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현의 기후과학] 2025년 한반도 폭염 리포트: 기후위기 시대의 경고장

2025-09-26     박치현 환경전문기자
국제 기후분석기관은 한국의 여름 평균기온이 평년 대비 +1.9℃ 상승했다고 밝혔다. 일본(2.1℃ 상승)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이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들어가며 : 뜨거움이 남긴 가을의 그림자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아침 공기는 제법 서늘해졌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한반도는 거대한 불가마였다. 2025년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더워도 너무 덥다”는 상투적 불평조차 입 밖에 낼 힘이 없을 정도였고, 도시는 밤에도 식지 않는 열섬 속에서 신음했다. 기후학자들이 수년 전부터 경고해 온 ‘뜨거운 미래’가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의 일상으로 우리 앞에 도래했다.

2025년 한반도 여름 폭염을 다양한 측면에서 해부한다. 단순한 수치 나열을 넘어, 기후학적 분석·사회적 충격·예측 가능한 미래를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기후변화 시대의 한국이 직면한 근본적 도전을 조명한다.

2025년 여름의 기후학적 진실

기상청은 2025년 여름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공식 기록했다. 전국 평균기온(6월 1일부터 8월 31일)은 25.7℃로, 1973년 전국 관측망 구축 이후 최고치다. 낮 기온은 쉽게 35℃를 넘어섰고, 서울의 7월 열대야 일수는 무려 22일에 달해 117년 만의 신기록을 세웠다. “더운 여름”의 차원을 넘어, 체계적 폭염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번 폭염의 특징은 조기 개시와 장기화였다. 6월 18일 강릉에서 첫 열대야가 관측된 것을 시작으로, 6월 19일에는 대전, 대구, 광주 등 12곳에서 "역대 가장 이른 열대야"가 기록됐다. 6월 27일부터는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폭염특보가 발효돼 29일에는 전국으로 확대됐다. 그 결과 7월 중순까지 서울은 22일 연속 열대야를 기록했다. 밤에도 식지 않는 도시는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지역별 편차도 뚜렷했다. 강원 영동과 영남지역은 7월 초부터 이미 고온 현상에 휩싸였다. 그리고 중순 이후 수도권과 호남으로 폭염이 확산되면서 사실상 전국적 규모의 폭염 띠가 형성됐다. 백두대간과 서해·동해 해양성 기류의 차이가 얽히며 만들어 낸 독특한 기후 패턴이었다.

역사적 폭염과의 비교

올여름 폭염을 이해하려면 1994년과 2018년, 그리고 직전 해인 2024년과의 비교가 필수적이다. 1994년은 평균기온 26.8℃, 폭염일수 23.9일로 여전히 “대폭염”의 상징처럼 언급된다. 2018년은 41.0℃라는 사상 최고 기온을 남겼지만, 상대적으로 지속성이 짧았다. 이에 비해 2025년의 최고기온(39.2℃)은 기록을 깨지는 못했지만 장기적 지속성과 폭염일수 면에서 “숨 막히는 체감 더위”를 만들어냈다.

1994년은 평균기온이 26.8℃로 높았지만, 폭염일수는 24일 수준이었다. 2018년은 홍천에서 41℃라는 극값을 남겼다. 그러나 짧았다. 2025년은 다르다. 지속성 있는 폭염, 전국적 확산이라는 두 축이 결합했다. 여름 내내 쌓여 간 열 축적량이 결국 사회 곳곳에 충격파를 퍼뜨렸다. 올해 더위는 순간적인 ‘찌는 여름’이 아니라 지속성과 확산성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 주었다.

지난 7월 초, 서울은 나흘 연속 37℃ 안팎의 폭염과 열대야를 경험했다. 열돔과 도시 열섬 효과가 결합된 결과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2025년 폭염의 과학적 배경

1. 기후변화의 직접적 영향

국제 기후분석기관은 한국의 여름 평균기온이 평년 대비 +1.9℃ 상승했다고 밝혔다. 일본(2.1℃ 상승)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이다. 

기후전환지수(CSI)는 92일 중 53일에서 2레벨 이상을 기록했다. 이는 기후변화가 폭염 확률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 동안 10년마다 +0.21℃씩 오르고 있다. 전 지구 평균보다 빠른 속도다.

2. 대기 위의 열돔, 아래에서 신음한 도시

올여름 한반도 상공에는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동시에 확장하는 ‘이중 열돔’이 형성됐다. 여기에 중국 내륙에서 유입된 건조한 열풍이 겹치며 ‘마른장마’가 이어졌다. 평년보다 강수량이 37% 적었던 7월, 대지는 마르고 하늘은 달아올랐다. 1939년, 1973년과 유사한 패턴이었다. 낮 동안의 강한 복사열이 쌓이며 고온 현상을 심화시켰다. 하천 유량은 급격히 감소했고, 도심 녹지의 열 완화 효과조차 제한됐다.

7월 중순엔 상황이 달라졌다. 수도권과 남부 지방에 시간당 100mm를 넘는 ‘물 폭탄’이 쏟아졌다. 도심 교통은 마비되고 수천억 원대의 재산 피해를 냈다. 특히 경남 산청과 합천에서는 수백 세대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농경지 수천 헥타르가 침수됐다. 

하지만 폭우가 물러가자 다시 폭염과 가뭄, 그리고 폭우가 교차하며 한반도의 일상은 ‘복합 재난’의 연속이었다.

폭염이 남긴 사회적 충격

1. 건강 위협

질병관리청이 집계한 8월 24일까지의 누적 온열질환자는 4,033명, 사망자는 26명에 달했다. 전년 동기간 대비 1.3배 증가한 규모로 “기후변화 시대 건강 리스크”의 경고음이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 나이 많은 노동자들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건설 현장과 물류 업계에서도 다수의 환자가 보고됐다.

2. 산업과 노동의 위기

2025년 8월 말 기준, 온열질환 산재 인정은 42건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5배 증가한 수치다. 산업현장에서는 3명의 노동자가 더위에 지쳐 목숨을 잃었다.

전체 온열질환자 2명 중 1명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특히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폭염 산재 발생이 두드러졌다. 정부는 체감온도 33℃ 이상 시 20분 이상 휴식을 의무화하는 등  안전 수칙을 강화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눈치 휴식"에 의존하는 등 제도와 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다.

3. 인프라와 에너지 수요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7월 8일 최대 전력 수요는 95.7기가와트(GW)로 7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겨울 최대전력 추월이라는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예년보다 빠르게 시작된 폭염이 전력 수요 급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도시 도로의 아스팔트는 물집이 잡혀 파손됐고, 철도 레일은 팽창으로 인한 지연 운행을 초래했다. 폭염이 단순한 기온 현상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충격파를 가하는 복합 재난임을 상기시켰다.

2025년 폭염의 특이성과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2025년은 역대 가장 더운 여름이었음에도 최고기온 기록(41.0℃, 2018년)을 넘어서지 못했다. 올해 폭염의 본질이 ‘극점의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 고온 상태’에 있음을 말해준다. 

기후학자들은 “에너지 누적량”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일정 기간 동안의 총 열 축적량이 2025년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에, 인체와 사회 기반시설이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서울의 7월 열대야 22일은 그 대표적 상징이다. 낮뿐 아니라 밤에도 쉴 틈을 주지 않는 기후는, 한 도시의 생리적 리듬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강릉에서는 최저기온이 30.3℃에 달하는 초열대야까지 기록되며, 더 이상 “밤은 쉰다”는 자연의 법칙이 통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꺼지지 않는 불길, 더 뜨거운 미래 앞에서

올여름 한반도 폭염은 기후변화 시대의 거대한 경고장이었다. 과학자들은 한반도의 폭염은 더 길고,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는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기 과학은 정직했고 우리는 그 충격 앞에서 불편한 진실과 마주했다.

2025년의 불가마는 지나갔다. 그러나 그 불길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기후변화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며, 대응하지 않는 사회는 스스로를 더 뜨겁게 태워 갈 뿐이다” 올여름이 남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