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 펭귄 어린이집 있다? 새끼들의 치열한 생존기
[펭귄뉴스] 부모 자리 비운 동안 새끼 펭귄이 모여 만든 집단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펭귄들의 생태와 삶을 매주 전합니다. 귀엽고 익숙한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진짜 펭귄 이야기, 뉴스펭귄만 들려드릴 수 있는 소식을 차곡차곡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부모가 자리를 비운 동안 새끼 펭귄들이 모여 만든 이 집단은 동물학에서 '크레쉬(crèche)', 펭귄 보육원이라고 한다. 보기에는 귀엽지만, 사실은 극한 환경을 견디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새끼 펭귄은 깃털이 완전히 자라기 전까지 체온 유지가 어렵고, 혼자 있으면 포식자나 성체의 공격에도 취약하다. 부모가 먹이를 구하는 동안 혼자 남은 새끼 펭귄들은 무리를 이루는 전략으로 살아남는다. 서로 몸을 맞대고 모여 있을 때 열 손실이 줄어들고, 공격당할 위험도 줄어든다. 결국 함께 모이는 것이 살아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추운 기온과 높은 습도일수록, 또 깃털이 젖었을 때 더 큰 집단을 형성한다.
펭귄 종마다 보육원 양상이 달라진다는 분석도 있다. 2009년 독일 조류학자가 The Auk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황제펭귄, 킹펭귄, 아델리펭귄 등 다양한 종을 비교한 결과, 보육원 크기와 시기는 번식지 지형, 기후, 포식자 밀도, 부모 펭귄의 먹이 운반 빈도 등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육아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남극 한복판에서 번식하는 황제펭귄은 해빙 위에 알 한 개를 낳고, 수컷이 두 달 가까이 발 위에 올려 품는다. 암컷은 먼바다로 먹이를 구하러 가며, 돌아오기까지 몇 주 이상 걸리기도 한다. 새끼가 부화한 뒤에도 부모가 동시에 먹이를 구하러 나가야 하는 시기가 오면, 어린 새끼들은 무리를 이루어 보육원을 만든다.
킹펭귄 역시 번식 주기가 14~16개월에 달해 새끼는 번식지에서 긴 겨울을 보내야 한다. 이 기간 수천 마리 새끼가 모여 형성하는 대규모 보육원은 킹펭귄 번식지의 상징적인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
아델리펭귄은 자갈 둥지에 알 두 개를 낳고 교대로 품는다. 새끼가 자라면서 둥지를 떠나 또래와 함께 무리를 이루는데, 남극 여름철인 1월에서 3월 사이에 보육원이 흔히 형성된다. 이 시기 보육원은 부모가 먹이를 나르는 동안 새끼들이 살아남는 공간이다.
젠투펭귄과 턱끈펭귄도 여름철 보육원을 만든다. 환경부와 극지연구소가 세종과학기지 인근 나레브스키 포인트(ASPA No.171)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젠투펭귄은 1월 초부터, 턱끈펭귄은 1월 말부터 새끼들이 무리를 이루는 보육원 행동이 관찰됐다.
보육원은 무리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살아남을 힘을 아낄 수 있는 전략이다. 2011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진이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킹펭귄 새끼들이 집단 속에서 휴식할 때 체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에너지 소비도 줄었다.
하지만 기후위기라는 변수가 있다. 생존 전략도 바꿀 변수다. 해빙이 줄어 부모가 먹이를 구하러 더 멀리 이동하게 되면, 새끼들은 보육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먹이 자원이 부족해 성장 속도가 늦어지면 보육원에 오래 머물수록 생존율은 떨어질 수 있다. 기후가 불규칙해지고 폭우나 눈 녹음이 잦아지면, 새끼들이 무리를 이루는 빈도는 늘어나지만 체온 유지 부담은 오히려 커진다.
실제 비극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2022년 벨링스하우젠해 인근에서는 해빙이 일찍 붕괴하면서 황제펭귄 집단이 번식에 실패했다. 부모가 돌아오기 전에 발판이 사라지자 보육원에 모여 있던 새끼들이 속수무책으로 익사했다. 영국남극조사단(British Antarctic Survey)은 당시 여러 개체군에서 새끼가 집단으로 폐사했다고 전했다. 이는 기후위기가 펭귄의 생존 전략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