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리 펭귄은 왜 쓰레기 위에 둥지를 틀었을까?

[펭귄뉴스] 인간이 쫓아내고 복원한 아델리펭귄 서식지

2025-09-20     우다영 기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펭귄들의 생태와 삶을 매주 전합니다. 귀엽고 익숙한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진짜 펭귄 이야기, 뉴스펭귄만 들려드릴 수 있는 소식을 차곡차곡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아델리펭귄(Pygoscelis adeliae)은 남극을 대표하는 종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380만 쌍이 분포하며 크릴과 작은 어류, 오징어를 주 먹이로 삼는다. (사진 By Murray Foubister, WikimediaCommons)/뉴스펭귄

인간이 쫓아내고 인간이 복원한 펭귄 서식지가 있다. 이곳에 펭귄은 어떻게 돌아왔을까. 남극 빅토리아랜드 북부 케이프 할렛(Cape Hallett)에 수십 년 간의 기록이 말해준다. 눈과 바람이 빚어낸 이 황량한 해안에는 매년 수만 쌍의 아델리펭귄이 몰려와 둥지를 틀었다. 아델리펭귄(Pygoscelis adeliae)은 남극을 대표하는 종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380만 쌍이 분포하며 크릴과 작은 어류, 오징어를 주 먹이로 삼는다. 암컷이 두 개의 알을 낳으면 수컷과 교대로 품고, 돌을 쌓아 만든 둥지는 번식 성공의 핵심이다. 펭귄들은 둥지를 만들 자갈을 서로 훔쳐 가며 경쟁하는 습성까지 보여준다.

1957년 여름, 이들 마을 한복판에 낯선 건물이 들어섰다. 미국과 뉴질랜드가 국제지구관측년(IGY)을 맞아 공동으로 건설한 할렛 기지(Hallett Station)였다. 기지는 남극 과학 연구의 전초기지이자 냉전기 과학 경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원래 펭귄들의 땅이었다. 2023년 1월 학술지 Diversity에 극지연구소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기지 건설 직후 약 7580마리 성체와 3318마리 새끼 펭귄이 둥지에서 쫓겨났다. 1960년 조사에서는 기지 부지 안 둥지가 349개로 줄었으며, 번식 쌍수는 한때 59% 감소했다. 도로와 건물, 자재 더미는 펭귄들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던 땅을 갈라놓았다. 지형이 변하면서 눈이 녹아도 물이 빠지지 못해 둥지에 고이거나 젖었고, 눈도 쉽게 쌓여 알과 새끼를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할렛 기지는 1973년 화재와 유지 문제로 문을 닫았고, 펭귄들의 서식지 또한 닫혔다. 건물 잔해와 연료 탱크, 폐기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83년 항공사진 분석에서는 약 1683쌍이 옛 기지 자리에 다시 둥지를 트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개체군 회복은 더뎠다.

1990년대 이후 미국과 뉴질랜드 연구자들이 현지 복원에 나섰다. 오염된 토양과 연료통을 치우고, 서식지를 되살리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특히 눈이 덜 쌓이고 배수가 좋은 인공 둥지 언덕을 조성해 펭귄들의 번식을 도왔다.

남극 빅토리아랜드 북부 케이프 할렛(Cape Hallett). (사진 김종우, et al. 2023)/뉴스펭귄
인공 둥지 언덕 위 아델리펭귄 무리. (사진 김종우, et al. 2023 )/뉴스펭귄

기지 철수 후 40여 년이 흐른 2019년, 무인기(UAV)와 디지털 영상 분석으로 다시 조사한 결과 옛 기지 부지 안에서 6175개의 둥지가 확인됐다. 기지 건설로 무너졌던 펭귄 마을은 수십 년 만에 회복세를 되찾은 것이다.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에 서식지를 잃었지만, 또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에 서식지를 회복했다. 아델리펭귄은 서식 환경에 따라 개체군 변동이 크게 갈리는데, 해빙이 줄어든 지역에서는 개체군이 감소하는 반면,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대규모 번식이 유지된다. 케이프 할렛 사례는 이러한 종 특성이 복원 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케이프 할렛은 남극특별보호구역(ASPA No.106)과 로스해 해양보호구역(MPA)으로 지정돼 있다. 수만 쌍의 아델리펭귄이 해마다 이곳에서 번식한다. 다만 완전한 회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 이곳에는 폐기물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지연구소 김정훈 박사 저서 <슬기로운 펭귄의 남극생활>에 따르면 곳곳에 버려진 폐기물에 펭귄들이 둥지를 틀어 국내 연구자와 뉴질랜드 연구자가 합심해 논의하기도 했다. 김정훈 박사는 저서에 "펭귄들이 적응했는데 오히려 지금 제거하면 생태교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케이프 할렛기지 전례를 교훈삼아 인간 흔적을 최대한 지우고 떠나야 한다. 훼손과 복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반성하고 교육을 얻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이프 할렛의 역사는 인간 활동이 남극 생태계에 남긴 상처와 회복을 동시에 보여준다. 펭귄들은 다시 돌아왔지만, 그들이 잃은 시간을 인간은 언제까지 얼마나 돌려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