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적응 계획 그저 방향 뿐...직접 활용 가능한 가이드 없어”

[기후·환경 국정과제 점검 ④] 국가 기후적응 역량 강화

2025-10-02     정도영 기자

기후에너지환경부(전 환경부)가 ‘국가 기후적응 역량 강화’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기후위험 영향평가 체계를 구축하고, 도시 기후 탄력성을 높이며,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환경단체에서는 “방향성은 기존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시민이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 정부 123대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국가 기후적응 역량 강화'가 제시됐다. 기존 논의에서 발전된 내용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기후부가 지난 달 16일 발표한 주요 내용은 △과학적 기후변화 감시·예측 △기후위험 영향평가 △국가 인프라 대전환 △도시 기후 탄력성 제고 △사회 적응력 강화 등이다.

황정화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국정과제가 제3차 국가기후위기적응강화대책(2023~2025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방향성에 대한 언급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세부 방안이 이번에는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측은 곧 대처 아냐”

기후부는 “과학적 기후변화 감시·예측 시스템”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위성 관측과 국가 예측시스템을 통해 1개월~10년 단위 전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황 연구원은 “예측이 곧 대처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과학적 관측 자료 축적도 중요하지만, 시민이 그런 정보를 이해하고 자기 지역 위험을 판단할 수 있도록 가공·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후변화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형태와 속도로 닥칠 수 있다. 정확한 예측만으로는 대비가 불가능하며, 예측 밖의 위험에도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적응 역량이 강화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후위험 평가모델, “지체되면 피해 커질 수 있어”

기후부는 “국가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와 사회·경제적 영향을 통합 평가하는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황 연구원은 “도시 개발이나 주거지 확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모델 구축이 늦어지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재난 피해 복구를 단순히 원상복귀로 여겼지만, 이제는 재발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예컨대 산불 위험 지역이라면 주거 이격거리를 넓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프라 전환과 사회적 대응

기후부는 철도·항만 등 국가 인프라 설계 기준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황 연구원은 “인프라 안전성 강화는 당연하지만, 예측 범위를 벗어난 기후재난에 직면했을 때 사회가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스팔트가 녹아 교통이 마비되거나 통신 장애가 생길 수 있다”며 “재택근무 의무화, 기후 휴가, 실외 노동 금지 등 소득 감소 없는 대체 제도가 사회적 적응 역량의 중요한 축”이라고 설명했다.

도시 차원의 구체성 부족

기후부는 녹색공간 확충과 자연환경 복원으로 도시별 대응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황 연구원은 “도시 차원의 구체적 대응 방안이 부족하다”며 “현재도 침수 지도가 있지만, 시민들이 그것만 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를 단순 제공하는 것에서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며 “침수 위험 지역의 주거 제한, 반지하 임대 금지 같은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정 취약계층 아닌 모두의 문제

기후부는 취약계층 맞춤형 인프라 제공을 강조했지만, 황 연구원은 “특정 계층만 취약한 게 아니다. 기후재난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폭염기에 전력 사용이 늘어나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주택마다 태양광을 보급하는 방식은 감축과 동시에 적응 역량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축과 적응, 함께 가야

일각에서는 적응보다 온실가스 감축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황 연구원은 “파리협약에서도 감축과 적응은 동등하게 강조된다”며 “이미 기후변화를 완전히 막을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둘 다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어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잔여량 때문에 온도 상승은 계속된다”며 “숲 같은 흡수원은 감축과 적응 모두에 중요하다. 감축을 이유로 적응을 뒤로 미루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활용 가능한 정보와 탄력적 계획 필요”

황 연구원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도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세운 계획을 이행했는지만 평가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정보를 시민이 이해하고 행동 변화로 이어갈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한다”며 “이를 뒷받침할 가이드라인과 교육, 역량 평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4대강 재자연화,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 등을 포함한 기후·환경 분야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탈탄소 문명으로 전환해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취지다. 환경부는 이에 따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전략을 수립하고 탄소중립산업법을 제정해 국내 산업의 탄소 경쟁력도 강화한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주관하는 기후위기 분야 국정과제에 대해 환경단체와 에너지·생태 분야 전문가들이 내놓은 평가를 4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