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에도 통계 없어" 재활용 선별장 노동자의 아픈 일상

[멸종위기로 읽는 에코페미니즘]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팀장 인터뷰 재활용 선별장은 산재 100% 현장...지워진 여성 노동자들 OECD 2위 분리배출? 현장은 위험과 무관심 속에 방치

2025-09-24     곽은영 기자
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팀 팀장 안현진 활동가.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재활용은 한국 사회에서 일상적 실천이자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우리가 분리배출한 폐기물이 실제로 어떻게 처리되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노동을 감당하고 있는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재활용 선별장 노동자들의 현실은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전국적으로 몇 명이 일하고 있는지조차 집계되지 않고, 통계와 제도적 보호 장치도 거의 마련돼 있지 않다. 분리수거율 세계 상위권을 자랑하지만, 이를 떠받치는 현장의 노동은 사회적 관심에서 지워져 왔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처음으로 재활용 선별원들의 노동안전 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발간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95%가 여성이고 그중 80% 이상이 50~60대 중장년층이었다. 대부분 경력단절을 겪은 후 생계 때문에 선별장으로 유입된 여성들이었다.

현장은 ‘산재 100% 사업장’이라 불릴 만큼 위험하다. 주삿바늘, 칼날, 오염물질에 찔리는 사고가 일상적이고, 보호 장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분진과 유해가스에 노출되면서도 환기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악취 민원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노동이 용역·파견 등 불안정 고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최저가 입찰제로 2~3년마다 재계약을 반복하면서 경력은 사라지고, 산재는 숨기게 되는 구조적 압박이 이어진다.

조사를 진행한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팀장은 재활용 선별원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두고 “가사노동처럼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지워진 노동’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순환을 떠받치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법적 안전기준 마련과 제도적 보호가 시급하다고 강조하는 그를 여성환경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 

재활용 선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사진 여성환경연대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Q.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두 달간 여성환경연대에서 ‘재활용 선별원 노동안전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처음 조사에 착수하게 된 계기나 사건이 있었나요?

재활용 선별장의 노동실태가 심각하며 지방 단위로 갈수록 이주 여성 노동자 수가 늘어나는데 상태 파악은 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재활용률을 높이는 문제에는 주목해 왔지만, 선별장의 노동실태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왜 빨대는 재활용이 안 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결국 작은 플라스틱은 손으로 분류해야 해 처리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국의 자원순환을 최종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사실도 문제의식을 키웠습니다. 여성-환경-노동이 교차하는 문제라면 여성환경연대에서 다뤄봐야 할 주제가 아닌가 생각했고, 문제를 파고들수록 놀라운 지점이 많았습니다. 

Q. 조사 과정에서 가장 놀라웠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노동자의 수조차 파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청소노동자는 통계가 있는데, 재활용 선별원은 직업 분류상 단순노무직으로 묶여 있어 전국에 몇 명이 일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환경부에도, 노동부에도 관련 통계가 없었죠.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방치된 겁니다.

결국 노동조합이 있는 일부 지자체 소속 업체만 조사할 수 있었는데, 2023년 기준 환경부 등록 재활용 업체는 6900여 개, 이 중 지자체 소속 생활폐기물 자원순환센터는 184개뿐이었습니다. 나머지 민간업체는 접근조차 어려웠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더 열악할 거라 짐작했습니다. 전체 생활쓰레기 발생량은 매일 집계되는데, 이를 처리하는 노동자가 몇 명인지조차 모른다는 건 ‘지워진 노동’이 존재한다는 방증이었습니다.

Q. 응답자의 95%가 여성, 대부분이 중장년층이었습니다. 이 수치가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재활용은 팬데믹 때도 멈출 수 없는 필수 노동이지만, 단순노무직으로 분류돼 저임금과 위험한 환경에 방치돼 있습니다. 이러한 열악함 때문에 지원자도 적고, 와도 일주일도 못 버티고 나갑니다. 결국 출산이나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로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여성들이 올 수밖에 없어요. 사회적으로 떠밀리고 떠밀려 도착하는 마지막 노동 현장이 된 셈입니다.

선별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는 피 묻은 주삿바늘, 칼날, 깨진 유리병, 녹슨 쇠붙이가 섞인 폐기물이 그대로 지나간다. 여성환경연대 조사 결과 응답자 전원이 찔림과 베임 사고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사진 여성환경연대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근무 중 산업재해 100% 경험하는 산업장

Q. 산재가 일상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입니까?

조사 응답자 전원이 근무 중 찔림과 베임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피 묻은 주삿바늘, 칼날, 깨진 유리병, 녹슨 쇠붙이에 찔리는 일이 일상입니다. 그러나 지급되는 장비는 면장갑, 반코팅 장갑, 팔토시가 전부입니다. 양도 부족해 일주일에 목장갑 두 개가 지급되는데, 하루에 수천에서 수만 개의 폐기물 다루다 보면 한 시간만 작업해도 장갑이 까매집니다. 세탁하면 기능이 떨어지고요. 분진이 심각한데도 KF94 마스크만 지급됩니다. 산업용 마스크가 아닙니다. 시설 안전도 취약합니다. 지난달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에서 60대 남성이 플라스틱 압축기에 끼어 숨진 사고처럼 기본적으로 안전망이 없는 등 중대 재해를 막을 수 있는 시설 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근무 중 산업재해를 100% 경험하는 사업장이 얼마나 될까요? 산재가 일상적이고 만연한데 산재 신청 비율은 24%밖에 안 돼요. 

Q. 선별원들이 겪는 가장 심각한 질환은 무엇인가요?

근골격계 질환이 가장 많습니다. 하루종일 서서 허리를 숙인 상태로 양손으로 물건을 집다 보면 가장 많이 호소할 수밖에 없는 질환이에요. 컨베이어 벨트의 빠른 속도에 따라가려면 허리 한 번 펼 수도, 어깨 한번 돌릴 수도 없어요. 여기에 호흡기와 청력손실 문제도 심각해요. 하지만 모두 통계로 잡히지는 않아요. 찔리거나 배임 사고를 겪어도 밴드를 붙이고 바로 다시 일해요. 

안현진 활동가는 재활용 선별작업에 대해서 “가사노동처럼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지워진 노동’”이라고 말했다.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숨겨진 지하 8층...재활용 떠받치는 여성 노동자들

Q. 환기 문제도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수도권 선별장들은 악취 민원 때문에 환기 시스템으로 충분히 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냄새 문제가 아닙니다. 유해가스와 화학물질 속에서 노동자들이 일한다는 의미니까요. 폐기물 처리시설에서 배출하는 공기질에 대한 기준은 있지만, 처리시설 내부 공기질에 대한 기준은 없어요.

최근 지자체들이 혐오시설을 ‘보이지 않게 하겠다’며 지하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수원시가 대표적이고, 이미 구로·하남 등에는 지하화된 시설이 있습니다. 직접 가보면 지하 7~8층 높이의 수많은 차량이 드나드는 공간에서 노동자들이 일합니다. 환기가 안 되니 숨쉬기조차 어렵고, 화재·폭발 사고가 나면 탈출도 불가능합니다. 땅 위에는 시민공원이, 지하에는 선별장이 숨어 있는 디스토피아 같은 현실입니다.

Q. 자동화로 일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요?

자동화 장비를 도입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막대한 비용 문제가 있고, 복합소재·신소재 플라스틱은 기계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선별장 노동자들은 고도로 숙련돼 있습니다. 실제 선별장의 컨베이어 벨트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노동자들은 1초에 2~3개의 폐기물을 집어서 빠른 시간에 분류해내요. 플라스틱을 두드려 소리로 구분하거나, 마트에서 새 용기를 관찰해 재질을 연구합니다. 선배들에게 도제식으로 전수되는 숙련 노동인 건데요. 그런데도 단순노무직으로 분류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Q. 여성 노동자들은 현장에서의 위험뿐만 아니라, 퇴근 후 돌봄과 가사노동까지 이어지는 ‘이중부담’을 떠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구조가 노동자의 건강권을 더 위협한다고 보시나요?

여성은 가정에서도 살림을 하고 쓰레기를 분리하고 배출해요. 플라스틱을 하나하나 씻고 라벨을 떼서 분류하죠. 그런데 사회에서도 같은 일을 합니다. 게다가 퇴근 후 돌봄과 가사노동이 이어집니다. 심지어 가사노동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도 그들의 노동을 가려져 있죠. 

심층 인터뷰에서는 ‘땀을 닦다가 소매에 박힌 유리 조각에 얼굴이 긁혀 피가 났다’는 답도 들었습니다. 세탁·샤워 시설이 없어 오염된 옷을 그대로 입은 채 귀가해 가족 건강이 걱정된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이런 필수시설 부재가 개인과 가족의 안전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선별장 컨베이어 벨트 속도는 굉장히 빠르고 노동자들은 1초에 2~3개의 폐기물을 집어서 빠른 시간에 분류해내야 한다. (사진 여성환경연대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분리배출 잘해도 다시 합쳐지는 폐기물...“요일별 배출제 통일해야”

Q. 다수의 재활용 선별원이 용역·파견 등 불안정 고용 상태로 일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자체 선별장의 절반 이상이 민간 위탁으로 운영됩니다. 2~3년마다 최저가 입찰제로 업체 재계약을 하는데, 운영비를 가장 적게 제안하는 곳에 위탁을 맡기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업체에서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인건비라는 것입니다. 최저가 입찰제가 아니라 쓰레기 단위 당 근무 인원수에 대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최소인원 대비 최소금액 책정이 가능하니까요. 실제로 선별장에서 10년 이상 일한 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체감될 만큼 쓰레기양이 증가했지만 선별원이 그에 대비해 늘어나지는 않았어요. 컨베이어 벨트 속도도 줄일 수 없어요. 월요일에는 월요일의 쓰레기가, 화요일엔 화요일의 쓰레기가 들어오니까요.

또 하나의 문제는 재계약 때마다 노동자들의 연차가 리셋돼 15년을 일해도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호봉이 오르지 않으니 대출 등 생활 전반에 불이익이 생깁니다. 고용불안정의 구조는 산재 은폐로 이어집니다. 심각한 사고가 아니면 산재 신청조차 못 합니다. 재고용에 불이익이 올까 두려워서죠. 결국 작은 사고들이 누적돼 큰 재해로 이어집니다. 직고용을 통해 책임을 강화하거나 무기계약직으로 계약 형태를 변환해 고용승계가 될 수 있도록 합니다.

Q. 시민 입장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건 ‘분리배출을 잘해도 다시 합쳐진다’는 점입니다. 해법은 뭘까요?

지역마다 분리배출 기준이 달라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해결책은 ‘요일별 배출제’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적으로 월요일은 종이, 화요일은 플라스틱처럼 정해진 요일에 동일 품목을 배출하면 선별장에도 그 품목만 들어옵니다. 그렇게 해야 시민들의 분리배출이 그대로 유지되고, 선별 노동자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습니다. 현재 중구난방인 지자체별 재활용 분리배출 기준을 환경부에서 통일한다면 선별장 안전기준 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Q. 제도 개선 과제로 가장 시급한 건 무엇일까요?

첫째는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입니다. 어느 시설에 하루 몇 톤의 쓰레기가 들어오고, 몇 명이 일하는지 파악해야 안전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별도의 안전기준 제정입니다. 현재 환경부·노동부·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습니다. 소규모 민간업체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요. 시민들의 관심과 압력이 있어야 제도 개선이 가능합니다.

그동안은 폐기물 처리 비용을 어떻게 낮출지, 어떻게 하면 재활용을 잘할지만 생각했는데, 이걸 넘어서서 폐기물을 처리하는 노동자는 안전한지, 환경정의와 기후정의 측면에서 ‘그 다음’을 같이 고민할 때가 온 것 같아요. 환경미화원 안전기준도 처음에는 없었지만, 사회적 관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선례처럼, 이번에도 시민들이 이 문제를 꾸준히 언급하고 관심을 가져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