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탄소시장 90% 가짜...그린워싱 부추길 뿐"

2025-09-26     정도영 기자

‘자발적 탄소시장(Voluntary Carbon Market, VCM)’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가 활성화 대책 발표를 예고했고 금융계도 이에 호응하고 있지만 시장이 안착하기 위해선 ‘그린워싱’ 지적을 떨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가 논의되는 가운데, 그린워싱 지적도 거세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정부가 기후테크 기업 육성을 위한 자발적 탄소시장 조성에 본격 착수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기업이나 개인이 법적 의무 없이도 스스로 온실가스를 줄이고, 이를 인증받아 '탄소크레딧(감축 실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한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지난 8월 간담회에서 "자발적 탄소시장 거래소를 신설해 다양한 탄소크레딧이 거래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올해 하반기 중 '한국형 탄소크레딧 활성화 대책'을 공개할 예정이다. 

한국거래소가 17일 글로벌 탄소크레딧 거래소 엑스팬시브(Xpansiv)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한국거래소)

금융계도 이 흐름에 발을 맞추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17일 글로벌 탄소크레딧 거래소인 미국 엑스팬시브(Xpansiv)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NH투자증권도 23일 같은 업체와 탄소크레딧 사업 협약을 맺었다.

환경단체 플랜 1.5가 발간한 보고서. 자발적 탄소시장이 기업들의 그린워싱에 이용된다고 분석했다. (사진 플랜 1.5 보고서 캡처)

환경단체 "자발적 탄소시장 탄소 감축량은 0에 수렴"

하지만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의 그린워싱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환경단체 '플랜 1.5'는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 '그린워싱의 시작: 국내 기업의 자발적 탄소시장 활용 사례'에서 자발적 탄소크레딧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영국 가디언 지의 2023년 보도를 인용해 "자발적 탄소시장 크레딧 발행량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열대우림 산림보전 프로젝트를 조사한 결과, 약 90%의 크레딧이 실제로는 감축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독일 오코-인스티튜트(Öko Institut)가 유럽연합에 제출한 보고서를 인용해 "분석 대상 CDM 프로젝트 등 약 85%가 추가성이 결여되었거나 감축량이 과대 추정되었으며, 약 2%의 프로젝트만이 제대로 된 사업에 해당했다"고 분석했다. 

추가성은 탄소크레딧을 만들어낸 활동이 '새롭게 추가된' 탄소 감축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탄소 배출이 더 많았을 것인가?’를 따지는 것으로, 어차피 진행될 예정이던 사업을 크레딧으로 인정받으면 실제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보고서는 "국내 산업계와 정부를 중심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고 산업계의 그린워싱을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다"며 "자발적 탄소시장이 국내에서 계속 논의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배출권거래제 대비 저렴하게 크레딧 구매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기업 홍보에 손쉽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도입하면 배출권 품질, 가격 모두 떨어질 것"

권경락 플랜 1.5 활동가는 <뉴스펭귄>과의 인터뷰에서 "자발적 탄소시장은 감축 여부가 매우 불확실하고 검증이 어렵다. 낮은 가격으로 인해 기업들의 그린워싱에 이용될 소지가 높기 때문에 관련 제도를 도입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자발적’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국가나 유엔에서 공인해주는 감축실적이 아니다. 자격증으로 비유하자면 국가공인 자격증과 사설 자격증 같은 차이"라며 "국가가 하는 것보다 엄격성이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운영하는 현행 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하면 어떨까. 환경부 기후경제과장은 전기신문을 통해 자발적 탄소크레딧 품질이 향상될 수 있다는 취지로 답변한 바 있다. 권 활동가는 이에 대해서 "자발적 탄소크레딧의 품질과 배출권거래제 연계 여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반박하며 "불량 크레딧을 검증할 기준이 환경부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형 배출권거래제(K-ETS)’도 환경부 자체 기준 없이 UN 기준을 그대로 가져다 운영되는 실정이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거래되는 크레딧이 불량품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환경부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 연계가 아니라 환경부의 자체 판단기준 마련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규제시장인 배출권거래제와 자발적 탄소시장을 연계한 사례는 없다"며 "EU도 두 시장의 연계를 금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 활동가는 "환경부의 판단기준 도입 없이 두 시장을 연계하면 불량 크레딧들이 배출권거래제에 유입될 것이다. 지금도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 배출권 가격은 더 떨어지고,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기피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전세계적으로 투자 위축되고 있어"

권 활동가는 자발적 탄소시장의 글로벌 동향과 관련해서도 "전 세계적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거래되는 크레딧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베라(Verra) 이슈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큰 스캔들이었다. 이 일로 베라 CEO가 사임했고, 관련 검증 규정을 뜯어고치는 중"이라며 "그런데 아무리 잘 기준을 만들고 뜯어 고쳐도, 단기간에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자세한 통계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최근 해외에서도 베라사태 이후 투자가 크게 줄었다. 자발적 탄소시장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건 지금으로써는 틀린 말"이라며 "3-5년 전까지는 몰라도 지금은 시장이 위축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정부 부처 입장 확인되지 않아

그린워싱 우려에 대한 정부 부처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환경부, 한국거래소에 연락했으나 담당자 부재로 답변을 받지 못했다. 추후 관련 부처의 입장을 추가 취재할 예정이다.

한편 기재부 담당자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자발적 탄소크레딧 시장의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