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조 달러 필요한데...글로벌 기후 목표 '속도전' 가능할까?
2024년 전 세계 설치된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국제사회가 합의한 2030년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투자 확대 ▲전력망 확충 ▲공급망 강화가 병목으로 지목됐다. 전문가들은 "속도만으론 부족하다"며 인프라와 정책 총력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COP30 브라질 의장국, 글로벌재생에너지연합(GRA)은 14일(현지시각) <Delivering on the UAE Consensus: Tracking progress toward tripling renewable energy capacity and doubling energy efficiency by 2030>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COP28에서 합의된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 이행 현황을 점검했다. COP28의 'UAE Consensus'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현재 3배 수준인 11.2테라와트(TW)로 늘리고, 에너지 효율 개선 속도를 2배로 높이자는 합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에서 새로 설치된 재생에너지 설비는 582기가와트(GW)로,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기가와트(GW)는 발전소 용량을 뜻하는 단위로, 1GW는 원전 1기와 비슷한 규모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582GW는 대형 원전 약 580기를 새로 짓는 것과 맞먹는 전력 생산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COP28에서 합의한 2030년 목표치인 11.2TW(1만1200GW)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매년 1122GW씩 설치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는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셈이다. 현재 각국이 온실가스 국가감축목표(NDC)에 반영한 설치 계획은 5.8TW, 국가정책 수준으로 봐도 7.4TW에 불과해 목표와의 격차가 최소 3.8TW에 달한다.
효율 개선 1% vs 목표 4%…남은 5년은 '속도전'
설비 확대만큼 중요한 것이 효율 개선으로 꼽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2024년 에너지 효율성은 1% 개선되는 데 그쳤다. 같은 에너지를 쓰더라도 얼마나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1%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건물 단열, 전기차 전환, 산업 공정 효율화 등이 대표적이다.
2030년까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년 4%씩 효율을 높여야 하지만, 현재 속도로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앞으로는 매년 5% 이상 개선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게 보고서 진단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금 규모도 막대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에너지 효율, 저장 설비 등에 필요한 총 투자액은 2025~2030년 사이 약 29~30조 달러, 연간으로는 약 5조 달러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재생에너지 설비만 놓고 보면 연간 1.44조 달러가 필요하다. 이는 2024년에 실제 투입된 6240억 달러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풍력·수력·바이오에너지 부문은 현재보다 4~6배의 투자가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자금 조달 능력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자금 조달 비용이 선진국보다 2~5배 높아 투자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더라도 전력을 실어 나를 길이 없다면 발전량은 활용되지 못한다. 보고서는 전력망 확충이 재생에너지 전환의 핵심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2025~2030년 사이 전력망 강화와 에너지 저장 확대에 필요한 자금은 연 7910억~9120억 달러 수준이며, 이 중 약 6710억 달러는 전력망 확충에 집중돼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전력망뿐만 아니라 배터리 저장장치 등 유연성 자원도 필수적이라는 해석이다.
태양광, 풍력, 배터리, 수소 설비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제조 기반과 국제 공급망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 과제로 꼽혔다. 보고서는 G20 국가가 2030년 전 세계 재생에너지의 8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주요국의 정책 리더십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G7 선진국에는 기후금융 확대 책임도 부여됐다. COP29에서 합의된 새로운 기후금융 목표(NCQG)인 연 3000억 달러를 지키고, 이를 1.3조 달러 규모로 확대하는 것도 핵심 과제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설치 속도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며 ▲투자 확대 ▲인프라 강화 ▲공급망 안정 ▲정책 상향 ▲국제 협력 강화를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오는 11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COP30은 이 병목을 해소할 수 있는 국제 합의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청정에너지 혁명은 이미 시작됐지만 1.5℃ 목표 시간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며 정책과 투자의 속도전을 촉구했다. 프란체스코 라 카메라(Francesco La Camera) IRENA 사무총장은 "신기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력망 현대화와 공급망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벤 백웰(Ben Backwell) GRA 의장은 "전환 75%를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 정부가 장기 계획과 인프라 투자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