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구조센터 예산·인력 부족 심각..."수의사 혼자 버티는 곳도"
국가가 지정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가 늘어나는 구조 수요에 비해 예산과 인력 확보는 사실상 멈춰선 상태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운영비는 5년째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수의사 인력 역시 법정 기준조차 채울 수 없는 현실에 놓인 센터도 여럿이다. 구조 건수는 늘어나지만 인력과 예산은 제자리걸음이 이어지면서 구조율과 생존율 모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야생동물 구조 인식 늘었지만, 예산은 5년 '동결'
국내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는 2000년대 초반 제도 도입 논의가 시작돼 2004년 충남 서천군에 첫 센터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운영이 시작됐다. 이후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각 시도 중심 지방 구조센터가 단계적으로 설치됐고, 2011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제도가 공식화됐다. 현재는 전국 17개 시도에 총 17개소의 구조센터가 야생동물구조관리를 전담하고 있으며 지자체·대학·민간기관이 지정 또는 위탁 형태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제도 도입 이후 2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예산과 인력 구조는 초기 단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늘어나는 구조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2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혜경 의원(진보당·비례대표)이 기후부에너지환경부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운영비 예산은 2021년 대비 2022년 한 차례 소폭 증액된 이후 올해까지 3년째 26억7천만 원 수준에서 멈춰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비는 전체 예산 100% 중 국비 30%, 지방비 70%로 지급되고 있다. 지정기관과 위탁기관 여부에 따라 소폭 차이는 있지만, 전국 17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모두 비슷한 수준의 예산으로 5년간 운영돼 왔다. 2021년 국비 총액은 24억600만 원, 2022년 26억7000만 원으로 소폭 증가한 뒤 2023년과 2024년 26억7800만 원, 2025년 26억7700만 원으로 사실상 변동이 없는 정체 상태다.
최소 인력 3명인데...일부 지역은 미달, "주말, 24시간 출동 불가능"
기후에너지환경부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운영 지침’에 따르면 야생동물구조센터 전문 인력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진료수의사 최소 3인, 질병연구자 최소 1인, 구조 및 관리업무 담당 일반직 최소 3인이 필수 인력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올해 8월 기준 전국 수의사 인력은 총 53명에 불과하며, 최소 기준에도 미달하는 지역이 여럿이다. 경북은 수의사 1명, 전남은 2명에 그쳤으며, 경기(5명), 부산·경남·전북(4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3명인 최소 인력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말, 야간 신고 접수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 가깝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주말 또는 야간에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신고가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구조·치료 건수는 2021년 전체 1만7545건에서 2024년 2만1570건(2025년 8월 기준 1만7194건)으로 4천 건 이상 증가했지만, 인력과 예산은 제자리 수준이다. 이는 열악한 인력 상황 속에서도 구조·치료 실적이 일정 수준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이자, 동시에 더 이상의 실적 확대가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내포한 수치다. 인력당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야생동물 범위가 정해져 있어서다.
지역별 실적을 보면 인력 규모에 따른 격차가 뚜렷한 경향이 있다. 경기·충남·충북·서울 등 전체 인력 10명 이상인 지역은 최근 5년간 구조·치료 건수가 7천~1만2천 건 수준으로 상위권을 유지했다. 반면 경북·전남·강원 등 인력이 적은 지역은 3천 건 이하로 비교적 낮았고, 폐사율은 전국 평균(60.1%)을 웃돌았다.
방사율에서도 같은 흐름을 보인다. 수의사가 3명 이상인 제주(45.4%), 부산(41.2%), 경남(41.0%) 등은 방사율이 전국 평균(35.7%)보다 높았던 반면, 수의사가 1명인 경북은 방사율 27.4%, 폐사율 67.8%로 나타났다.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경기·부산·경남·전북은 방사율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지만, 전남(23.5%)과 경북(27.4%)은 방사율이 낮고 폐사율이 높았다.
"인력 충원만으로 해결될 문제 아냐...일반 동물병원보다 못한 처우"
현장 관계자들은 이 같은 상황이 단순한 수의사 충원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정하고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거나 대학·민간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별 인식과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과 인력 수준에 편차가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자체는 야생동물을 '민원 대상'으로 인식해 구조 및 치료보다는 단순 처리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국가 생물다양성 보전의 주무 부처로, 야생동물 보호체계를 강화할 책임이 있다는 존재 이유가 있어서다.
경북야생동물구조센터 관계자는 "수의사 1명이 행정처리부터 구조, 치료까지 전 과정을 혼자 맡고 있다"며 "경북은 지리적으로도 위탁 기관과 거리가 멀어 인력 충원이 쉽지 않고, 수의사 배치도 주요 부서로 인식되지 않아 지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23개 경북시·군과 동물협회 등 도움을 받아 행정 구조를 일차적으로 처리한 뒤에야 센터에서 본격 치료에 들어가는 상황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6급 기관 수준인 조직을 5급으로 확대해 예산과 인력을 함께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A 야생동물구조센터 관계자는 "선호 지역과 보수 격차, 주말·야간 근무 부담 등이 겹치면서 수의사들이 2~3년 안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수의사가 구조, 방사 관리, 사육장 청소까지 전담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구조 필요 인식이 높아지면서 구조 건수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인 문제와 운영비는 그대로 유지돼 겨우 버티는 실정이다. 구조·치료·방사 실적이 5년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관계자는 "야생동물구조센터가 만들어질 당시 초창기에는 홍보가 부족해 구조 건수가 적었지만 지금은 국민 인식이 높아지면서 구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인력 2~3명을 더 충원해도 감당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경남야생동물구조센터 관계자 역시 "수의사가 부족해 간호사나 재활관리사가 치료를 보조하는 경우도 있다"며 "예산심의 과정에서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낮아 인건비 확보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의사 지원율이 낮고, 연령대도 고령층에 집중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처우와 보수에서 일반 동물병원과 큰 격차가 나 전문 인력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관계자는 "일반 동물병원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인데 처우가 따라주지 않아 인력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자체별 분산되는 인식...국가 책임 구조로 전환해야"
지자체별 다른 인식과 환경으로 분산되는 문제를 국가가 더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야생동물 보호는 지자체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주도하고, 최소한 일부 센터는 기후부가 100% 예산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부 역시 이 문제를 공감했다.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인력 채용은 지자체 소관이라 중앙정부 개입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센터가 한 지역에 한 곳뿐인 상황에서 공백이 생기면 해당 지역 전체의 야생동물 구조 체계가 멈추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예산과 인력 지원이 정체된 상태에서 구조 수요만 증가하는 상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국가 차원의 예산 및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혜경 의원은 “수의사가 행정업무와 구조·치료까지 모두 감당하는 현실에서 야생동물 생존율을 높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구조체계를 지자체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핵심 인력과 운영 예산을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최소한 한 지역에 한 명의 수의사도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야생동물은 지자체 민원 대상이 아니라 생물다양성 보전의 주체"라며 "구조센터가 지금처럼 버티는 기관으로만 남지 않도록 정부의 역할 확대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