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 연차 30년...재활용 선별 노동자들의 생생한 증언

“더위·악취·벌레와 사투...기후위기 속 선별 노동” 반복되는 산재 속 방치된 폐기물 처리시설 폐기물 처리 노동자 안전관리 체계화 절실

2025-10-02     곽은영 기자
'재활용 선별원 - 자원순환의 최전선에 선 여성노동자' 토크 콘서트 현장.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지난 9월 24일 저녁 7시, 재활용 선별 노동자들의 목소리 듣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여성환경연대가 개최한 ‘재활용 선별원: 자원순환의 최전선에 선 여성노동자’ 토크 콘서트에는 수도권 재활용 선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4명이 등장했다. 경력 도합 30년. 도시의 청결과 자원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 노동이지만, 대개 시민들의 시야 밖에 있는 그들의 진짜 현장 이야기가 오갔다.

참석한 이들은 하남환경기초시설의 함순이 선별원(12년 차), 유지연 선별원(3년 차), 구리자원회수시설의 찬트라 선별원(12년 차), 최유은 선별원(3년 차). 그들의 증언은 노동의 고충을 넘어 기후재난 시대의 노동안전, 폐기물 정책의 구조적 문제, 시민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구리자원회수시설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최유은 선별원이 폭염 속 현장 노동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점점 더워지는 여름...악취·구더기와 싸우는 시간

올해 여름은 기록적 폭염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46일 동안 가동되는 사상 초유의 여름이었다. 폭염의 그림자는 가장 취약한 노동 현장에서 더 짙게 드리워졌다.

경력단절 이후 지인의 추천으로 구리자원회수시설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최유은 선별원은 “폐기물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내다 보면 격한 운동을 할 때처럼 땀이 나고 숨이 가쁘다. 여름에는 높은 기온으로 쓰레기가 부패해 악취가 상당하다. 구더기, 파리 등 벌레들과의 사투도 벌어진다”고 말했다. 

하남환경기초시설에서 근무하는 함순이 선별원 역시 “지하 25m에 있는 시설이라 환기가 잘되지 않고 여름엔 더 후덥지근하다. 머리에 손수건을 두르고 일하는데 한 타임 일하고 나면 수건이 땀에 전부 젖어버린다. 안전모에 마스크까지 쓰면 머리에 땀이 줄줄 흐른다”며 한여름 깊은 지하에서 이뤄지는 선별 노동의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했다. 

장마철에는 비에 젖은 폐기물이 반입되고 바닥이 습해져 안전화를 신어도 미끄러워 낙상의 위험이 커진다고 답했다. 그들의 증언은 단순히 불편함의 차원을 넘어 기후위기 속 폭염과 싸우며 위험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선별 노동 현장을 단편적으로 전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산업재해 근절을 위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조명된 것처럼, 자원회수시설을 포함한 재활용 선별장은 여전히 악취와 동물 사체, 주삿바늘 등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로 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재활용 선별원이 직접 제공한 현장 사진. 왼쪽부터 씻지 않고 그냥 버려진 배달 용기가 폐기물에 섞여 있는 모습, 동물 사체가 쓰레기 속에 그대로 버려진 모습. 특히 이렇게 버려진 동물사체는 손으로 직접 선별 작업을 하는 선별원들에게 큰 트라우마가 된다. (사진 여성환경연대)/뉴스펭귄

‘비용 절감’ 이유로 보호구 지급 안 돼...안전기준 마련 시급

열악한 환경은 장비 부족에서도 드러났다. 현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면장갑과 반 코팅 장갑(목장갑)을 착용하는데, 하루에 수백~수천 개의 폐기물을 분류하면 금세 새까맣게 오염된다. 

12년차 선별원으로 일하고 있는 찬트라는 “예전에는 장갑을 일주일에 1~2개만 지급하고 (위탁업체는) ‘빨아 쓰라’라고 얘기하니 어쩔 수 없이 세탁해서 사용했다. 과거에는 토시와 마스크도 지급되지 않았다. 왜 지급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돈이 없다’고 말하며 아껴 쓰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현재는 업체가 변경되고 노동조합의 요구로 장갑과 안전모 등이 지급되도록 상황이 개선되었지만, 선별 작업에 필수적인 기본적 보호구 지급이 노동자 요구에도 뒤늦게 보장되는 등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지하화된 폐기물 처리시설, 화재·사고 대피에 취약

최근 수도권과 광역시는 주민 민원과 반발을 줄이겠다며 폐기물 처리시설의 지하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원회수시설 지하 이전 계획을 발표한 수원시는 주민 대표단과 지난 6월 12일, 하남기초환경시설을 견학했다. 울산시의회는 지난 9월 9일, 정책연구용역 중간 보고회를 개최하며 “폐기물 처리시설 지하화는 주민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선별원들의 증언은 지하화가 노동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외관상 깨끗한 공원형 지하화 시설은 시민들의 반발을 줄이는 미화 전략일 수는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폐기물 처리시설은 폐기물의 특성상 화재와 폭발 사고가 빈번한데도 지하화와 같은 구조적 변화가 노동자의 위험을 가중하고 있다. 

함순이 선별원은 지하 8층까지 내려가야 하는 현실을 예로 들며 “소방 훈련을 하지만, 막상 불이 나면 지하 8층에서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는 게 가능할까? 엘리베이터 사용도 불가능할 텐데 응급 상황에서 들것으로 환자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시민들이 공원에 견학을 오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막상 지하에서 일하는 우리는 위험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지하화된 폐기물 처리시설의 잠재된 위험을 지적했다. 외관상 깨끗함과 미화를 중심에 둔 지하화가 아닌, 모두의 안전을 고려한 갈등 해결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얘기되는 이유다. 

유지연 선별원이 분리배출 단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재활용은 도시 돌보는 노동”

한편, 토크 콘서트에 참석한 한 시민은 “제조업 공장에서도 실내 공기가 관리되는데 폐기물 처리시설에서 왜 여전히 악취와 먼지가 방치되고 있는가”라며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 있는 안전관리를 당부했다. 

다른 참가자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중 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5%나 된다. 선별원의 노동이 없으면 도시가 멈춘다는 점에서 재활용 선별은 자원순환을 넘어 도시를 돌보는 활동이라고 느꼈다”고 재활용 노동의 의미를 짚으며 “선별원들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원순환이 되며 탄소가 감축된다는 자부심을 느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유지연 선별원은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재활용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선별원으로 일하면서 스스로부터 제대로 분리배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를 잘 분리해서 버려달라고 강조한다”며 시민 인식의 변화 없이는 제도 개선 역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짚었다. 

이번 토크 콘서트를 개최한 여성환경연대는 단순한 현장 개선을 넘어 국가·지자체 차원의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폐기물처리 노동 전 단계에 걸친 보호구 및 안전기준 마련, 폐기물처리시설 안전성 평가 및 현장 감독 강화,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 도입, 생활폐기물 처리시설 지자체 직접 운영 및 직고용 전환을 요구하며 폐기물처리 노동자의 안전기준을 강화하기 위한 시민들의 서명을 모아 국회에 전달할 계획을 밝혔다.

폐기물 처리시설의 지하화가 미화된 도시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시민의 눈을 속이는 대가로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이는 ‘환경정책’이 아니라 ‘위험전가’에 불과하다. 도시의 숨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도와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자원순환 사회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