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악당의 민낯 ⑦] 발전 5사, 석탄에 갇힌 한국 전력의 그림자
"한전은 여전히 거대 탄소 배출원”
발전 5사 체계, 기후위기의 중심으로
한국 경제의 심장은 전력이다. 공장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지하철이 달리며, 데이터센터가 가동되는, 이 모든 순간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맥박이 흐른다. 그런데 그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이 지구의 체온을 서서히 높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국전력공사(KEPCO)의 자회사, 즉 발전 5사(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가 있다.
이들은 국내 전력 생산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동시에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15~17%를 차지하는 거대 탄소원이다. 각 사의 연간 배출량은 평균 2천만 톤 이상, 단일 산업군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속한다.
이 기사는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과학적 데이터와 정책 분석을 통해 한국 전력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해부하고, 왜 ‘기후악당’이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는지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한국의 전력 체계가 탄소 의존에서 기후 책임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석탄의 기억...에너지 체계의 구조적 고착
2024년 현재, 한국의 전력 체계는 여전히 석탄의 그림자 속에 갇혀 있다. 전체 전력의 33~36%가 석탄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2036년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탈석탄 목표에도 맞지 않다. 반면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10.4%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OECD 평균인 34%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전국에는 40여 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설비용량은 35GW에 달한다. 절반 이상이 25년을 넘긴 노후 설비로, 일부는 1990년대의 보일러 구조를 유지한 채 연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흥(인천), 당진(충남), 삼천포(경남) 발전소는 하루 수천 톤의 유연탄을 태워 수도권과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떠받친다. 영흥화력의 하루 석탄 사용량은 약 2만 톤, 단일 설비 기준으로 유럽 주요국의 소형 화력발전 전체를 합친 수준이다.
이 같은 석탄 중심 체계는 단순한 에너지정책의 실패로만 볼 수 없다. 한국 산업화의 물리적 유산이 만들어낸 구조적 고착이다. 발전소 주변에는 석탄항만, 전용 철도, 기자재 산업, 지역 상권이 얽혀 하나의 복합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발전소는 단순한 전력 생산 시설을 넘어, 지역경제의 인프라이자 고용의 중심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대형 석탄발전소가 폐쇄될 경우 인근 지역의 고용률은 최대 15% 이상 감소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 주민에게 탈석탄은 곧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현장에서 거센 반발을 맞는 이유다.
한국의 전력 구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매듭의 문제다. 석탄발전은 중앙과 지역, 산업과 정치, 과거와 미래를 묶어둔 복합적 결속체다. 그 매듭이 풀리지 않는 한, 탄소감축 기술은 근본적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값싼 전기의 신화...경제적 착시의 비용
발전 5사는 “석탄은 싸고 안정적이다”라는 논리를 여전히 고수한다. 발전단가만 보면 석탄이 LNG보다 낮고, 재생에너지보다 예측 가능한 전력을 공급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가격’이라는 좁은 창문으로 세상을 보는 착시다. ‘싼값’은 회계장부 바깥의 현실을 외면한 계산이기 때문이다.
한국환경연구원과 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석탄발전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건강피해의 사회적 비용은 연간 16조 원에 달한다. 미세먼지(PM2.5)는 매년 수천 명의 조기사망을 초래하고, 의료비·생산성 손실만으로도 전력요금 절감분을 초과한다. 여기에 홍수, 폭염, 산불 등 기후재난의 복구비용까지 더하면 ‘값싼 전기’는 오히려 가장 비싼 사회적 청구서로 변한다.
이는 전형적인 외부불경제(externality)다. 시장은 오염의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국민 세금과 미래세대가 그 부담을 대신 지불한다. OECD와 IMF는 한국 전력시장을 구조적 시장 실패 사례로 지목한 바 있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여전히 정치적 통제 아래 있다. 정부는 물가 상승 부담을 이유로 요금 인상을 미루고, 그 결과 한전은 2023년 9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 공백은 세금과 채권으로 메워진다. 국민은 전기요금을 낸 뒤 다시 세금으로 한전의 적자를 부담하는 ‘이중 납부자’가 되는 셈이다. 국제기구와 독립 연구기관은 한국 전력시장을 ‘외부비용을 내재화하지 못한 시장 실패’ 사례로 보고 있다.
단기적인 요금 동결은 정치적으로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한다. 에너지 가격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면 기업은 효율 투자를 미루고, 소비자는 절약 유인을 잃는다. ‘값싼 전기’의 착시가 장기화될수록 한국은 더 비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탄소국경조정제(CBAM)가 시행되면, 석탄전력에 의존한 산업군은 수출 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다. 산업용 전력 1MWh당 평균 배출량은 450kgCO₂, EU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탄소가 포함된 가격이 새로운 경쟁력의 기준이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단가가 80% 이상 하락했다고 분석한다. 2024년 현재 일부 한국 지역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의 균등화발전단가(LCOE)가 석탄보다 낮다. 그러나 송전망 확충 지연과 제도 설계의 불평등으로 재생에너지는 여전히 시장 진입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값싼 전기’의 신화는 단순한 정책 오류가 아니다. 단기적 물가 안정과 산업계의 이익을 우선시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그 결과, 국민은 값싼 전기요금을 얻는 대신, 미세먼지와 폭염, 세금으로 치르는 더 큰 대가를 감내하고 있다.
제도의 덫...배출권의 보호막과 정책의 관성
석탄의 늪을 떠받치는 또 다른 축은 제도의 비대칭성이다. 배출권거래제(ETS)는 발전부문에 대규모 무상할당을 오랫동안 허용해왔다. “오염자 부담” 원칙은 선언에 그쳤고, 감축 압력은 느슨했다.
여기에 금융의 그림자도 겹친다. 한국은 G20 국가 중 여전히 해외 석탄 프로젝트에 공적 금융을 제공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파리협정의 목표와 충돌하는 투자구조를 유지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기후 리스크 보유국’으로 평가받는다. 이 구조 속에서 기업은 탄소를 배출할수록 단기 이익을 얻고, 그 비용은 사회가 나눠 짊어진다.
기술의 경계...과학기술적 전환의 난관
전환의 해법으로 제시되는 기술은 매력적이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 비중은 10%를 넘지 못한다. 주민수용성, 인허가 갈등, 경관 문제 등이 곳곳에서 전환 속도를 제약한다. 지역 주민은 환경 피해와 일자리 상실 사이에서 불안을 느낀다.
미래 기술로 기대되는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수소·암모니아 혼소(섞어 태우기)는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IPCC 기반 연구에 따르면 CCUS 상용화가 지연될 경우 오히려 탄소 잠금(lock-in, 탄소포집·저장)이 심화될 위험이 있다. 기술은 구원의 열쇠이자 새로운 의존의 고리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디지털 전환 속도 역시 더디다. 선진국들이 AI·IoT·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해 전력망을 실시간 최적화하는 동안, 한국의 많은 발전소들은 여전히 수동제어 체계에 머물러 있다. 이로 인해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석탄과 LNG에 의존하는 퇴행적 순환이 이어진다.
글로벌 시계와의 불일치...기후리더십의 공백
유럽연합은 2030년대 초반까지 석탄 퇴출을 공식화했고,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에너지 투자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신규 석탄 설비를 일부 허용하고 있으며, 기존 발전소의 조기 폐쇄 계획조차 명확하지 않다.
국제 보고서들은 한국을 ‘후진국형 석탄경로’로 분류한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탄소집약적 기업은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ESG 채권 발행에서도 ‘지속가능성’ 라벨을 잃는다. 탈석탄은 더 이상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조건이다.
전력의 심장이 다시 뛰기 위해
한국의 전력 산업은 오랫동안 국가 성장의 엔진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엔진은 기후위기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심장을 요구받고 있다. 2025년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8℃ 상승, 폭염일수는 1970년대의 세 배로 늘었다.
에너지 부문이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87%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전력 전환 없이는 그 어떤 기후정책도 실효성을 가질 수 없다. 발전 5사는 국가 전력의 절반을 책임질 뿐 아니라, 한국 산업의 탈탄소 속도를 결정짓는 핵심적 위치에 있다. 지금의 결정이 향후 30년의 산업지형을 좌우한다.
석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지역 고용과 산업 생태계의 충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결단을 미루는 대가가 더 크다. 탄소국경조정제, 글로벌 녹색금융 체계, 탄소 프리미엄의 확대는 전환 지연의 비용을 눈덩이처럼 키운다.
세계는 이미 새로운 질서로 이동 중이다. 유럽연합은 석탄 퇴출을 앞당기고, 미국과 일본은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청정수소 인프라에 거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력의 전환은 경제의 생존 전략이다. 지연된 결단은 곧 구조적 손실이다. 발전 5사는 ‘값싼 전기’ 시대를 넘어, ‘지속가능한 전기’ 시대를 설계해야 한다. 그 심장은 석탄의 열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효율·분산형 에너지·기술 혁신·국민의 신뢰로 다시 뛰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한국 전력 산업에 단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미래의 경쟁력은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질 것인가.” 그 답을 내리는 주체는 발전 5사 자신이다.
뉴스펭귄은 한국 온실가스의 구조적 현실과 ‘기후악당’으로 불린 국가의 민낯을 추적하는 연재 기획을 이어간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퇴행적 기후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오명을 뒤집어쓴 한국.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본 기획은 전력 산업의 구조를 해부하고, 탄소 배출의 사슬 속에 얽힌 기업과 제도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직면해야 할 불편한 진실을 기록한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