정전환 추진 방향 연구> 보고서는 "석탄화력발전의 폐쇄·감축을 정의로운 전환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해관계자 집단, 구체적으로는 지역사회(지자체)와 근로자에 대한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문제는 효과적인 정책 추진을 위한 근거법과 거버넌스의 부재"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