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악당의 민낯 ⑧] 한국동서발전, 붕괴의 연기...그린의 가면을 벗기다

2025-11-12     박치현 환경전문기자

울산의 붕괴, 연기 속의 질문

2025년 11월 6일 오후 2시 6분. 울산 장생포 앞바다 위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울산화력발전소 제3복합동 냉각수 순환로가 붕괴돼 , 하청 근로자 7명이 매몰됐다. 철골과 배관이 뒤엉킨 현장은 전쟁터 같았다. 세 시간 뒤, 폭발이 또 일어났다. 불길은 LNG저장탱크로 번졌다.

한국동서발전. (사진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사망자 5명, 실종 2명. 복합발전설비 2기 전면 중단. 조사 결과, 원인은 “노후 구조물의 피로파괴.”로 밝혀졌다. 하지만 기술적 결함은 표면일 뿐이었다. 예방보다 실적을, 정비보다 가동률을 택한 구조적 관리 실패가 있었다.

울산의 잿빛 연기는 한국 전력 산업의 경영 철학이 무너진 상징이었다. 1977년 준공된 울산 1호기는 이미 수명 40년을 넘겼다. 정부는 여러 차례 “전면 교체”를 권고했지만, 모 회사인 한국동서발전은 “효율성 확보”를 이유로 연장을 택했다. 그 결정의 결과가, 지금의 붕괴였다.

공기업의 얼굴과 그림자

한국동서발전(EWP)은 2001년 한국전력에서 분사된 5개 발전 자회사 중 하나다. 울산 본사를 중심으로 당진·동해·호남·일산 발전소를 운영한다. ‘동서를 잇는 에너지 기업’을 표방하지만, 그 이름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동서(東西)는 이어지지 않았다. 기후의 균열이 그 사이를 갈랐다.

2000년대 초,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명분으로 민영화를 추진했다. 효율화, 경쟁력, 민영화의 논리였다. 하지만 효율은 비용 절감의 다른 이름이었다. 인건비 삭감, 안전관리 외주화, 환경 설비 예산 축소 ― 그 결과는 울산의 잔해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동서발전의 설비용량은 9,590메가와트(MW). 대한민국 전력의 15%를 담당한다. 그중 60% 이상이 여전히 석탄이다. 2024년 매출 5조 3,228억 원, 영업이익 6,072억 원(전년 대비 323% 상승). 경영실적은 양호하지만 이익의 그림자는 깊다. 회계에 잡히지 않는 탄소배출, 건강 피해, 기후부담 — 그 숨은 비용은 사회가 대신 냈다.

공식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4년 2,700만 톤(CO₂eq).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GIR) 기준, 국내 발전공기업 중 여섯 번째다. 이 수치는 590만 대 가솔린 자동차 1년 치 배출과 맞먹는 양이다. ‘기후악당’이라는 이름은 통계가 만든 현실이었다.

석탄의 도시, 당진 ― 숨 막힌 하늘

충남 당진과 울산은 한국형 석탄벨트의 심장이다. 하루 유연탄(비튬니트석탄) 소비량은 25,000~35,000 톤. 발전소 주변 하늘은 늘 뿌옇다. 매연은 바람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하역선 부두엔 하루 종일 검은 분진이 날린다. 이산화황(SO₂)과 질소산화물(NOx)은 대기 중에서 반응해 초미세먼지(PM2.5)를 만든다.

이 독성 입자는 폐 속 깊숙이 침투해 질환을 낳는다. 충남 보고서에 따르면 당진의 PM2.5 농도는 전국 평균의 1.4배, 호흡기 질환은 두 배. 주민들은 ““창문을 열 수가 없고 빨래는 잿빛이 된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발전소는 멈추지 않는다. 정지의 순간은 곧 손실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황이 ‘값싼 전기’라는 이름의 경제 논리 뒤에 숨겨져 있다.

석탄의 화학, 오염의 구조

석탄에는 황, 질소, 중금속이 섞여 있다. 연소 시 이 불순물들이 산소와 반응해 기체로 방출되거나 미세먼지로 남는다. 질소산화물은 연료 속 질소뿐 아니라 공기 중 질소가 고온에서 산화되며 생성된다. 완전연소를 해도 줄일 수 없는 오염이다.

노후 설비는 또 다른 문제다. 1980~90년대 지어진 발전소들이 여전히 가동 중이다. 당시 기준은 지금보다 훨씬 느슨했다. 탈황·탈질 설비는 효율이 떨어지고, 배관과 필터는 노후했다. 동서발전은 단계적 교체를 진행 중이지만, 전력 수요와 예산 제약이 발목을 잡는다.

석탄발전은 기저부하형(365일, 24시간 풀가동)이다. 가동률이 높고, 출력 변동이 생기면 연소 효율이 떨어진다. 그 순간 아황산가스와 질소산화물이 치솟는다. 겨울철 대기 정체기엔 오염물질이 머무는 시간이 길다. 이 구조가 지역의 하늘을 흐리게 한다.  

온실가스의 덫 ― ‘기후악당’의 민낯

석탄 중심의 연료 구조는 배출의 원인이다. 탈황·탈질·집진 설비가 있어도 한계는 분명하다. 이들은 미세먼지만 줄일 뿐, 이산화탄소는 건드리지 못한다. 동서발전은 CCS(탄소포집저장)와 수소혼소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상용화는 더디다. 감축 효과도 미미하다.

그 사이 매년 2,700만 톤의 온실가스가 하늘로 솟는다. ‘기후악당’이라는 이름은 현실의 데이터였다. ESG 경영보고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을 약속한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설비만으로는 기술적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연료를 바꾸지 않으면 근본적인 대책이 불가능하다. 석탄에서 LNG, 수소, 재생에너지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에너지 시스템을 다시 짜야 하는 ‘구조적 대공사’는 어렵고 험난하다. 문제는 속도다. 

‘그린’의 가면 ― 재생의 허상

동서발전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다. 그러나 수치는 왜곡돼 있다. 2024년 재생 비율 4.8% 중 절반 이상이 외부 인증서(REC) 매입분이다. 자체 생산 전력은 2%도 안 된다. ‘친환경’은 통계의 착시였다.

혼소, 바이오, LNG 전환 — 언어는 화려하지만 과학은 냉정하다. 수소·암모니아 혼소는 탄소제로가 아니다. 연소 조건이 바뀌면 질소산화물이 오히려 늘어난다. ‘그린’은 아직 기술보다 마케팅에 가깝다. 석탄의 연기가 아닌 전환의 신호가 하늘로 오를 때, 기후악당의 오명을 씻을 수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소전환, CCS — 기술의 약속과 한계

동서발전은 오염물질 저감 대책을 제시했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수소혼소(수소+기존연료), CCS(탄소포집저장)는 모두 미래 기술이다. 매력적인 해법이지만 현실에는 다수의 장벽이 존재한다. 

ESS는 재생전력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이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서 ESS가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다. 설치 비용·충전·방전 횟수에 따른 장비 열화·화재 위험 등이 기술적 리스크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혼소 전환은 ‘청정 연료’로 포장되지만 그린수소 생산은 비용이 높고 공급망이 제한적이다. 암모니아 혼소 역시 연소특성이 기존 연료와 달라 안전성이 불안하다.

탄소포집저장은 이론적으로는 탄소를 격리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적 대규모 적용’까지는 갈 길이 멀다. 포집률, 저장 안정성, 에너지 페널티(포집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고려하면 기술적·경제적 장벽이 높다. 기술은 약속이지만, 실행은 현실적 문제다.

한국동서발전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뉴스펭귄

석탄의 도시에서 그린의 도시로 ― 연료 전환이 만든 새로운 길

기후위기 시대, 석탄의 종말은 피할 수 없는 결말이었다. 어떤 도시는 붕괴했고, 어떤 도시는 부활했다. 차이는 단 하나였다. “언제, 어떻게 연료를 바꿨는가.”

(1) 독일, 루르의 부활 ― 정부와 기업이 함께 그린 전환의 지도

독일 루르 지역은 20세기 중반까지 유럽 최대의 석탄·철강 벨트였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석탄 수요가 급감했다. 산업은 흔들리고 도시 전체가 쇠락했다. 독일 정부는 “폐쇄가 아닌 전환”을 택했다. 정부는 ‘에너지전환위원회’를 구성해 노조, 기업, 시민사회와 장기 계획을 세웠다. 기업에는 세제 혜택과 투자유인을 제공했다. 대학과 연구소에는 환경기술 연구를 지원했다. 석탄 기업들은 풍력·태양광·수소 기술로 사업구조를 전환했다.

그 결과, 폐광은 재생에너지 단지로, 제철소는 에너지 연구단지로 변모했다. 전력 생산의 주체가 ‘석탄노동자’에서 ‘에너지 기술자’로 바뀌었다. 루르는 더 이상 검은 도시가 아니다. 지금은 유럽 녹색산업 혁신의 상징이 됐다.

(2) 덴마크, 노르드열병합 시스템 ― 정부의 결단이 만든 청정 전환

덴마크는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에너지 독립”을 선언했다. 정부는 석탄발전 의존도를 줄이고 천연가스와 바이오매스로 전환했다. 기업들은 정부의 보조금과 장기 구매계약 제도 덕분에 신재생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

코펜하겐의 ‘노르드열병합발전소(Amager Bakke)’는 그 상징이다. 이 발전소는 폐기물과 바이오연료를 이용해 도시 난방을 공급한다. 설비 위에는 스키장이 들어섰다. 산업시설이 시민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정부의 명확한 정책 방향, 기업의 기술 혁신, 시민의 신뢰가 한데 모여 ‘에너지 전환의 덴마크 모델’을 완성했다.

(3) 스페인, 아스투리아스의 선택 ― 폐광을 기회의 땅으로

스페인은 2018년, 석탄 채굴을 공식 중단했다. 그러나 단순 폐쇄로 끝나지 않았다. 정부·노조·지방정부가 ‘공정 전환 협약’을 체결해 노동자 재교육과 지역 산업 육성에 나섰다. 광산노동자들은 재생에너지 설비 기술자로 전직했고, 정부는 청년 창업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그 결과, 폐광 지역은 ‘그린 스타트업 허브’로 탈바꿈했다. 전환의 주체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사례다.

(4) 캐나다 앨버타 ― 석탄발전소를 닫고, 청정에너지로 열다

캐나다 앨버타주는 석탄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면서 연료 전환 정책을 병행했다. 정부는 석탄기업에 LNG 및 재생에너지 발전으로의 사업 전환 지원금을 제공했다. 동시에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정책 설계부터 예산 집행까지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탄소세 수익이 전환 재원으로 활용됐고, 지역 내 청정에너지 일자리 2만 개가 새로 생겼다. 폐쇄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으로의 이동”이었다.

세계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그 길목에 서 있다. 독일의 기업들은 정부의 명확한 로드맵을 믿고 투자했다. 덴마크는 법과 제도로 시장을 바꿨다. 스페인과 캐나다는 지역사회와 협의해 석탄을 닫고 사람을 지켰다. 네 나라는 길을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기후정의는 공동체의 존엄을 지키는 약속이다.

한국동서발전이 여전히 석탄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안일함은 내일의 재앙이 된다. 유럽의 석탄 도시가 푸른 도시로 바뀐 건 우연이 아니다. 정부의 결단, 기업의 투자, 시민의 참여 ― 세 축이 함께 움직였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우리의 굴뚝이 아직 검은 이유는, 그 세 축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 속 특정 장소 등과 관계없음.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기후악당의 민낯, 전환을 미룬 대가

한국동서발전에서 뿜어내는 온실가스는 연간 2,700만 톤, 탈황·탈질설비로 미세먼지는 걸러낼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는 막지 못한다. 온실가스가 대기를 덮고, 시간은 묵묵히 지구의 온도를 높인다.

동서발전은 연료 전환을 ‘못 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해답은 그 둘의 교차점에 있다. 석탄은 여전히 싸다. 전력시장 제도는 석탄에 유리하게 짜여 있다. 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크고, 저장비용은 높다. 정부의 지원은 느리고, 제도 개편은 더디다. 그러니 전환은 늘 다음으로 밀린다.

동서발전은 매년 수천억 원의 이익을 내고 있다. 탄소를 태워 얻은 돈이다. 연료를 ‘못 바꾸는’ 게 아니라, ‘안 바꾸는’ 쪽에 더 가깝다. 이윤이 석탄 위에서 굴러가는 한, 전환은 선언에 머무른다. 그 대가는 명확하다. 기후위기 비용은 지금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치른다. 아이들이 마실 공기,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그 대가는 쌓인다.

연기가 멈추는 날, 한 아이가 그 굴뚝을 바라보며 다시 파란 하늘을 그릴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묻는다. 왜, 누가, 어떤 대가로 이 전기를 쓰고 있는가. 그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바꿔야 할 미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