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호랑이 만난다? '설산의 유령' 눈표범의 위기

2025-10-23     이한 기자

‘설산의 유령’ 또는 ‘고산의 곡예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눈표범 개체수가 최근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로 고산지대 서식 환경이 달라지고 최상위 포식자와 인간의 활동이 산악 지대 깊숙한 곳까지 확장되면서 이들을 위협하는 탓이다. 눈표범은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속 빌런 캐릭터 타이렁으로 일반인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산맥 고지대에서 포착된 눈표범 (사진 세계자연기금 제공 ©Sascha Fonseca, WWF-UK)/뉴스펭귄

10월 23일은 2024년 유엔 총회가 공식 지정한 ‘세계 눈표범의 날’이다. 눈표범은 중앙아시아와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사는 포식자로 ‘설산의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인적이 드문 고산 지대에 서식하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연구와 관찰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 때문에 보전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쉽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기후위기(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으로 눈표범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구가열화에 따른 온도 상승은 히말라야 지역에서 2070년까지 최대 23%의 서식지를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주요 먹이 종의 분포가 이동하거나 감소해 먹이망과 번식지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눈표범은 해발 3,000~4,500m의 험준한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서식하며 추위와 절벽, 희박한 산소 속에서 산다. 등에 약 5cm, 복부에 최대 12cm에 달하는 털로 체온을 유지하고, 길이 1m에 이르는 꼬리가 차가운 바람 속에서 담요처럼 몸을 감싸주며 보온 역할도 한다. 

짧은 앞다리와 강한 뒷다리로 몸길이의 6배(약 9m)까지 도약할 수 있어 절벽과 협곡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바닥의 두꺼운 털이 마치 천연 눈신처럼 작용해 눈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 은밀하고 민첩한 특성 덕분에 다른 대형 고양잇과 동물보다 조용하게 사냥하며, 사람의 눈에 좀처럼 띄지 않는 특성 때문에 '설산의 유령'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좁은 암벽 사이를 누비며 먹이를 찾는 모습 때문에 ‘고산의 곡예사’로 불리기도 한다. 

달라진 날씨에 북상한 호랑이가 눈표범 영역 침범? 

하지만 이들은 최근 위기에 놓였다. 한때 중앙아시아와 히말라야 전역을 누비던 눈표범의 서식지는 이제 12개국의 일부 고산 지역으로 축소됐다. WWF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눈표범의 개체 수는 약 4,000~6,500마리로 추정되며, IUCN 적색목록 '취약' 등급으로 분류된다.

GPS 위성 추적 목걸이를 착용한 눈표범 (사진 세계자연기금 ©DNPWC, WWF Nepal)/뉴스펭귄

이들의 생명과 서식지를 위협하는 요인은 기후위기(기후변화)다. 이들은 고산지대에 사는 습성상 사냥감이 드물어 개체당 활동영역이 넓다. 척박한 고산지대나 고원은 호랑이 또는 사자 같은 대형 포식자가 서식하지 않아 눈표범은 서식지 내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다. 하지만 최근 지구가열화로 다른 포식자 또는 경쟁관계에 놓인 동물들의 서식지가 고지대로 올라오면서 눈표범에게 위협 요인이 되는 사례도 있다.

해외 환경 뉴스 플랫폼 MONGABAY가 2023년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달라진 날씨로 인해 호랑이 등 포식자가 적절한 서식지를 찾아 점점 더 북쪽으로 밀려나면서 눈표범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실제 고지대에서 활동 영역이 겹치는 경우도 발견됐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네팔 동부 해발 3000미터 이상 지점 눈표범 서식지에서 호랑이가 관찰된 사례도 있다. 다만, 호랑이가 고지대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거나 고지대로 서식지를 다수 옮겼다는 연구 결과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기후위기와 인간 활동으로 서식지 위협 

눈표범의 생존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이자 가장 많은 사례를 차지하는 건 바로 인간이다. 아름다운 털과 뼈, 신체 부위 등이 불법 거래 대상이 되는 사례가 있고 일부는 장식품이나 전통 의학 재료로 사용된다. 가축을 사냥한 눈표범이 보복성 살해를 당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WWF 조사에 따르면, 연간 약 220~450마리의 눈표범이 인간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광산 개발, 수력 발전 및 관광 인프라 확충을 위한 도로 건설 등으로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며 단절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인간 활동이 산악 지대 깊숙한 곳까지 확장되면서 눈표범의 이동 경로가 차단되고, 자연 먹이인 푸른양과 아이벡스 등의 개체 수가 감소해 먹이 부족 현상이 심화되는 것도 위협 요인이다. 

눈표범의 감소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전반의 문제다. WWF는 “눈표범은 고산 생태계 핵심 종이자, 생태계 건강을 보여주는 지표종”이라고 전제하면서 “눈표범이 사라지면 초식동물의 개체 수가 급증해 초원과 산림이 훼손되고, 이에 의존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눈표범의 위기는 곧 고산 생태계 전체의 위기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